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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욱열 강남대 대우교수 |
우리나라가 올해 안에 연간 무역 1조 달러라는 신기원을 연단다. 지식경제부 발표에 따르면 10월말까지 무역(수출+수입)누계는 8,988억 달러이고 월평균 무역규모가 910억 달러임을 감안하면 12월초에 올해 수출입 합계 1조 달러를 돌파한다는 계산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출발해 이런 기록을 달성한 나라는 세계에서 중국 외엔 없다고 한다. 세계 9번째로 ‘무역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하게 되는 셈이니 1951년 1 억불에 불과했던 무역규모가 60년 만에 1 만 배가 늘어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6.25전쟁이후 폐허에서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을 건설하고, 안정적이고 빠른 민주화를 이룩하였으니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뛰어난 국민성과 깊은 문화적 잠재 역량이 숨어있기 때문에 가능하였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이 그 초석을 놓았음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슷한 예를 들어본다면 우리처럼 부존자원이 부족했던 싱가포르가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떠오른 핵심 요인은 바로 초대 수상인 리콴유의 리더십에서 기인한바 크다. 너무나 잘 알려진 3대 국가 개조전략의 밑그림은 깨끗한 공직사회, 파업 없는 근로자, 세계적인 수준의 엘리트 인재 양성이며 리콴유의 위대함은 바로 구체적인 전략과 실행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경제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경제력 외에도 사회적 자본이라고 불리는 여러 요소들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社會的 資本)이란 도덕성, 법질서, 신뢰도, 노사관계, 부정부패, 기업윤리 등 공동체가 상생을 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국가의 품격과 신뢰를 나타내는 지수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에게 이러한 요소들이 얼마나 충족되고 있는가? 경제력은 선진국 문턱일지 몰라도 사회적 자본에서는 선진국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이를 수치로 계량한 OECD 자료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법질서 준수는 10점 만점에 선진국은 8점인데 우리는 3.3점, 부정부패는 7.7점인 선진국에 비해 2.9점 수준이니 선진국의 절반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다.
최근의 한미 FTA처리 과정을 보더라도 경제라는 정책을 말하는데 이념의 잣대로 여야는 양보 없는 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이 뿐인가? 정치인의 잦은 말실수와 말 뒤집기, 벼랑 끝 전술의 노사관계를 수치로 계산한다면 아마도 부끄러운 수준이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한국산 제품들이 높은 인식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국가 브랜드 이미지는 경제력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유는 경제적 발전과는 궤를 달리하는 빈약한 사회적 자본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일지도 모른다. 왕조도 기업도 이데올로기도 이 변화의 사이클을 피 할 수 없다. 시장이 변하고 소비자가 변하고 기술이 변하고 있는 역동적 경쟁시대에 놓여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무역 1조 달러 클럽가입을 마냥 자축만하고 있을 수도 없다. 사회적 자본의 수준을 향상 시켜야 비로소 그에 걸 맞는 국격(國格)도 높아져 선진국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 등 우리를 추격하고 있는 대외환경을 보면 우리에게 머뭇거리는 시간조차 사치일 지도 모른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우리 모두 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하면 그건 끔찍한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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