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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최후의 보루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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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간, 여의도에서는 혹독한 삼복더위 속에 KBS의 새노조 조합원들이 힘겨운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다. 방송의 공정성에 심각한 침해를 받아 위기에 놓인 KBS를 살리기 위한 투쟁이다. 파업을 시작한 지 어느덧 한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투쟁의 열기는 식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더 뜨거워지고 있으니, 파업참가 인원이 점점 불어나 그 수가 1천명에 달하고 있다.


막강한 세력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누적된 피로가 조합원들의 심장을 갉아먹고 있을 텐데도, 전혀 그러한 기색이 없다. 오히려 낙관적이고 정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KBS는 명실공히 공영방송이다. 준(準)조세에 해당하는 시청료로 운영되기 때문에 국민의 방송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중립의 위치에서 진실의 공정방송을 해야 할 의무가 있고 또 그럴 권리가 있는 KBS가 지금, MB정권 아래서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KBS 파업사태를 포함해서, 지난 2년 동안 파행적 국정운영을 거듭해온 이 정권은 지금 한창 여론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다. 대선에서 MB를 선택했던 여론이 이제는 그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여론시장을 진흙탕에 몰아넣는가


대의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좋은 여론, 옳은 여론 형성이 관건이다. 여론시장에는 여러가지 품목들이 나와 서로 경쟁을 벌이게 되어 있다. 오래된 가치들과 새로운 가치들, 정신적 가치들과 물질적 가치들, 옳은 가치들과 그릇된 가치들이 혼란스럽게 여론시장에 나와 있다.


더구나 정보화와 글로벌의 시대를 만난 지금은 온갖 정보와 가치들이 홍수를 이뤄 범람하고 있고, 그에 따라 온갖 견해와 의견들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좋은 여론이 조성되려면 여러 가치들 사이에 공정한 경쟁을 위한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이 있어야 하고, 언론은 그 매개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메이저 언론들은 그러한 역할을 헌 신짝처럼 내버리고 있다. 한국의 여론시장은 이름만 자유시장일 뿐, 불공정거래와 불공정경쟁이 횡행하는 약육강식의 아사리판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 판의 큰손은 물론 메이저 언론인 조·중·동이다. 여론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그들은 진실의 가치, 가난의 고통에는 별 관심이 없다. 아니, 진실을 외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진실을 왜곡하는 것을 능사로 삼고 있다.


그 언론들은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왔고, 사회적으로는 전혀 희망이 없는 일반서민들에게 `당신도 중산층이고,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신화를 유포했다. 한때 유행했던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슬로건을 생각해보라.


애덤 스미스는 한 사람의 부자가 있기 위해서는 백 명의 가난뱅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우리 속담에도 `부자 하나면 세 동네가 망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최면에 걸려 그 부자신화를 믿었고, 그래서 가난한 고학생 출신으로서 입지전적으로 부자가 된 이명박씨는 많은 사람들의 신앙 대상이 되다시피 했다. 진실과 윤리는 안중에 없고 오직 물질과 실용만을 추구하는 것, 바로 그 부패한 여론이 이명박정권을 탄생시킨 것이다.


종편채널과 수신료 인상 논란 뒤에는


지금 MB정권은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인 이들 메이저 언론에 은혜의 보답으로 지상파방송에 종합편성채널(KBS, MBC, SBS처럼 보도·교양·오락·드라마 등 모든 부문을 방영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 상납하려 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여론의 독과점문제가 심각한 그들에게 종편 채널을 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서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종편의 탄생으로 지상파방송은 엄청 몸집이 커져 여론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문제는 KBS를 제외한 나머지 방송들이 광고에 의존하는 상업방송이라는 것이다. 이 정권은 종편이 생기면 프로그램의 질이 좋아진다고, 양질의 콘텐츠 운운하고 선전하고 있지만,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이다.


상업방송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광고주들이다. 광고주들은 진실의 가치나 진지한 가치를 외면한다. 독자와 시청자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그렇단다. 진실은 재미없다고, 돈이 안 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들이 주력하는 프로그램은 정신과 영혼보다는 감각과 감정의 말초에 호소하는 것들이다. 물론 어쩌다 가끔 진실을 언급하기도 하겠지만, 그 진실은 어디까지나 엔터테인먼트화한 가벼운 것일 뿐, 본연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적대적 상황 속에서 광고주의 영향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KBS를 지키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지금 수신료 인상계획을 놓고 논란이 심각한데, 방송의 공정성만 지켜진다면, 그리고 그 돈이 더 나은 양질의 프로그램을 위해 쓰인다면 우리가 왜 반대하겠는가.


수신료 인상계획은 종편에 혜택을 주기 위한 음모라는 의혹에 직면하고 있다. (KBS가 수신료를 인상하면 7000~8000억 원 규모의 광고가 민간시장으로 이전되게 되며, 이를 통해 KBS의 광고 비중을 낮춰줌으로써 장차 조·중·동 종편채널에 돌아갈 광고 몫을 키워주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다. 중립의 위치에서 온갖 논란의 중심에 서서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KBS의 본분이다.


예컨대, 김미화씨의 경우, KBS 경영진은 이른바 `블랙리스트` 발언을 문제 삼아 방송인 김미화씨를 고발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그녀야말로 소통 매개자로서 훌륭한 본보기가 아닌가.


지방선거의 민심 벌써 잊었나

 

그러나 사태는 저들이 바라는 바 그대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서 우리는 MB신화가 깨졌음을 목도했다. 환상이 깨진 것이다. 실망과 분노의 여론이 선거에 반영되어 나타났다.


지방선거 패배의 후유증 속에서 MB정권은 벌써 레임덕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이 레임덕 현상이 불행한 파국으로 연결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국민적 저항을 강공책으로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겸허한 자세로 대화와 소통의 마당으로 나와야 한다.


지금 궁지에 몰린 MB정권은 청와대를 조직개편하면서 첫 과제로 `소통`을 말하고 있는데, 글쎄, 과연 믿어야 좋을까? 진정으로 소통할 의지가 있다면, 지금 벌어진 KBS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겸허한 자세로 대화의 자리에 나와야 할 것이다.


KBS의 김인규 사장은 파업 중인 새노조 조합원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KBS가 바른 소리, 진실의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함께 지켜내자고 합의해야 한다. 대화와 소통을 무시한 강공책을 계속 밀고 나간다면, 보나마나 결국 이 정권의 레임덕은 더 빨리 찾아올 것이고, 그것은 큰 파국, 큰 불행을 초래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현기영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된 이래 중후한 문체로 제주 4·3 항쟁을 비롯해 잊혀진 우리 현대사의 이면을 되살리고 조명하면서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는 작품활동을 해왔다.


소설집 『순이 삼촌』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 장편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 타는 섬』 『지상에 숟가락 하나』, 그리고 수필집 『젊은 대지를 위하여』 『바다와 술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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