독립운동가 최낙종(1864~1945)선생
고성군은 고성지역 최초 독립운동인 구만·배둔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를 규합해 독립운동에 참여한 최낙종(1864~1945)선생을 2017년 8월의 고성인물로 선정했다.
구만면 화림리에서 태어난 최낙종 선생은 1919년 고종황제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상경했다가 3.1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고성에서도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해 3월 20일 구만면 국천 모래사장에서 봉기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배둔장터로 행진했다.
일제가 3.1운동의 주동자로 지목해 체포하려하자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인쇄소를 경영하면서 수익금을 조선인 유학생 학비와 독립운동자금으로 지원했다. 또 동경에서 재일동포들을 규합해 동흥노동동맹을 창립해 친일단체인 상애회에 대항했다.
또한 서상한`` 이혁`` 변영우 등과 월간잡지 ‘노동’을 발행해 일본과 국내에 배포하는 등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26년 11월 30일 국가총동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과 벌금 30원을 동경구재판소에서 언도받았다. 그러나 최낙종 선생은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 광복 세 달여를 앞두고 병으로 출소 한 후 일본에서 1945년 6월 8일 작고했다.
최낙종 선생의 손자인 최연도 씨는 ‘내 할아버지가 목숨을 버리고도 지키려 했던 내 나라입니다’`` ‘사는 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자존심과 긍지 덕분입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