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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수일 팀장의 설명을 경청하는 개천면 이장단 |
진실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전수일 대외협력팀장은 오늘 오전 개천면 이장회의가 끝나고 난 뒤 이장들을 상대로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과 관련한 협조요청과 홍보활동을 위해 간단한 설명회를 열고`` 오후에는 고성 시장통 일대에서 정리위원회에서 만든 팜플렛을 시민들에게 나누어주며 거리 선전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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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각하게 듣고있는 이장단 |
전수일 과거사정리위 대외협력팀장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100년 동안 이 땅에 국가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에 대한 진실 규명과 그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유가족들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 해 5월 30일 국회에서 국법으로 만든 기구임을 강조했다.
또 과거사정리위는 과거역사를 바로잡고 후손들에게는 제대로 된 역사를 물려줘야 하는 것으로 이 작업은 진실이 규명되는 날까지 계속되며`` 정권에 의해 왔다갔다하는 기구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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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하는 진실화해위원회 전수일 대외협력 팀장 |
전 팀장은`` 경남 고성까지 과거사정리위 직원들이 내려온 이유를 설명하면서 지금부터 56년 前`` 이곳 고성이 통영에서처럼 많은 민간인이 보도연맹 사건으로 경찰과 군인에 의해 희생당하고`` 좌익 활동가와 인민군 퇴각 시기에 당한 사람들이 이 지역에서 900여명이 희생된 걸로 문헌에 나와 있음을 그 이유로 들었다.
따라서 유족이나 친지 또는 본인한테서 그 당시 피해와 관련한 사항을 접수받고 있으며`` 법으로 1년 동안 접수 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오는 11월 30일이 접수마감일이나 이런 경로를 몰라서 신청을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면면촌촌을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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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수일 팀장 |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억울하게 당했거나`` 후손들이 빨갱이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에 고향을 떠난 이들도 있고`` 가슴속에 묻어 두고 사는 사람도 있어서 이런 여러 가지 사실들을 이장들은 혹시 알고 있을 수 있어서`` 시군 구청에 이에 대한 접수창구가 있으니 특별한 증빙서류도 필요치 않고`` 그저 있었던 이야기들만 제대로 전해주면 관련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국가와 경찰에서 보도 된 자료를 바탕으로 규명토록 되어있다 했다.
전 팀장은 진실규명 신청자가 많아야 사회 합의를 할 수 있고`` 국회에서 통과시켜서 합법 보상 받게 된다며`` 가슴에 아픔을 묻어두지 말고 드러내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하고 올바른 보상을 받도록 해야 한다 강조했다.
가해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피해자만 당하고`` 이를 숨기고 또 숨어 산다면 국가 질서도 문란해지므로 잘못된 과거는 이 시대에서 청산해야하기에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려는 것이 그 근본 취지인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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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통에서 홍보활동을 벌이는 전수일 팀장 |
고성 시장통에서 홍보활동을 펼치다가 만난 성내리에 거주하는 김숙희(80세) 할머니는 전 팀장 일행에게 “우리 오빠가 당시 순경이었는데 끌려가서 죽었다.” 고 말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진실을 밝혀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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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경이었던 오빠가 그 당시 죽었다는 김숙희 할머니`` 어떻게 해서든지 진실을 밝혀 억울한 죽음을 달래야 한다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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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숙희 할머니`` 고성엔 그런사람이 부지기 수라 말한다. |
시장에서 만난 무학리 거주 이문옥(80세) 할머니는 지금 살아있으면 82세가 되는 남편을 보도연맹 사건으로 잃었다며 눈가를 붉히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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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때 보도연맹 사건으로 남편을 잃었다는 이문옥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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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를 회상하며 갑자기 초점잃은 시각에 넋을 놓는 표정이 었다. |
참고로 진실화해위원회에는 민족독립규명위원회와 집단희생규명위원회``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세 가지가 있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민주당`` 대법원장`` 대통령이 각각 추천한 사람으로 위원장을 포함한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청와대를 제외한 정부 各부처 직원들과 학문상으로 뒷받침을 하는 학자와 교수`` 문헌연구가 200명이 활동하는 것으로 특정 정권의 중점사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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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만 해도 김 할머니는 손에 아무것도 쥐고있지 않았다. 그만큼 그당시 고성에서의 민간인 희생자가 많았으며 숨기고 가슴아파하는 사람도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
뒤에 보이는 김숙희 할머니는 그저 장터에 나와 있다가 이문옥 할머니와 전수일 팀장이 이야기하는 것과 어깨띠에 두른 글귀를 보고 자청해서 홍보 팜플렛을 받고`` 그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다음은 과거사정리위원회 전수일 팀장이 건네준 자료로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나온 실태보고서이다.
