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들의 도시점령
우리 동네 이팝나무꽃이 만개했습니다.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대거 교체한 사람들은 '이밥'닮은 하얀 꽃에 만족하나요? 성장 느리고, 잎사귀 적어 간판 가릴 염려 없고, 떨어질 낙엽 많지 않아 행정력 낭비 없을, 행정 편의적 가로수, 거기에 병해충 거의 없는 완벽에 가까운 행정수로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좀 더 많은 잎으로 더위 식혀줄 나무, 증가하는 차량들 미세먼지와 내뿜는 탄소, 거기에 소음까지 줄여주고 방어해줄 나무, 속성수에 잎사귀 커다란 나무를 요구하는 시대로 다시 회귀했습니다.
이팝나무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선택 당했다가 다시 필요성을 의심받는다는 거 알고 있을까요? 그랬거나말거나 우리 동네 이팝나무들은 하얀색 꽃이 가득 피어나고 있습니다.
가침박달나무
청주 화장사에서는 매년 5월이면 가침박달나무축제를 엽니다. 가침박달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습니다. 화장사의 무진스님은 어느 날 화장사에 피어난 유난히 하얀 가침박달나무를 보호하고 더 많이 키워내기 위해 매년 '가침박달나무축제'를 하게 됐답니다. 작은키나무로 한국과 중국 일대에서만 서식하는 가침박달나무를 화장사 무진스님은 '깨침꽃'이라고 부릅니다. 깨우침을 이루라는 뜻인지, 깨달은 꽃이라는 뜻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단아하고 고운 심성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화장사를 지켜 오신 무진스님 닮은 꽃이 분명하답니다.
매년 5월이면,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가침박달나무를 위한 축제, 깨침을 얻으라는 법문으로 알아듣기 위해서라도 더 크게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고들빼기
벌써 꽃이 피어버렸습니다. 고들빼기김치 담그려면 더 서둘렀어야 합니다. 그래도 올해 봄 역시 장모님께서 고들빼기김치를 담가 주셔서 맛있게 먹고 있답니다. 역시 고들빼기 꽃은 봄에 보아야 예쁩니다. 아니, 봄바람 마음 바뀌듯 가을되면 이고들빼기 꽃이 예쁘다고 다시 말해야 할지도 몰라요. 사람도 그렇고 꽃도 그렇고 어느 곳에 피어있는지, 어느 녀석들과 어울려 있는지에 따라서 예뻐 보이기도 하고 덜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고들빼기 타령입니다. 난 고들빼기가 참 맘에 들어요.
금낭화
야생의 산지에서 어여쁜 꽃을 만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고자 욕심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집 앞마당에 옮겨 심게 됩니다. 야생에서 순하게 길들이려면, 바뀐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금낭화는 다행히 어지간해서도 잘 살아서 지금은 깊은 산속이 아니더라도 이맘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야생화가 됐습니다.
금낭화의 꽃말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너무 쉽게 야생에서 재배가 가능해서 이렇게 꽃말이 만들어진 것일까요. 화려하고 세련된 매혹적 모습으로 주렁주렁 한개도 아닌 수십 개의 꽃송이를 매달고 있는 금낭화의 아름다움이, 이렇듯 짧은 미소 하나에 넘어가 버리는 쉬운 여자를 떠올리게 하나요? 그래도 고혹적 아름다운 금낭화라면.. 예쁘면 뭐든 용서되는 세상인데요 뭐~
둥글레
요즘 산에 오르다보면 둥글레 꽃을 볼 수 있답니다. 잎사귀 달고 있는 줄기에 아래를 향해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둥글레 꽃은 신비스럽습니다. 잎과 줄기가 뭔가 숨기고 있어서 더 그런 느낌일 겁니다. 수수하면서도 매력적인 모습이에요. 흔하던 둥글레가 언제부터인지 뿌리를 활용해 차로 나오고,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둥글레는 더 이상 산야초라고 부르기 민망하게 됐습니다.
당뇨에도 좋고 자양강장제로도 좋고, 다이어트에도 좋고.. 뭐에도, 뭐에도 좋다고 하니 무슨 만병통치약을 설명하는 것 같아요. 아무튼 그렇고 그런 성분들이 들어있다는 이야기이니, 우리네 산야초 대부분이 몸에 좋은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그러려니 하시면 될 것 같아요. 특별히 약으로 활용하는 사람들 말고 우리네 평범인들이야 그저 산에서 만나면 반갑고 신비스러우며 아름다움에 반하는 둥글레로 기억됐으면 하는 마음이지요. 다시 돌아온 요즘 같은 계절 둥글레의 산골처녀 같은 수수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답니다.
민들레
민들레가 밟아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속이 비어있는 줄기 때문입니다. 꺾였다가 다시 우뚝 서서 솜털 같은 씨앗을 좀 더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솜털 닮은 날개는 씨앗을 하나씩 매달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좀 더 멀리 뿌리내릴 곳을 찾기 위해 비상합니다. 외래종 민들레는 이른 봄부터 서리 내리는 순간까지 몇 차례 꽃을 피웁니다.
