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 / 서울환경연합 한강팀 활동가
8월 25일, 35일째 되는 날이다. 4대강사업 중단을 촉구하기 위해 7월 22일 새벽 환경연합 5인의 활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여주 남한강 이포보와 경남 낙동강 함안보 크레인에 올랐다.
그러다 경남지방에 태풍이 밀어닥치자 함안보 크레인에 오른 활동가 2인은 주위의 요청으로 20일간의 고공농성을 중단하고 8월 11일 내려왔다. 이들은 내려오자마자 업무방해 등의 이유로 경찰에 체포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고, 8월 13일 영장이 청구되었으나 기각되었다.
환경연합은 24일 오후 3시쯤 이포보 고공농성자 3인에게도 내려올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농성자들은 국회 4대강 검증특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내려갈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에 맞추어 25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KT 앞에서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정당 등 각계각층이 참여해 `4대강저지 범국민행동`과 비상시국회의 발족식을 열고 천막농성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포보 위의 활동가 3인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식량은 바닥나고 연락도 불안정한 상태다. 더구나 얼마 전부터는 이포보 교각 상판 바로 옆에 경찰과 건설업체 직원들이 천막을 세우고 밤에도 써치라이트를 비추어 농성자들이 잠을 못 자게 괴롭히고 있다.
민·형사상 책임 운운하며 위협하는 한편, 최소한의 물과 식량조차 전달을 제한하고, 휴대폰 배터리는 트위터로 현장소식을 실시간으로 알린다면서 반입을 막고 있다.
그 대신 경찰과 업체 관계자 모두 들을 수 있는 무전기를 공급하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사용이 쉽지 않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이포보 농성자에 대한 긴급구제를 요청했지만 이마저 수용되지 않았다.
계속되는 고공농성, 정부의 묵묵부답
수원지법은 8월 20일 이포보 농성자 3인에게 퇴거명령을 내렸고 위반시 1인당 하루에 300만원씩 공사업체에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문화예술계, 노동계, 학계 등 4대강사업 반대농성을 지지하는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오직 정부만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을 따름이다.
4대강은 어떤 곳인가? 올해 초만 해도 굽이굽이 강줄기가 흐르고 강 양쪽의 습지에는 백로, 흰뺨검둥오리, 고라니가 뛰놀던 곳이다. 하지만 4대강사업이 시작되면서 맑게 흐르는 강물은 준설로 인해 흙탕물이 되었고, 푸른 생명의 습지는 모래바닥만 드러내고 있다.
그 자리에는 거대한 회색빛 콘크리트 보가 세워지고 대형 중장비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여주 남한강 20~30m 높이의 이포보에 올라가 있는 활동가들은 사실 이것은 보가 아니라 댐이라고 증언한다. 실제로 사업내용을 들여다보면 16개의 보 설치와 준설이 4대강사업의 핵심이다.
3년 동안 22조원을 투여하는 이 대형 국책사업의 목표는 홍수예방과 수질개선이라고 한다. 하지만 낙동강 공사현장에서는 하류의 홍수량 증가로 침수피해가 더 커졌고 오염된 퇴적토와 정체(停滯)수역 발생으로 수질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또한 법정 홍수기에는 공사를 중단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업을 강행했다. 충남 금강보 공사는 지난 13일 내린 비로 공사현장이 완전히 침수되고 상·하류에 설치된 오탁방지 막들도 대부분 끊어져버렸거나 쓸려 내려갔다.
대운하 준비단계? 의문투성이 사업목적
최근에는 언론을 통해 새 하천기본계획의 하상(河床) 단면이 운하형인 사다리꼴이라는 것이 공개되었다. 낙동강의 경우 안동댐 근처의 상류만 제외하고 전구간의 하상 단면이 운하형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북 구미시 숭선대교 2㎞ 하류인 해평습지(455번 구간)는 너비 650m의 사다리꼴로 준설되고, 경남 창녕군 함안보 하류 500m 지점(174번 구간)도 굴곡이 있는 자연형 하상에서 밋밋한 하상 단면으로 바뀐다.
