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4월이 오면, 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시구 "4월은 잔인한 달"이 자꾸만 뇌리를 스친다.
특히 올해처럼 전국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해에는 이 표현이 더욱 가슴 깊이 와닿는다.
산청, 의성, 안동, 하동 등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산불로 31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됐고, 4,000여 채의 주택이 불에 타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10만 헥타르의 산림이 잿더미가 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숲속에 터전을 둔 수많은 생명체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4월의 대형 산불은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5년간 산불 발생 추이를 살펴보면, 봄철 중에서도 4월은 단연 산불의 ‘고위험 기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봄은 겨울 동안 쌓인 낙엽과 고사목, 마른 풀들이 건조해 불쏘시개 역할을 하기에 적절한 조건을 갖춘 시기다.
여기에 봄 특유의 강한 바람, 낮은 습도, 상승하는 기온이 맞물리면 작은 불씨 하나도 산 전체를 집어삼킬 수 있다.
특히 4월은 본격적인 야외활동이 시작되며 입산객과 관광객이 급증하고, 농촌에서는 논·밭두렁을 태우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어 산불 발생 위험을 더욱 높이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재난이 기후 위기와 결합되며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봄철 기온 상승, 이상고온, 극심한 가뭄은 과거보다 더 빠르고 광범위한 산불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계절성 재난’을 넘어 지속 가능한 생태계 유지와 기후변화 대응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중대한 위협이다.
산불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통계적으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인재(人災), 즉 사람의 부주의다. 입산자의 실화, 담배꽁초 무단 투기, 캠핑 중 불씨 관리 소홀, 농촌 지역의 쓰레기·부산물 소각 등이 대표적이다. "설마" 하는 방심이 큰 화를 불러온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러한 위기를 막기 위해 다각적인 대응책을 강화하고 있다. 산림청은 산불감시용 드론을 전국적으로 운영 중이며, AI 기반 산불예측시스템을 통해 고위험 지역에 대한 사전 경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소방청과 협업하여 산불진화 헬기와 산불특수진화대 등을 활용한 대응력도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과 인력이 갖춰져 있어도 주민 개개인의 경각심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산불 예방은 결국 현장에서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불법 소각을 금지하고, 입산 시 화기 물질을 지참하지 않으며, 산불 위험지수에 따라 탐방을 자제하는 등 기본적인 행동수칙만 지켜도 대부분의 산불은 예방할 수 있다.
올해 비슷한 시기, 고성군 관내 개천면과 영오면에서도 산불이 발생한 사례가 있었다. 현장대응반의 즉각적인 대처 덕분에 대형 산불로 번지지 않고 조기에 진화됐으나, 관내 전역에서는 한동안 쓰레기 소각 등 부주의로 인한 화재 신고가 빈번하게 접수됐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단 한 순간의 부주의가, 산과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고 수십 년에 걸친 회복을 필요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산불은 인간의 삶은 물론, 다음 세대에 물려줄 소중한 자연유산까지도 한순간에 앗아갈 수 있는 무서운 재난이다.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산불은 우리 고향, 우리 집, 우리 가족의 평범한 일상과 직결된 문제다. 우리로부터 산불이 시작될 수도 있고, 우리가 산불을 막는 유일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산불이라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한 예방과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잔인한 4월’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이제는 우리 모두가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푸른 숲을 지키는 것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작은 실천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