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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어느 신입생의 죽음과 세계수준 연구중심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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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8일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신입생 한명이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이 학생은 국내외 로봇 경진대회에서 상을 휩쓴 젊은이였고, 입학사정관제에 따라 잠재력을 인정받아 전문계고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2009년 이 학교에 입학했다. 일반고를 다니다가 로봇 공부를 위해 전학했을 정도였다니, 마침 새로 생긴 특별전형제도로 합격했을 때 본인과 가족의 기쁨과 기대는 누구나 짐작할 만하다.

 

이 학생은 열심히 공부했지만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기 어려웠다고 한다. 수학과목에서 낙제했고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들이 버거워 학사경고가 나왔다. 언론들은 입을 모아 과학고 출신보다 수학능력이 취약한 일반고·전문계고 출신을 위한 사전교육 프로그램이 미비하다거나 학생상담 등 사후 프로그램이 튼튼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모두 타당한 보도지만, 세심한 학생지도의 부족은 어느 한 대학이 아니라 한국 대학 전체가 안고 있는 허점이다. 문제 해결방안은 이 비극에 대한 철저하고 객관적인 진상조사를 바탕으로 차분하게 접근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징벌적 등록금이라는 희한한 제도

 

유서도 없었기 때문에 사고 전모에 대해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이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점 두가지는 다시 한번 부각시켜 따지는 일이 긴요하다. 그것은 징벌적인 등록금 제도와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라는 문제들이다.

 

카이스트는 입학생에게 등록금 면제와 병역혜택 등을 베풀어 과학기술분야의 영재교육을 해온 특별한 대학이다. 그런데 현 서남표 총장은 개혁의 이름 아래 2008년부터 징벌적인 등록금 제도를 도입했다.

 

보도에 따르면, 성적 평점이 4.3 만점에 3.0에서 3.3 미만에 머물면 이공계국가장학금으로 면제되던 기성회비를 최대 150만원까지 내야 하고, 3.0 미만은 다시 0.01점마다 6만원을 더 내야 한다. 또 8학기에 졸업하지 못하면 연 1천만원이 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이처럼 희한한 제도가 좋은 성과를 낳은 선례가 과연 나라 안팎에 있었는지, 어떤 납득할 만한 근거에서 이 제도가 도입되었는지 다만 궁금할 뿐이다. 육·해·공군의 사관학교도 생도가 특정 과목에서 낙제가 예상되면 개별 보충수업 등으로 보완 기회를 준다.

 

합격선에 도달하게끔 거듭 재교육도 하며 그런 후에야 낙제나 퇴교 조치가 뒤따른다. 엄정한 군율이 앞서는 사관학교도 이럴진대, 과학기술 분야의 수재를 육성하는 대학이 학력 보완의 기회조차 충분히 제공하지 않고 돈으로 징벌을 가하면 다 잘하리라는 식으로 나가는 일은 스스로 교육기관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금액은 웬만한 범법행위에 부과되는 벌금과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이 징벌적 제도가 전문계고 출신을 포함하여 전체 학생에게 어떤 부작용을 일으켰을지 불을 보듯 환하다.

 

영어강의, 강요로 될 게 아니다

 

특정 대학을 비방하려는 뜻은 조금도 없다. 영어강의 문제에 이르면 그것은 최근 한국 대학을 휩쓸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드디어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수학, 과학만이 아니라 영어 역시 실력 향상에 시간과 투자가 필요한 과목이다. 전문계고 학생의 영어능력은 고교입학 시점에서도 다른 고교에 비해 평균적으로 떨어지지만, 고교 교과과정의 영어 비중도 미미해서 사실 대학입학 후에 이를 만회하기란 쉽지 않다.

 

내가 재직하는 학교의 어느 공대 교수에 따르면, 과학고의 영어 비중도 일반고보다 낮아 과학고 출신 공대생들이 종종 전공 실력은 월등한 데 비해 영어 구사력이 뒤처지고 그러다보니 영어에 더욱 등한해져서 학문적 발전과 사회 진출에 지장이 많다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요컨대 영어가 약한 학생에게 자기 실력을 보완할 기회를 우선 부여해야지 무조건 영어강의를 강요할 일이 아닌 것이다.