경기 여주군 여주읍 천송리 등 한강기본계획의 다른 구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토목 전문가들과 민주당 ‘4대강사업저지특위’의 김진애 의원은 `운하 준비작업`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러한 준설 방식은 강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어 이후에 배가 다니기 수월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운하 준비 작업이 아니라면 굳이 준설량도 많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는 방식으로 공사를 추진할 필요가 없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4대강 전체 공구의 평균 공정률은 22.4%인데, 애초 목표치를 11% 초과 달성했다. 보 건설공정은 43.8%로 계획보다 더 진행됐다. 새만금 간척사업, 천성산 터널사업이 그랬듯 정부는 대형 국책사업을 할 때 일단 삽부터 뜨기 바쁘다.
그러고는 빠른 속도로 사업을 밀어붙이고 공정이 많이 진행됐으니 여기서 중단하면 피해가 크기 때문에 되돌리기 어렵다고 둘러댄다. 그렇게 해서 중단에 따른 경제적 손실과 원상복구로 인한 제2의 환경파괴라는 논리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후 사업이 진행될수록 소요예산과 환경피해가 더 늘어날 것은 모른 척하고 있다.
지자체와 시민사회의 요구와 대안
4대강사업에 대해 지방단체장들의 반대 목소리도 높다. 6·2지방선거로 당선된 김두관 경남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는 일방적이고 졸속으로 추진되는 4대강사업을 반드시 막겠다고 공언했다. 경남도는 낙동강특위, 충남도는 4대강특위를 발족하고 국회에는 4대강사업검증 특별위원회 설치를 요구했다.
특히 충남도는 9월말까지 실증적인 조사 작업을 마무리하고 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충남도의 금강사업은 총 9개 구간 중 국토해양부가 5개, 충남도가 4개 의 대행을 맡고 있다.
이에 대해 충남도는 백제문화유산 훼손 가능성을 제기하고 대형 보와 준설에 대해 중단을 요청한 상태다. 반면 국토해양부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심의·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고 예정대로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4대강사업을 중단하라며 몸을 던져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7월의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을 시작으로 환경연합 활동가들이 보 건설현장에 올라가 있고, 낙동강권역 박창균 신부와 팔당대책위 유영훈 위원장이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4대강사업으로 더 이상의 희생과 생명파괴는 없어야 한다. 또한 시민사회의 반대 목소리도 한층 높아지는 중이다. 얼마 전 환경연합은 법정 홍수기의 4대강사업 중단과 대안 마련을 촉구하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1년 4대강사업의 보 건설과 준설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지방하천 및 소하천의 생태적 조성예산으로의 사업전환 요구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4대강 공사를 중단하고 이 사업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강을 위하고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일이다. 지난주 MBC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이 국토해양부의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이 기각되었음에도 갑작스레 결방되자 많은 시민들이 MBC 앞에서 촛불을 밝혀 들었다.
여론의 압박으로 한주 뒤 방영된 이 프로그램에서 `비밀팀`은 `테스크포스팀`으로, `4대강 수심 6m`는 `낙동강 수심 6m`로 일부 표현이 바뀌었지만, 4대강사업의 실내용이 대운하사업과 유사하며 청와대 관계자가 개입해 원래의 4대강 마스터플랜 초안과는 달리 보가 16개로 늘어나고 준설량도 5.7억㎥로 2배 이상 늘어났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폭로되었다.
방송 후 집계된 시청률은 시사프로그램으로서는 드물게 높은 10%대를 기록했다. 4대강사업의 실체에 대한 국민적 의혹과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강은 전시행정과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 4대강사업으로 강 본연의 의미가 퇴색되어버렸다. 다시 원래대로 버드나무가 늘어지고 낙동강에 흰뺨검둥오리가 와서 알을 낳고 남한강 습지에 고라니가 경쾌하게 뛰어다닐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포보 농성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바도 바로 그것이다.<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