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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안철수 현상'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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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역시 한국정치는 바람에 크게 좌우된다. 계속 식지 않는 `안철수 현상`을 보고 난 느낌이다. 왜 선거만 다가오면 바람이 정당정치, 제도정치를 압도하는 것일까? 제도보다 지도자의 인격과 영도력을 중시하는 중국이나 한국의 전통적인 정치문화에 일차적으로 기인할 것이다.

 

소외된 대중의 한과 열망에 기초한 바람의 정치는 조직, 제도, 법 등 그동안 축적된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예측하지 못했던 강력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한국정치의 역동성이 여기에 있다.

 

후꾸시마 원전사태라는 대참사를 겪고 나서도 아무런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일본정치의 답답함과 대비된다. 그런데 이번의 안철수 현상에는 과거의 바람과 비슷한 점도 있지만 시대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점도 보인다.

 

새로운 리더십을 갈구하는 대중

 

기성정치와 정당에 대한 불신이 비정치의 정치, 탈이념의 정치, 제3의 후보에 대한 환호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안철수 현상을 보는 언론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도 사익을 포기하고 공익을 앞세운 인물, 권력을 잡았을 수도 있는 압도적 지지율을 뒤로하고 후보 자리를 양보한 쿨 한 태도, 솔직함과 물러남의 미학에 대중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있다. `부자 만들어준다`는 구호의 허상을 체험한 대중은 이제 새로운 리더십을 갈구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에 집약된 코드는 IT 전문가라는 상징, 기업 경영자로서의 경력이다. 창의성, 도전, 소통과 공유 등을 내용으로 하는 IT기술은 이 시대의 경제와 사회문화를 선도하고 있고, 안철수는 그러한 기술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청년들의 역할 모델이다. 그리고 CEO로서의 그의 경력은 필자가 `기업사회`라고 부른 바 있는 이 시대의 추세에 들어맞는 리더십의 전형이다.

 

IMF 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경쟁력과 효율성의 논리는 도덕성을 뒤로 밀쳐냈으며 모든 사회구성원을 경영자, 투자자, 소비자로 호명했다. 그래서 자리와 이익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섰으며 기업경영으로 사회에 공헌한 그의 경력은 21세기 초반 한국의 시대적 분위기에 잘 부합한다.

 

이 점에서 안철수 현상은, 이명박식 토건주의 기업가에게 신물을 느끼면서도 변화를 위해 비판과 투쟁을 앞세우는 쪽보다는 사회공헌의 이미지에 훨씬 편안함을 느끼는 이 시대 청년들의 기대와 열망을 반영한다. 2002년 정치인 노무현에 열광했던 20,30대와 화이트칼라가 이제는 전문가, 경영자 안철수를 주목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노무현 바람과 다른 대중의 반란

 

둘째, 안철수 현상은 과거 노사모에서 시작된 `팬덤(fandom) 정치`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1990년대 서태지에서 시작해 최근의 소녀시대까지 온 한국의 팬덤 문화는 정치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팬덤 정치는 특정 후보를 그가 속한 정당의 이념과 노선, 정강·정책을 보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좋아하듯이 지지하는 태도를 말한다.

 

팬덤에서는 후보가 주는 이미지가 이성적 고려를 압도한다. 팬덤 정치는 `강남 좌파` 현상과도 상통하는데, 모두가 소비사회의 한 문화현상이다. 대중은 자신과 처지와 이해를 같이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닮고 싶거나 도달하고 싶은 대상, 특히 이 자본주의사회에서 일정한 재력과 스펙을 갖춘 사람을 선망한다. 이 시대의 우상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도 바르고 스펙도 따라야 하지만, 돈도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안철수 바람은 진보정치, 노동정치의 변화와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이다. 이념과 이익에 호소하는 진보정치의 지도자들은 평생을 바쳐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고 정치판에서 새 흐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대중은 이들을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주류 미디어가 이들의 헌신과 노력을 폄하하거나 묵살해버리고 안철수 같은 새로운 스타에게 초점을 맞춘 것도 큰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진보정치가 미래지향적 대안을 내놓으며 이목을 끌기보다는 과거의 노선에 얽매여 분열하고 대립하는 모습만 보여주자,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정치 전체에 불만을 느낀 대중은 그 출구를 진보정치에서 찾지 않고 안철수라는 새 아이콘에서 찾은 셈이다.

 

분명 안철수 현상은 `촌스러운` 이명박식 토건정치, 거짓말 열전, 노골적 부자 편들기에 신물이 난 대중의 반란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노무현 바람과는 달리 진보노선에 식상하고 기업사회, 소비사회, 스펙문화, 영상미디어에 익숙해진 젊은 층의 정서를 반영한다. 따라서 야권은 젊은이들을 투표장에 나오게 하거나 그들의 열정에 불을 댕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안철수 현상에서 엿보는 한국정치의 미래

 

한편 안철수 바람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 전자의 경우 대중이 바람에 덜 흔들리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정당, 시민사회, 노조 등 중간집단이 극히 취약한 점과 관련돼 있다.

 

이것은 멀게는 정치권에서 이념과 정책 대결을 차단하고 선거 외에는 대중이 일상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해온 분단체제, 극우반공주의에 비롯한다.

 

그러나 이 바람은 기존의 정당과 노조가 대중의 요구를 담아내기에 낡은 조직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동시에 던지고 있다. 한국은 제대로 된 정당정치, 계급정치를 겪기도 전에 그 단계를 이미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철수 바람은 선거 밖에서 대중을 일상정치로 유도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방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어쨌든 바람은 요란하고 쓰레기를 날려버리기도 하지만 풀 한포기 조차 쉽게 뽑아내지 못한다. 바람은 일시적 변화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결코 기성 제도와 법과 돈의 힘을 이기기 어렵다. 대중이 한때의 바람으로 변화가 오리라 기대했다가도 나중에는 실망과 배신감을 맛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에서도 오바마 바람이 그 시작은 요란했지만 지금 서민대중은 큰 실망감을 내비치고 있다. 워싱턴의 강고한 기득권세력이 오바마를 순치시키는 데 거의 성공했기 때문이다.

 

결국 변화를 위해 바람에 기대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 지속 가능한 변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해 보인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변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여러 가지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창비주간논평>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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