잎은 사람에 밟혀도 생존가능한 모양과 섬유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꽃은 하나하나가 모두 수정가능하며 수십 수백 개의 꽃송이를 한꺼번에 피워냅니다. 줄기는 대롱처럼 속을 비워 꺾여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돼있습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최상의 조건으로 진화했습니다. 민들레가 약해보인다구요? 천만에요. 엄청난 생존전략은 우리네 청소년들에게 본받아야 한다고 알려주어야 할 지혜를 담고 있는 거 아닐까요.
붉은토끼풀
부처님오신날 연등을 닮았죠? 어느 샌가 우리네 곁에 슬그머니 다가와 이웃처럼 행세하고 있는 붉은토끼풀입니다. 처음에는 사료용으로 들여왔다고 하기도 하고, 몰래 다른 곡류에 섞여 들어왔다고도 합니다만 아무튼 이미 우리네 산야 곳곳에 피어나고 있는 귀화식물입니다.
기존 토끼풀은 안 그런가요 뭐. 무심천변 토끼풀과 붉은토끼풀이 경쟁하듯 서로의 땅을 양분하고 있습니다. 붉은토끼풀이 키도 더 크고 잎도 더 커 기존 토끼풀의 영토를 점령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기존의 토끼풀의 생명력도 만만치 않거든요. 이제 붉은 토끼풀꽃이 한창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선토끼풀'이라고도 하는데요. '선'은 한자어로 '붉다'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그냥 붉은토끼풀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답니다. 연등 닮은 붉은토끼풀을 부처님오신날 육보시중 꽃과 등을 대신해서 무더기로 바치겠습니다.
창질경이
경남 하동군은 지난해 11월 생태계교란 외래식물 12종에 대한 대대적인 퇴치작업을 벌였답니다. 환삼덩굴이며 미국자리공이며, 돼지풀 등 12종이라는데 이중 창질경이가 포함돼 있습니다. 유럽원산으로 언제부터인가 우리네 주변까지 서식지를 넓혔어요. 야생종의 성장을 방해하는 생태계 교란종이라는데, 그랬거나 말거나 제가 출근하는 무심천변에 창질경이 꽃이 한창입니다.
모양새가 창끝을 닮았다고 창질경이라고 한답니다. 줄기 빳빳하게 세우면 다른 풀꽃들보다 더 높이 키 자랑도 마다치 않습니다. 이미 무심천변에는 지금 한창 꽃대를 세우고 있구요. 가을까지 이어집니다. 교란종이라 일컫는 녀석들의 특징은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 번식이 가능한 녀석이 많아요. 그러니까 퇴치작업을 벌이는 거겠죠? 무심천변에는 퇴치 작업 안하시나요? 뭐 그런다고 퇴치 될 녀석들이 아닌 듯 합니다. 그냥 다이어트거나 정력에 좋다고 퍼뜨려야 멸종위기 종에 가깝게 만들어 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하
칠엽수
충청북도 도청정문앞 도로변에 심어져 있는 나무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로니에' 바로 칠엽수랍니다. 그중에서도 가시칠엽수라고 합니다. 가을이 되면 도깨비 방망이처럼 열매가 열립니다. 도청을 바라보면서 꽃을 피운 마로니에 하얀색 꽃들이 한창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일본산이면서 30미터쯤 되는 큰키나무에요.
마로니에라는 이름은 사실 프랑스의 마로니에 공원 가로수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죠. 그래서 우리나라 대중가요 중에 '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면~'뭐 이렇게 부르는 노래도 있답니다. 엄밀하게는 칠엽수와 마로니에가 서로 다른 나무라고 합니다. 하나는 칠엽수과의 칠엽수, 또 하나는 나도밤나무과의 마로니에라고 말이죠. 나무공부를 하는 저도 알아보기 힘들어요. 그냥 잎이 일곱 개 쯤있으면 칠엽수로구나 하는 거죠. ㅎㅎ
마로니에는 커다란 잎사귀도, 하얀색 꽃송이도 아름답습니다. 낙엽 질 때 이 커다란 잎을 떨구는 그 심정이란, 남자들 아픈 가을 앓이를 하는 그 모습 꼭 그대로 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더 많은 꽃의 속살을 볼 수 있답니다. 커다란 나무에 이렇듯 앙증맞은 꽃을 피우는 것을, 몽마르뜨 언덕 내려다보이는 마로니에 숲의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오르면.. 생각만 해도 장관을 이룰 듯 합니다 .
