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칼럼은 가톨릭대학교 김경집 교수의 글입니다. 4~5분간 만 짬을 내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김경집의 고장난 저울]나이 든 사람들의 의무
대통령이 서명한다.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란다. 그런데 그 주체가 경제단체들이다. 대통령이 나서니 장관들도 덩달아 서명한다. 기업의 직원들도 눈치 보며 서명한다. 상대는 국회다. 국회가 무능하고 무책임하단다. 그러나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대통령에게 있다. 국회와 끝장토론이라도 했는가. 야당의원들에게 전화라도 했는가. 미국대통령이 어떻게 하는지 보라. 국회선진화법을 무산시키겠단다. 정작 자신들이 입법에 나섰던 건 어쩌고. 물론 시대가 바뀌면 상황도 바뀐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자신들의 책임과 잘못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여당의원들은 거수기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가게마다 ‘원조’ 이름을 붙인다. 그러니 정작 누가 원조인지 소비자는 헷갈린다. 친박도 모자라 이젠 ‘진박’이란다.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자신만이 ‘진실한’ 후보란다. 낯간지럽게 대놓고 말한다. 그 진실은 오로지 대통령에게서만 나온다. 신라를 망하게 만든 건 바로 진골들의 패거리 폐쇄성이었다. 지금 그 모습을 다시 본다. 이들에게 국민의 미래는 안중에 없다. 오로지 아부와 그릇된 충성으로 얻을 권력욕뿐이다.
기업은 세계 경제의 흐름에 대해 민감하지 못했다. 예전의 방식에 머물러 있다. 대책도 대비도 충분하지 않다. 물론 힘들 것이다. 그러나 과실(果實)은 독차지하고 과실(過失)은 노동자들에게 떠넘긴다. 늘 그래왔다. 그 버릇 못 버렸다. 휴먼웨어에 대한 투자도 없다. 마음대로 쓰고 버릴 노동력만 원한다. 그것은 미래를 보지 않는 것이다. 가업을 계승한 기업들일수록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밖에서는 바보짓 하면서 안에서는 주인 노릇만 하려 든다. 노동자들이 일하지 않아서 생긴 위기가 아니다. 무작정 해고가 능사가 아니다.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합리적인 투명성과 공정한 분배 구조가 필요하다.
여러 국립대 총장들이 공석이다. 교수들이 뽑아 올리면 그대로 묵살한다. 교육부나 청와대는 차라리 제 입맛에 맞는 자 지명이라도 할 일이다. 그게 몇 달이 아니고 몇 년이다. 그 일로 교수가 자살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부금을 줄여서 본때를 보이는 짓만 대놓고 한다. 이러면서 교육이 백년대계라고 지껄인다. 누리과정으로 부모들 표를 얻고는 책임은 엉뚱하게 교육청에 떠넘긴다. 무책임의 극치다.
조선 왕조가 500년 넘게 버틴 건 건강한 언로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사간원은 직설을 아끼지 않았다. 사관은 냉정하게 기록했다. 사헌부는 추상같았다. 조선이 망한 것은 수구세력이 발호했고 부패했기 때문이다. 사회 제도의 모순을 고치기는커녕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고수했다. 과연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물어야 한다. 검찰은 정의보다 권력에 매달린다. 불의를 척결하겠다 나서면 좌천시킨다. 그 반대의 인물들은 승진한다.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는가. 언론은 이미 북한의 언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의를 비판하지 않는다. 약자들을 조롱한다. 걸핏하면 종북으로 모는 데에 앞장선다. 우리가 북한을 이기는 건 민주주의의 힘이다. 그 가치와 힘을 더 키워야 한다. 그게 우리의 의무다. 언론은 현대의 사관이다. 그런데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데에 혈안이다. 왜곡과 거짓이 난무한다. 사주의 눈치만 보는 데스크는 언론이 아니다. 방송은 낙하산들이 곤봉을 휘두르면 알아서 긴다. 지금 언론의 자유가 있는가.
어떤 이가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를 팔아먹어도 30%는 지지할 거라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공약은 다 뻥이었다. 그런데도 30%는 콘크리트같이 지지한다. 그들이 미래를 보는 건지 묻고 싶다.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있다. 그건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무작정 지지하는 건 나라를 망친다. 과거의 정서에 갇히면 사회가 병든다. 이제라도 미래를 물어야 한다. 지금도 매일 청년 7명이 자살한다. 나약해서가 아니다. 절망 때문이다. 그들이 누구의 자식들인가. 콘크리트 지지자들은 대부분 금수저들이 아니다. 흙수저의 부모다. 그들의 아이들이 힘들고 지쳐서`` 희망이 없어서 자살한다.
평생 죽어라 일만 했던 노인들이 폐지를 주우러 다닌다. OECD 가입 국가 중 노인들이 폐지 주워야 생계를 해결하는 나라가 있는지 물어보자. 노인들에게도 선심 공약으로 표를 얻었다. 그러고는 나 몰라라다. 그런데도 저항하지 않는다. 권력자에게 순응한다. 중년과 노년이 무조건 여당 표라고 믿는 한 미래는 없다. 그게 오산이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 지금의 60대들은 최초로 고등학교까지 교육을 받은 세대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사회가 작동되는지 물어야 한다. 의무로서의 삶을 마쳤다. 그러니 당당하게 의무를 요구해야 한다. 국가가 끝내 파멸로 가는 걸 방관해서는 안된다. 그게 나이 든 사람들의 의무다. 과거를 살아왔으니 이제 미래를 살아갈 청년들에게 짐이 아니라 힘이 되어야 한다.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이 중산층이라 착각한다. 그건 맹목이다. 지금은 수입이 있어 살 수 있지만 퇴직하면 곧바로 몰락할 신세다. 그런데도 나만 살면 된다고 여긴다. 연대의식도 공감의식도 없다. 지금의 불행이 나의 일이 아니라 다행일까? 내일은 나의 일이고 그 다음은 당신의 일이다. 그런데 청년들은 아예 처음부터 중산층 진입 자체가 어렵다. 청년이 가난하면 경제도 죽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양아치들이 판친다. 정의는 뭉갠다. 체면도 없다. 후안무치다. 양아치들이 나라를 망친다. 양아치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열린다. 간디가 말한 국가를 망하게 하는 7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헌신 없는 종교. 지금 우리의 모습이 겹친다.
이러다 망치고 죽는다.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10년 후의 대한민국을 생각해야 한다. 그 10년 후가 갈림길이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건 판도라의 상자가 아니라 투표다. 유권자의 힘을 보일 때이다. [경향신문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