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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량산(無量山)과 천왕산(天王山)의 위치 변경과 대곡산(大谷山)의 등장에 관한 고찰』
  • 고성인터넷뉴스2014-04-23 오후 01:56:07

자료작성 : 하 기 호

고성문화원 향토사연구소

 

1. 머리말

 

무량산(無量山,武良山)과 천왕산(天王山, 天王岾, 天皇山)은 우리 고성의 대표적인 산이다. 무량산(無量山)은 우리 고성의 옛 문헌인 지리지(地理志)나 읍지(邑誌)에 의하면 산천조(山川條)에 고성의 진산(鎭山)으로 나와 있고, 천왕산(天王山, 天王岾, 天皇山)은 제일 높은(583m)산이기 때문이다.

 

무량산(無量山)은 현()으로부터 서쪽으로 10리지점에 있다고 되어 있으며천왕산(天王山, 天王岾)은 현으로부터 북쪽으로 15리 지점에 있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이렇게 조선시대 수백년 동안을 모든 사서(史書)나 고지도(古地圖)에 무량산(無量山)과 천왕산(天王山, 天王岾)의 위치가 그대로 적혀 내려왔던 것이 일본의 식민지 강점하에 있었던 1926년도의 일본사람들이 만든 지도(大正156)에 의하면 그동안 천왕산(天王山, 天王岾)으로 표기되었던 583m의 산은 무량산(無量山)으로 그리고 무량산(無量山)으로 되어있던 산은 대곡산(大谷山 : 545m)으로 그 아래에 있는 철마산(鐵馬山 : 417m)을 천왕산(天王山)으로 표기함으로 인해 이로부터 우리 고성의 진산(鎭山)인 무량산(無量山)과 천왕산(天王山)의 위치가 바뀌어지고 대곡산(大谷山)이 별도로 새로운 산명(山名)으로 표기되어 버렸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그들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수탈 지배하기 위하여 식민지 초기에 시행되었던 조선의 토지조사사업과 세부측량사업을 하면서 그 지방의 산세와 정기를 억누르기 위해 유명한 산의 정상부에 쇠말둑을 박기도 하고 지명을 변경하는 일이 허다하였다. 이와 같은 일제의 만행으로 인하여 우리 고성의 진산(鎭山 )이 다른 곳으로 바뀌게 되므로서 고성(固城)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큰 상처를 입히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늦었지마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그들이 저질렸던 무량산과 천왕산의 위치를 도로 찾아 바로 잡는 것이 우리 후손들의 책무로 알고 뜻있는 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규명하고자 하며 그 진위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고문헌(古文獻)에 나타난 두 산의 본래의 위치

 

(1) 1530(중종 25)에 간행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산천조(山川條)에 의하면 무량산은 현(:지금의 군청)의 서쪽 10리 거리에 있으며, 진산(鎭山)이다. 천왕점(天王岾, 은 산마루 또는 산)은 현의 북쪽 15리 지점에 있다.(無量山 在縣 西十里 鎭山, 天王岾 在縣 北十五里)

 

(2) 1765(영조41)에 펴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무량산(無量山) 은 현 서쪽 10리에 있으며, 진주 지리산(智異山)으로부터 와서 진산이 되었다. 천왕산은 현 북쪽 15리에 있으며 무량산으로부터 왔다. (無量山 在縣 西十里 自晉州 智異山來 爲 鎭山. 天王岾 在縣 北十五里 自無量山來)

 

(3) 1866년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의 산수편(山水編)에 의하며 무량산은 서쪽으로 10리에 있다. 천왕점은 북쪽으로 15리에 있는데 진주와 통한다. (無量山 西十里. 天王岾 北十五里 通 晉州)

 

(4) 1893~1894년에 쓰여진 고성총쇄록(固城叢瑣錄)에 의하면 읍의 주산(主山)은 천황산(天皇山)인데 그 한줄기가 남으로 굽이쳐 뻗어 내리며 솟은 산이 무량산이다. (邑之主山天皇山 逶迤一脈南馳起 無量山)

