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집 / 창비
몇 일전에도 도종환 선생(난 여전히 이렇게 부르는 게 편하다. 개인적으로 시집을 먼저 만나고, 학교 선배님이라는 것을 알았고, 참교육운동과정에서,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에서,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현장에서 만났으나 그래도 선배님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의 에세이집을 읽었다. 『도종환의 삶 이야기: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 이 책은 1998년 출간한 산문집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의 개정판이다. 그때도 느꼈지만 글이 참 좋다. 난 도종환시인의 아주 오래된 팬이다.
꽤 오래전 전교조지부장으로서 옥살이를 하셨다. 재판정에서 그는 판사와 검사를 향해 자신이 재판을 받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했다. “아픈 아이가 있어 병원을 가기 위해 업고 뛰었습니다.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에 도착했는데 신호등이 고장이 나 있었습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신호등을 무시하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고장난 신호등을 무시한 죄가 있을 뿐입니다” 이런 요지로 최후진술을 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내보기에 그는 지금 봐도 천상 선생님이 분명하다.
우리나라 교과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시가 도종환 선생님의 시란다. 가만히 읽다보면 매우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일단 글맛이 깊고 그윽하다. 직설적인 것 보다 세밀하면서 내밀한 느낌이 있다. 그러면서도 현실과 타협하거나 에둘러가지 않는 치열함이 좋다. 읽을 때 마다 당시의 내 느낌이 정해주는 글이 다르다. 그래서 좋은 시인가보다. 이번에 나온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역시 읽는 느낌이 아주 좋다.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와 있다 내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 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자신이 걸어온 길을 어쩌면 이렇게 다 표현할 수 있는지 나는 감동만 할뿐이다. 그가 걸어온 길을 흘금거리며 보아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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