사건명 |
고성 보도연맹 학살 |
사건유형 |
6.25 이전 학살 보도연맹 예비검속 학살 재소자 학살 부역혐의학살 제2전선 학살 미군에 의한 학살 인민군․좌익에 의한 학살 기타 |
발생시기 |
1950년 4월 무렵`` 7월 25일`` 30일`` 8월 4일`` 5일`` 14일`` 10월 31일등 |
사건지역 |
고성군 하일면 오방리`` 타래재`` 마암면 좌연리 TK리재`` 고성읍 율대리`` 상리면 등 |
가 해 |
CIC (특무대)`` G-2`` 해상방위대`` 경찰 |
피 해 |
최소 247명 |
사건배경 |
고성군의 보도연맹 지부 결성식은 1949년 12월 14일 대동극장에서 개최됐고 당시 김 ○○ 고성군 경찰서장과 노○○ 고성군수 등이 지도위원 등을 맡았다. 고성군도 고성경찰서 사찰주임을 중심으로 자수 주간을 두고 마을마다 순회하면서 보도연맹원을 가입시켰다. 1950년 8월 2일 인민군이 입성하기 직전에 후퇴하던 군경이 예비검속한 보도연맹원을 학살했다. |
사건내용 |
고성군 보도연맹원이 학살된 시기는 1950년 7월-8월이고 가해자는 군대와 CIC`` G2`` 해상방위대`` 경찰 등으로 추정된다. 학살 지역은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원동마을과 하이면 지역으로 150여명이 학살됐다.
1950년 7월 25일 고성읍 송학동 정○○ 외 49명이 하일면 오방리 타래재에서`` 1950년 7월 30일 고성읍 서외동 오○○ 외 59명이 마암면 좌연리 싸리재에서`` 1950년 8월 5일 고성읍 성내동 이○○ 외 29명이 역시 마암면 좌연리 싸리재에서`` 1950년 8월 14일 경찰서 유치장에서 4명`` 1950년 8월 4일 고성읍 율대리에서 6명 등 150여 명이 학살됐다.
정○○ 의 아들 정○○은 “일제 때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가 해방 후 고성에서 청년운동을 한 것이 빌미가 돼 보도연맹에 가입하게 됐는데 6․25가 터지자 고성읍 동해리에 있던 고모집으로 피신해 있다가 고성경찰서로 연행됐고 이틀 뒤 타래재로 끌려가 학살됐다.”고 말한다. 정○○ 와 함께 고모집 장롱 속에 숨어 있다 함께 연행된 의사 권 ○○ 도 이때 목숨을 잃었다. 학살 당시 고성경찰서 보급대 차량 조수로 일했던 정○○ 은 학살이 있은 다음날 타래재에서 아버지의시신을 직접 수습했다. 정○○ 은“아버지를 연행해간 사람은 고성 CIC 파견대장 최○○ 이며 그가 학살도 지휘한 책임자”라고 지목했다. 최○○ 는 진주 출신으로 고성경찰서에 있던 사찰 형사들을 데리고 직접 맹원들을 잡으러 다녔다고 한다.
이 외에도 1950년 4월경 고성군 기월리 정○○ 외 6명이 상리면에서 학살당하고 1950년 10월 31일 고성읍 성내동 김○○ 외 64명이 마암면 좌연리에서 학살됐다.
고성군 전체의 희생자 수는 현재까지 247명이 확인됐다. |
사건이후 |
고성유족회가 결성돼 진상규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
주요증언 |
■ 김진모(유족) “고성읍내와 각 면의 보도연맹원들을 모아서 개천면 북평리 원동마을 산골짜기에서집단 총살했다.”“그 당시 G-2와 CIC 등이 직접 학살에 관계를 했다.” “6․25 때 고성군에서 김○○ 부대(해병대)가 고성 사람들을 끌고 통영군 원문고개 아래 마을인 죽림 앞바다에 100여 명을 수장시켰는데 고성 향토방위군들도 함께끼여 있었다.”
■ 허택도(유족) “나의 어머니가 보도연맹으로 끌려가 학살되었다. 그때 고성읍내 보도연맹원 10여명과 함께 죽었다.” “고성 경찰서와 민보단`` 대동청년단장 (마암면 청년단장 김○○`` 조○○)등이 나섰다.”
■ 김갑성(당시 소방대장) “마암면에서 최상곤`` 이상구 등이 잡혀가 죽었다.” |
규명과제 |
희생자의 수와 신원`` 그 책임 등 |
참고문헌 |
김기진`` 『국민보도연맹』`` 역사비평사(2002) 전갑생`` 「경남지역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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