 

그 외 1895년의 영남읍지(嶺南邑誌)고성부읍지(固城府邑誌)1930년의 철성지(鐵城誌), 1934년의 固城誌, 1940년의嶠南地등에 모두 무량산은 현의 서쪽으로 10리 지점에 있으며, 진산으로 되어 있고, 천왕산은 현북 쪽으로 15리 지점에 있다고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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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지도(古地圖)에 나타난 무량산과 천왕산의 위치

 

고지도를 살펴보면 1765년의 여지도서 고성현지도 (지도1)에 의하면 무량산은 서쪽으로 천왕점봉은 북쪽으로 나타나 있으며, 1856년의 동여도(東輿圖) 고성부근지도(지도2)에 의하면 무량산은 현의 서쪽으로 천왕점은 현의 북쪽으로 되어 있으며, 1864년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지도3]에 의하면 무량산은 서쪽으로 천왕점은 북쪽으로 나타나 있으며, 1871년의 영남읍지 제2책 고성부지도 [지도4]에 의하면 무량산은 현 서쪽으로 법천산(法泉山)과 천왕점봉은 북쪽으로 그려져 있다.

 

1804년의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나타난 고성현지도[지도5]에 의하면 무량산은 서쪽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천왕치봉(天王峙烽)은 북쪽으로 기록되어 있다.

 

1872년의 조선후기 지방지도 경상도편 고성부지도[지도6]에서는 천왕산은 자구읍 상거 십오리(自舊邑 相距 十五里)로 되어 있으며 그 바로 밑에 무량산(武良山)으로 표기되어 있어 두산의 방향이 같아서 다른 지도와 조금 차이가 난다.

 

1899년의 경상남도 고성군읍지, 고성현지도[지도7]에 의하면 무량산 (無量山)은 고성현 서쪽으로 천왕산봉은 북쪽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1916(大正五年)에 측량하여 1926(大正十五年)에 인쇄발행한 일제하의 지도인 조선교통도(朝鮮交通圖) 마산10, 마산11[지도8]에서는 천왕산(天王山)이 있던 자리(583m)에는 무량산(無量山)으로 무량산(無量山)이 있던 자리에는 대곡산(大谷山)으로 대곡산(大谷山:545m) 밑에 철마산(鐵馬山:417m)의 자리에 천왕산(天王山)으로 표기되고 있어 일제가 1926년에 무량산(無量山)과 천왕산(天王山)의 위치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4. 우리나라 국토지리원에서 발행한 지도상의 산의 위치

 

천왕산(天王山)은 그 후 1996년도 국립지리원(國立地理院)에서 인쇄 발행한 25,000분의 1 지도인 고성지도[지도9]에 의하면 무량산(無量山)이 있던 자리는 대곡산(大谷山)으로 되어 있고, 천왕산(天王山)이 있던 자리는 무량산(無量山)으로 천왕산(天王山)의 위치를 다시 193m의 산으로 옮겨서 표기해 놓고 있다.

 

다시 말하면 천왕산(天王山)이 있었든 자리는 무량산(無量山)으로, 무량산(無量山)이 있었든 자리는 대곡산 (大谷山)으로 천왕산(天王山)의 위치는 철마산(鐵馬山)으로 정하였다가 다시 193m의 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 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간행한 2011년도(1:25000)지도에서는 193m의 산을 천왕산(무량산)”으로 표기해놓고 있다.[지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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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수(泗水)의 발원지(發源地)가 무량산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문헌과 고지도에서는 무량산은 현재 25,000분의 1 지도에서는 대곡산(545m)과 철마산(417m) 그밑에 있는 301.8m산을 모두 아울러서 무량산으로 표기된 것으로 이해할수 있으며, 천왕산은 현지도의 무량산(583m)으로 표기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무량산이 현 대곡산을 중심으로 한 산이었다는 것의 또 하나의 근거신증동국여지승람(1530) 사천현편의 산천조 신증란에는 사수(泗水)는 현 남쪽 4리 지점에 있다.