 

로봇 연구에 대한 열정에 불타는 유망한 젊은이가 힘든 내용의 수학, 과학을 영어강의에 대한 충분한 사전훈련 없이 허덕이며 수강하다가 낙제했을 때의 좌절감이 어떠했을까. 관심 분야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자존심 강한 인재였기에 더욱 절망하기 쉬웠을 것이다. 정반대되는 사례지만, 친분이 있는 어느 교수는 한 명문대 공대에 아들을 보냈다.

 

미국 유학기간에 아이도 그곳에서 몇년을 자란 덕인지 영어를 잘하는 편이지만, 어느 전공과목의 영어강의는 담당교수가 부정확한 발음으로 교재를 읽어 내려가는 식이어서 고교시절에 흔히 그랬듯이 강의는 안 듣고 `자습시간`으로 삼았다고 한다. 물론 대학 영어강의 대다수가 이처럼 어이없는 상황은 결코 아니지만 그 부작용은 단순한 과도기적 현상으로 돌리기 곤란하다.

 

성공사례 찾기 힘든 맹목적 경쟁논리

 

징벌적 등록금제나 하향식의 획일적 영어강의 강요는 맹목적인 경쟁지상주의나 세계화를 내세운 시장만능주의에서 비롯된 제도이며, 국내외 어디에서도 장기간에 걸친 성공사례를 찾기 힘들다고 믿는다. 면학 분위기 향상을 위한 적절한 당근과 채찍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요, 대학의 영어강의가 내실 있게 확대될 필요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합리적 사유와 객관적 검증이 으뜸가는 잣대가 되어야 할 대학이라면 이런 제도는 마땅히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한다.

 

서구 선진대학과 달리, 우리는 외국인 교수를 뽑을 때 "5년 후에는 한국어로 정규강의가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모든 강의를 몇 년 안에 영어로 하고야 말겠다는 정책을 자랑으로 삼는 대학도 있다. 물론 서구와 우리는 다르다.

 

비교적 서로의 언어를 배우기 쉬운 서구국가들과 달리 인도유럽어계의 영어와 알타이어계의 한국어는 너무도 달라 익히기 어렵고, 문화와 역사의 차이까지 감안하면 서구학자가 한국어를 교육언어로 사용하기는 한국학 전공자라 해도 매우 힘들다. 그만큼 교육의 언어, 학문의 언어를 무엇으로 택하느냐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교육언어를 영어로 택할 때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대책이 빠진 영어강의는 재고되어야 한다. 실제로 영어강의를 밀어붙이는 몰 주체적 발상은 대학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교육의 본령 지켜야 세계수준 대학도 가능해

 

당장 세계수준 연구중심대학(WCU) 사업은 감사원 감사에서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으며 이공계의 생각 있는 교수들이라면 누구나 그 허술함을 질타한다. 또 전공분야의 특성이나 학생 능력을 외면한 막무가내 식 영어강의는 영어를 이미 잘하는 학생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여 교육의 본령을 벗어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입전형제도가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진 현실에서 다양한 전형으로 뽑은 학생을 각자의 능력과 필요에 맞춰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문제는 전면적 실태조사와 심도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 대입제도에서 가장 오래된 특별전형은 정원 외로 뽑는 농어촌특별전형일 것이다.

 

농어촌 학생들이 생활과 학업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대학교수로 근무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접해왔지만, 의미 있는 분석 자료를 읽어본 기억이 없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교육당국이나 개별 대학이 시행한 지 십수년이 된 이 제도의 수혜학생들을 추적하여 그 성과와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책을 마련했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

 

이처럼 안일에 젖은 교육당국과 대학, 그리고 교수진 탓에 이번 사건과 같은 비극이 터져 나옴을 직시할 때만이 한국의 대학은 좌절과 죽음으로 가는 허위의식의 지배에서 벗어나 사회의 정신적·지적 중심으로 복귀할 가능성을 열 수 있다.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김명환(金明煥)

1958년 서울 출생. 문학평론가. 서울대 영문과 교수.

주요 평론으로 「87년 이후 민족문학론」등, 역서로 『문학이론입문』(공역)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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