토끼풀
꽃반지 끼고 놀던 어린 시절 토끼풀 추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겠죠? 솜씨 좋은 친구는 팔찌에 근사한 꽃목걸이-거의 화환 수준에 걸 맞는-를 만드는 주재료가 토끼풀이었답니다. 토끼가 특히 좋아해서 아카시 잎과 토끼풀을 더 자주 뜯어다 주었습니다.
토끼풀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밑둥치부터 아래로 쳐져, 나중에는 꽃송이 전체가 밑으로 쳐져있게 됩니다. 그 이유는 벌 나비가 수정을 해준 녀석부터 '난 결혼했어요'라며 알아서 더 이상의 벌 나비가 다가들지 못하게 하는 거에요. 당연히 꿀과 향기는 밑에 있는 꽃송이부터 나기 시작해서 점점 가운데 부분으로 나아가는 거지요. 이런 거 보면 풀꽃들의 아주 작은 움직임조차 생존을 위한 전략에 다름 아닙니다.
할미꽃
할미꽃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유는, 벌이 꽃송이 속으로 들어가 날개를 퍼덕이면서 꽃술을 더 많이 묻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야 다른 꽃송이들과 수정 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겸손하거나 노인처럼 등이 굽어 고개 숙인다고 한다지만, 다 자신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략인 셈이었던 거지요. 결국 씨앗이 만들어 질 무렵 다시 줄기를 고추 세우고 하얀 갈기처럼 씨앗 멀리 보낼 날개를 휘날립니다. 처음에는 저도 할미꽃이 아닌 줄 알았지 뭐에요. 약간 배신당한 느낌이랄까.. 전혀 다른 두개의 모습을 보고 난 후 부터 내게 할미꽃은 작고 여리고 수줍기만 한 꽃이 아니고 강열한 붉은 빛의 고혹적이고 도도한 풀꽃으로 생각되고 있답니다.
붓꽃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에 매혹됐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의 그림이 확 눈에 들어오고 나서 인터넷을 뒤져 그의 그림을 찾아보았습니다. 고흐와 관련된 책들과 그림 집을 서점에서 뒤지기도 했습니다. 그를 위한 노래 역시 즐겨듣는 노래입니다.
어린 시절 산으로 들로 뛰어다닐 때 붓꽃은 참 멋진 야생화였습니다. 뭔가 도도하고 이성적이며 선비들을 위한 꽃으로 생각됐습니다. 이름이 붓꽃이라서 그랬는지, 그 강렬한 색과 도도한 모양 때문에 그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고흐의 그림 속 붓꽃을 발견하곤 다시 붓꽃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꽃 한 송이를 두고 꽃의 이미지와 그에 걸 맞는 상상을 하게 된 것은 붓꽃이 처음이었습니다. 내가 붓꽃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며, 스토리를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내게 붓꽃은 상상력을 상징하는 풀꽃입니다.
유채꽃
더 이상 유채꽃은 제주도의 명물이 아닙니다. 우리지역 청원생명축제장에서도, 어느 시골 토종벌을 키우는 농가에서도, 청주시 무심천변 꽃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됐습니다. 이제는 우리 동네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나대지에 동사무소 공공근로 아주머니들이 심어놓은 꽃이 됐습니다.
결혼 10주년 되던 해, 처음으로 어린 아들과 딸과 함께 가족여행을 제주도로 가게 됐습니다. 제주도의 유채꽃을 처음 보게 된 시절입니다. 당시에는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유채꽃 밭에서 가족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노란색의 추억은 벌써 십 수 년 전으로 밀려나 있고, 유채꽃은 우리 동네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꽃이 됐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날 행복해 하던 집사람과 아이들의 미소는 추억뒤편 어른대는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내게 유채 꽃밭은.....
주름잎
논둑 밭둑 아주 작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주름잎 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녀석들의 전략은 엄청나게 많은 숫자로 부지불식간에 확~ 피어오르는 것입니다. 바로 이 녀석들이 송홧가루 날리는 들녘 밭둑에서 부터 활짝 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삼과 한해살이풀인 주름잎은 사람이 밟고 지나간 흔적처럼 잎이 주름져 있어 이름 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그래도 꽃의 아름다움은 작다고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자면 여느 화려한 꽃 맵시와 견주어도 못하지 않습니다. 발 밑 조심하고 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피어오르는 주름잎을 찾아보세요.
미나리아재비
지금 철은 애기똥풀의 계절입니다. 어느 곳을 보나 모두 애기똥풀입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랍니다. 언뜻 보면 혼동을 할 것 같지만 워낙 다르게 생겨먹은 녀석이라 구별이 갈 겁니다. '미나리아재비'는 잎이 미나리를 닮아서 이름 붙여진 듯합니다. 꽃말이 '천진난만'이라고 하는데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미나리아재비'도 군락을 이루어 피어있어서 애기똥풀무리와 혼동할 수도 있겠는데요. 그럴 때는 꽃모양을 보시거나 잎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답니다. 이 녀석도 독성이 있어 민간에서는 다양한 약초로 활용했다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