 

물 근원은 고성 무량산(無量山)에서 나오며 서쪽으로 진주 강주포(江州浦)에 흘러든다.(泗水 在縣南 四里 源出 固城 無量山 西流江州浦)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사수의 물근원이 무량산(無量山)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그 외 많은 사서의 기록들이 무량산의 위치는 현의 서쪽으로 10리 지점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10리라는 거리 개념에 가장 가까운 위치는 철마산 밑에 있는 301.8m의 산이 무량산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많은 고지도를 살펴보면 개략적으로 현재의 지도(25,000분의 1 지도)상에서 대곡산(545m)과 철마산(417m)301.8m의 산들이 모두 포함되는 산이 무량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6. 산경표(山經表)에 나타난 무량산

 

1913년 조선 광문회에서 발행한 산경표라는 지리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산줄기가 모두 15개인데 이를 다시 대간(大幹) 1, 정간(正幹) 1, 정맥(正脈) 13개로 분류하여 놓았다.

 

특히 산경표에서 명시된 산 이름을 연결하면 산의 줄기가 형성되는데 백두산(白頭山)에서 시작하여 백두대간(白頭大幹)을 타고 내려오면 낭림산, 금강산을 거쳐 태백산까지 내려와서 속리산등을 거쳐 지리산까지 뻗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산줄기로서 한반도를 세로로 지르며 큰 획을 긋고 있다.

 

13정맥 중 낙남정맥(洛南正脈)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끝 지리산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하동 옥산, 곤양 소곡산, 진주 망진산, 사천 팔음산, 고성 무량산, 함안 여황산, 창원 불모산, 김해 구지산, 김해 분산까지 이어진 줄기를 가리킨다.

 

산경표에서 낙남정맥중에 나타난 고성의 산은 무량산이며 고문헌이나 고지도에서도 무량산이 고성의 중심산으로 되어 있다. 다만 1893, 1894년에 쓰여진 고성총쇄록에서는 읍의 주산은 천황산이 라고 적고 있다.

 

7. 그 외 자료와 주민들의 증언

 

1) 고성군 마을사

 

1991고성군 마을(조현식 편저) 38쪽에 의하면 무량리에 관한 기록으로서 본래 고성군 서읍내면의 지역으로서 무량산 밑이 되므로 무량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무량리라 해서 철성면(고성읍)에 편입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내무량]-안무량 ... 바끝 무량 동남쪽에 있는 마을

[바끝무량(외무량)]-무량 바깥쪽에 있는 마을

 

2) 대흥초등학교 교가

 

천왕산의 줄기를 타고 내려온 산 밑에 대가면 유흥리가 있고 유흥리 안에 대흥초등학교(1939년 개교)가 있다. 지금부터 60여 년 전에부터 불렀던 교가에 경남 일()의 고성못을 앞들에 띄워 천왕산록 순한 기운 병풍을 둘러 ....,” 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교가는 8.15해방후 초대 교장으로 부임하였던 허도중 교장이 작사한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대가면 유흥리 뒤에 있는 높은 산은 교가에 천왕산으로 되어 있다. 대가면 유흥리에서 태어나서 거주하고 있는 최관호씨(79)는 내 어릴 때 우리 마을 뒤에 제일 높은 산봉우리를 천왕산이라고 불렀다고 증언하고 있다.

 

3) 주민들의 증언

 

고성읍 이당리 안경조(84)씨는 철마산 아래에 있는 301.8m의 봉우리 를 무량산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하였으며, 상리면 부포리 백종덕 씨 (79)는 대곡산 옆에 큰 골짜기를 큰골이라 불러왔다고 하였다.

