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지음/ 김서연 만듦 / 천년의상상
강신주의 책 『김수영을 위하여』를 읽고 나서 몇 일 동안이나 망설이며 서평을 쓰지 못했다. 지금도 어떤 감상평을 남겨야 할지, 혹은 읽고 났더니 느낌이 어떠했노라고 할 말이 없다. 아니 엄청 많다. 책 한권으로 삶의 태도를 바꿀 수도 있다면 정말 훌륭한 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혹은 카프카가 그랬던 것처럼 꽁꽁 얼어붙은 호수를 도끼로 내리쳐 얼음을 깨뜨리는 것처럼 책한권으로 그동안의 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릴 수 있다면 인생을 뒤 흔든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강신주의 책을 벌써 몇 권째 읽고 있는 중인데 하나같이 좋다. 지금은 『철학 대 철학』을 들고 있는데 이것도 좋다. 그럼에도 『김수영을 위하여』는 참 좋았다. 이렇게 말할 수 밖에..
“김수영이 지향했던 새로움은 이처럼 ‘낡음’과 ‘새로움’이란 강박증적 저울추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김수영의 탁월함이다. 그가 새로움을 지향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로 하여금 새로움을 추동하도록 한 동력은 ‘단독성’에 대한 집요한 이상이자 이념이었다.”.. “김수영에 따르면 진정한 시인은 ‘남의 흉내를 내지 않고 남이 흉내를 낼 수 없는 시를 쓰려는 눈과 열정을 가진 사람’ 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잊지 말자. 그가 남의 흉내를 내지 않은 시를 쓰는 이유는 그가 한번 밖에 없는 자신의 삶, 다시말해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삶을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반공포로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아 포로로 있던 단 한순간도 잊지 못하던 아내에게 달려간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그의 친구와 살림을 차려버렸다. 사랑을 잃어버린 시인 김수영은 다시 되돌아온 아내와의 사랑 없는 가정살이를 지탱해나간다.
“경찰에게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갈비탕집 주인에게만 고래고래 소리치는 내가 비겁해서 서럽고, 사랑하지 않는 마누라와 자식을 핑계로 함께 살아서 서럽고, 월급 주는 이에게 바른 소리 한번 못하고 굽실거려 서럽고, 바라는 게 있어서 비쩍 마른 가을 거미처럼 늙어가는 내가 서럽다.”
강신주는 “아버지를 떠나보내던 날 화장터에서 나는 이제 김수영과도 이별을 고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고 밝힌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다. 글로 사랑받을 수 있다고 확신했던 청년에게 닥쳐온 위기상황에서 김수영은 멘토처럼, 혹은 아버지처럼 강신주를 지탱해 주던 선배였다.
이런 사유로 만들어진 이 책 『김수영을 위하여』는 나에게도 ‘단독성’ ‘스스로 도는 팽이’ ‘진창에 뿌리내린 거대한 인문정신’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내게 좋은 책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다시 읽고 싶어지는 습관이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나는 그대신 강신주의 또 다른 책을 들고야 말았지만...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 대니
나는 잠이 올 수 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 대니
나는 잠이 깰 수 밖에
김수영 1960년 10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