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잔치가 끝났다. 이제 차분하게 서울 회의를 돌아볼 시간이다. 서울 회의가 G20이라는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의 역사에서 차지할 위상은 무엇인지, 나아가 G20이 과연 21세기의 핵심적인 세계 정치의 제도로서 작동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G20 서울 정상회의를 준비한 의장국으로서 한국정부의 역할을 살펴보자. 우선 한국이 세계 주요 20여 개국의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동안 축적해온 경제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라 하겠다.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G20 재무장관 회의가 출범할 때 한국은 처음 이 모임에 동참했다.
그 후 2008년 세계 경제위기을 겪으며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같은 전문관료의 모임이 국가정상급으로 격상되고 글로벌 거버넌스의 주요 포럼으로 발전했다. 이처럼 실질적으로 권한이 강화된 세계의 강대국 클럽에 참여한 한국은 G20의 제도화를 통해 세계 정치의 핵심 메커니즘에 다가서는 장기적 권리를 확보하려 했고, 서울 회의 유치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기회였다.
G20의 변화와 한국의 학습효과
지난 6월의 토론토 회의부터 이번 서울 회의까지 반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한국은 G20 의장국으로서 세계 정치의 중심에서 정부 역량을 집중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코리아 이니셔티브`로 추진한 국제 금융안정망과 개발 의제는 비록 선언적 합의에 그쳤지만 국제사회의 논의를 주도하고 의견을 조정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축적했고, 현재의 `지식의 빈곤`을 절감함으로써 미래를 준비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론 국익을 조용하고 효율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외교 무대를 과도한 이벤트성 정권 홍보행사로 둔갑시키는 정치적 미숙함과 함께 시민생활의 과잉 통제 같은 사고의 후진성을 국제적으로 드러냈다.
둘째, G20은 글로벌 거버넌스의 역사에서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1929년 이래 역사상 최대의 경제위기로 평가된 2008년에 G20은 서방 중심의 기존 G7/8을 벗어나 거대한 개도국 세력을 포괄하는 보다 정통성 강한 회의로 재출발했다.
워싱턴, 런던, 피츠버그 회의를 거치면서 G20은 주요 국가의 거시경제 정책을 조율하는 한편 국제금융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글로벌 거버넌스의 새로운 형식으로서 정기화·제도화하는 데 합의했다.
2010년 토론토 회의가 유럽 금융위기의 해결책을 논의하는 장이었다면, 이번 서울 회의는 IMF를 비롯한 국제금융기구 개혁을 실질적으로 이끌어낸 성과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지 않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G20은 2010년에 들어서면서 초기에 지녔던 협력과 희망의 모멘텀을 잃었다고도 할 수 있다. 당장 위기의 시급한 압력은 어느 정도 봉합됐더라도 각국의 상황과 정책 방향이 어긋나고 벌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회의를 앞두고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6천억 달러 규모의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일방적으로 시행하는 한편 중국, 독일, 일본 같은 나라의 경상수지 흑자를 비난하며 규제하려는 전략을 폈다.
의장국 한국이 미국의 정책기조에 공조했지만 서울 회의의 결과는 미국 전략의 완벽한 실패라고 해도 무방하다. 중국과 유럽이 오히려 양적 완화 정책의 무책임성을 집중 공격함으로써 미국을 고립시켰기 때문이다.
새로운 국제질서 창출할 가능성은?
셋째, G20은 21세기 글로벌 거버넌스의 핵으로 등장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한국은 G20에서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 서울 회의는 주요 세력들 사이에서 위기극복 방안의 차이가 드러나고 서로의 입장이 맞선 회의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글로벌 거버넌스의 차원에서라면 G20 자체를 꼭 비관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환율전쟁`으로 격화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G20이라는 장치가 존재하기 때문에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합의문을 만들어 담론의 순화과정을 거쳤고, 미중 양자대화가 아닌 제3자를 포함한 다자적 틀 속에서 합의도출 게임을 벌일 장을 유지하게 되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G20은 구체적인 결과를 매번 생산하는 능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주요 세력들 간에 정상 수준의 협력 틀을 유지함으로써 새로운 국제질서의 핵으로 자리매김할 잠재력은 여전히 가장 높은 제도임을 보여주었다.
당장 한국에 이어 내년까지 의장국을 담당하는 프랑스는 국제통화질서의 개혁이라는 해묵은 과제를 들고 나와 G20의 논의를 끌고 가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단기적으로 본다면 중국 위안화의 낮은 가치, 양적 완화로 인한 미국 달러의 가치 하락, 그로 인한 유로화의 상대적 절상의 효과를 해결해보겠다는 말이다.
장기적으로는 1971년 브레턴우즈의 안정적 통화질서가 붕괴된 이후 40년 이상 지속된 혼란기를 극복할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야심이다. 프랑스의 의제는 워낙 방대해서 단기에 성사될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G20은 이런 논의를 전개하기에 가장 적합한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미국에 치우친 우리 대외전략 수정해야
서울 회의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한국에서 개최하는 회의가 끝났다고 ‘세계의 중심적 사고’에서 주변부로 돌아와 방관자적 태도로 일관한다면 다시 미숙함과 후진성을 과시하는 셈이다. 정부 능력의 업그레이드는 의장국의 경험을 살려 지속적으로 세계 이슈에 대한 한국의 비전을 개발하고 이를 추진할 전략을 탐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 같은 평가기준은 정부뿐 아니라 정치세력과 언론, 학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정부에 대한 정치공세나 세계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총론적 비판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질서에 대한 우리의 비전을 개발하고 이를 실현할 외교 방안과 대안적 의제설정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끝으로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는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중국의 획기적인 부상과 미국의 외교적 고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는 한반도의 명운을 결정하는 데 미국과 중국의 변수가 동아시아라는 지역에서뿐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리고 G20을 데드라인으로 삼고 한미FTA 재협상을 추진한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으로 치우친 한국정부의 대외전략과 정책은 이제 궤도를 수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조홍식(趙泓植)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아프리카 가봉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프랑스 빠리정치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으며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외교전문기자,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재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 『똑같은 것은 싫다』『나의 사랑 나의 아프리카』 『유럽의 대일본정책』 『미국이라는 이름의 후진국』 등이 있고, 역서로 『거지를 동정하지 마라?』 『과학의 사회적 사용』 『미국 일본 독일이 세계를 지배한다』 『신용불량국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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