 

이를 볼 때 일제가 지도를 새로 작성할 때 큰 골 옆에 높은 산의 이름을 자의적으로 대곡산이라 이름한 것으로 추정된다. 옛날의 고지도가 지금의 지도처럼 그 위치를 정확히 밝히지 못했기 때문에 단정 지우기는 어려우나 대충 그려져 있는 고지도에서 밝히고 있는 무량산은 사수의 근원이 고성 무량산에서 발원한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함께 지금 지도의 대곡산과 그 밑에 있는 철마산과 그 아래 산봉의 산 일원을 통틀어서 무량산이라 지칭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4) 주민들의 증언

 

고성군 대가면 무량리와 연지리 마을 사람들에게 이 193m의 산명에 대하여 조사한 결과 고성읍 무량리에서 태어나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무량리 이장이신 심정시(74)씨의 증언에 의하면 193m의 산은 그 골자기에 옛날에 서재(書齋)가 있었기 때문에 서재골(또는 서지골)”로 불러 왔다고 하였으며 일명 서재산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193m의 산 이름이 천왕산이라고 들은 적은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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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맺는 말

 

각종 지리지나 읍지를 통하여 조사하여본 바 우리 고성의 진산은 무량 산이며 진주 지리산으로부터 왔다고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몇 백 년 오랫동안 기록되어온 무량산의 그 위치가 1926년 일본사람들이 제작 간행한 지도에서부터 산의 위치가 바뀌고 말았다.

 

무량산은 예부터 고성의 진산으로 그 정기를 듬뿍 받아 고성인의 혈맥에 배어 있는 산이요, 천왕산은 고성의 최고봉으로 그 이름이 예사로이 붙여진것이 아니다.

 

무량산은 소가야 도읍지로 생긴 이름이거나 아니면 그 이후 고성의 옛 선조들의 섬김의 산으로 내려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일제가 함부로 그위치를 바꾸어 무량산(無量山)이 있던 자리는 대곡산(大谷山)으로, 천왕산 (天王山)이 있었던 자리는 무량산(無量山)으로, 철마산(鐵馬山)이 있었던 자리는 천왕산(天王山)으로 바뀌어 놓고 말았으며, 천왕산(天王山)은 그 후 현재의 지도(1:25,000)에서는 193m의 산에다 그 명칭을 다시 옮겨 놓아 보잘 것 없는 낮은 곳에 이름을 매기어 놓고 말았다.

 

이와 같이 잘못 명명된 산명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현 지도상의 583m의 무량산(無量山)은 천왕산(天王山)으로, 545m의 대곡산(大谷山)은 무량산(無量山)으로, 무량산(無量山)에 포함된다고 생각되는 철마산(鐵馬山)은 철마봉(鐵馬峯)으로 고치는 것으로 건의하며, 193m의 산명은 인근마을 연지리 평동이나 무량리에 살고 있는 나이 많은 어른들은 서재산으로 불렀다고 하니 서재봉으로 건의한다.

 

만약 현행 국토지리정보원 간행 2011년도 25천분의 1 지도대로 표기할 때는 천왕산(天王山)과 무량산(無量山)이 같은 지역에 2개가 되기 때문에 193m천왕산(무량산)”은 서재봉으로 표기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지리산에 웅석봉, 형제봉, 깃대봉 등 수많은 봉우리가 있는 이치와 같다.

 

그동안 일제가 저지른 큰 오류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은 고성인 모두의 무관심으로 빚어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제가 저지른 잘못된 지명을 바로 세워 선대에서 물려준 우리 고장의 중요한 산명(山名)을 바로 잡아 후손들에게 다시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산명 위치 변경 요지
국토지리정보원 간행 지도 참조(2011년도, 1:25,000)

 

현 지도상 산명

변경을 원하는 산명

1) 무량산(無量山) (583m)

천왕산(天王山)

2) 대곡산(大谷山) (545m)

무량산(無量山)

3) 철마산(鐵馬山) (417m)

철마봉(鐵馬峯)

4) 천왕산(무량산) (193m)

서재봉(書齋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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