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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여성유권자의 정치감각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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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미 고려대 아세아문제

연구소 HK연구교수

 다시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서울시장을 비롯해 지역 선량들을 뽑는 보궐선거에 이어 내년 봄 총선, 또 대선으로 이어지는 빽빽한 일정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전임 시장의 느닷없는 승부수로 갑자기 펼쳐진 선거판이 시민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비용만 해도 300억이 넘는다는데, 앞서 치러진 무상급식 주민투표 비용 182억, 각 후보 진영의 선거비까지 더해보면, `공인`이라는 정치인의 책임의식이 연예인보다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와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아무튼 선거는 시작되었다. 흔히 여성은 남성보다 정치에 무관심하다고들 한다. 연일 언론을 달구는 네거티브 공세, 엎치락뒤치락하는 경마식 지지율 보도를 안주 삼아 정치토론에 열을 올리는 남성들에 비하면 그럴지도 모른다.

 

이른바 선거 전문가들은 매일 저녁 여론조사를 돌리면서 엊그제의 폭로와 오늘의 기자회견에 유권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전략이 누구에게 유리한지, 시시각각 판세를 읽고 싶어 한다. 현미경을 들이대듯이 표심을 파악하고 정확하게 득표수를 예측하는 것이 곧 정치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여성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그러나 여성들은 단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정치감각을 갖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장 누가 이기고 지는가, 몇 퍼센트의 지지율을 얻는가에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것 같다. 하지만 선거 이후의 살림살이, 잘못된 정치로 더 고달파질지 모르는 인생살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남성보다 더 간절하고 뜨겁지 않겠는가.

 

현명한 여성 유권자라면 당장 며칠 후의 정치판세가 아니라, 새로 선출될 시장의 임기가 끝나는 2014년, 그리고 이번 선거의 정치적 연쇄작용 안에서 선출될 다음 대통령의 임기인 2017년까지를 내다볼 것이다.

 

그렇게 인생의 다음 고개를 생각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 공부하고 젊은이들은 어디에 취업할 것이며, 나이 들고 몸이 불편한 가족은 또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함께 걱정하고 책임 있는 대안을 찾아나갈 지도자는 과연 누구일까를 살피지 않겠는가.

 

이번 선거는 여성들에게 좀 특별해 보인다. 여성후보들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물론 전에도 서울시장 후보로 여성이 출마한 적이 있으니 최초는 아니다. 하지만 `최초` `홍일점` 같은 식상한 상징성에서 벗어나, 여당과 야당의 경선과정에 다수의 여성후보들이 참여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사건이다.

 

여성정치인들이 활발한 의정활동과 엄격한 자기관리를 통해 이만큼 성장한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다른 한편, 기존 정당을 향한 극심한 불신과 회의를 피해가는 차선책으로 깨끗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여성정치인들을 내세웠다는 비판도 나올 법하다.

 

여성정치인을 둘러싼 통계적 역차별

 

`여성 이미지`가 과연 여성정치인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배타적 연줄망, 각종 이권의 합종연횡으로 촘촘하게 엮여 있는 현실정치의 외피를 뚫고 들어가 여성들이 중견 정치인으로 자리 잡기란 그리 녹녹치 않은 일이다.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비례대표할당제에 힘입어 14.7%로 늘었지만, 광역시장이나 도지사로 여성이 선출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처럼 척박한 여건에서 당당히 후보로 나선 여성 정치인들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앞서가는 여성정치인에게는 일종의 통계적 역차별이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원래 통계적 차별이란 여성의 고용불평등을 설명하는 교과서적 개념이다. 개별 여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고용주들은 여성 전체의 이직률이 남성보다 높다는 통계적 정보에 의존하여 여성보다는 남성을 고용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성은 개인의 능력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노동시장에서 차별을 받게 된다.

 

이를 뒤집어서 정치영역에 적용해본다면, 여성 전체의 정치참여가 남성보다 낮다는 통계적 정보에 근거하여, 정치에서 소외된 여성의 대표성을 보완하기 위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성립된다.

 

여성의 정치참여가 저조할수록 통계적 역차별의 정당성은 높아진다. 여성 국회의원, 선출직은 아니지만 국정에서 막중한 역할을 하는 여성 총리 및 여성 장관의 상징성은 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정치인은 정치로부터 소외된, 침묵하는 소수자인 여성시민을 대변할 책무를 원초적으로 지고 있는 셈이다.

 

`여성 이미지`의 상투성과 시대착오

 

역대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유력한 후보로 끝까지 선전했던 여성 정치인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는 경선과정부터 다수의 여성후보들이 등장했다. 이제 `최초` 또는 `홍일점`의 마법은 점차 효력이 다해가고 있다. 구태 정치에 젖어 있는 남성과는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이른바 여성 이미지의 상징성도 그만큼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유능한 여성정치인들이 많아질수록 유권자들은 더 날카로운 시선, 더 꼼꼼한 선구안을 갖춰야 한다. 후보의 성별뿐 아니라 그들 각각이 `어떤` 여성인가를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총선, 그리고 대선에서 여성 이미지와 여성정치인의 역할에 대한 논란은 본격적으로 불거질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번 선거에 나섰던 여성후보들은 자신이 더 이상 `최초`도 `홍일점`도 아님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엄마 서울` `알뜰한 살림살이로 예산절감` 같은 슬로건은 너무 상투적이고 진정성도 없어 보인다. 전문직을 거쳐 정치인이 된 여성후보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바쁠지 유권자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이들이 자신의 알뜰한 살림능력을 믿어달라고 외치는 것이 과연 설득력이 있겠는가. 자칫 `두 딸을 대학에 보내느라고 허리가 휘었다`는 전임 시장의 실언을 되풀이하는 꼴이 될 것이다. 더욱이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라는 표현 앞에서는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당혹감마저 든다. 남편 없이도, 아이가 없어도 평등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면서 독립적인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자 노력하는 많은 여성들은 생각해보지 않는 걸까.

 

여성유권자 특유의 정치감각을 기대하며

 

눈앞의 판세보다 먼 미래를 살펴보는 여성의 특별한 정치 감각을 이제 제대로 발휘해보자. 돌이켜보면 이 모든 일은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문제로부터 출발했다. 이보다 더 여성의 일상생활과 밀착된 정책이 또 있겠는가?

 

그런데 무상급식 논쟁은 처음부터 돈과 세금, 분배와 복지에 대한 이념논란으로 치달아버렸고, 여성과 어머니의 입장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버는 여성도, 집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지 못하는 여성도, 아동과 노인을 어떻게 돌볼지 모두 걱정하고 있다. 혼자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다.

 

단지 내 아이에게 공짜 밥을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어린이에게 더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 방안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시작되는 선거의 계절 내내 여성 유권자는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지구상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고 자살률은 가장 높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 생명, 배려, 돌봄의 가치가 지금보다 더 존중받는 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이제는 여성정치인보다 여성유권자가 한층 큰 역할을 해야 할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황정미(黃晶美)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음. 서울대 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임. 현재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저서 『우리 안의 이분법』(공저), 역서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공역)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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