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순 / 자유기고가
모든 것이 흐물흐물해진 이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더 나은 삶을 발명할 수 있을까? 이 허물거리는 무한정한(혹은 그렇게 보이는) 자유는 우리의 축복인가 저주인가?
▲ 지그문트 바우만
-지그문트 바우만 (Zygmunt Bauman)의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중에서 한국 사회가 지그문트 바우만에 빠져들고 있다. `유행의 시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새물결),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 `리퀴드 러브` 등 바우만의 책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1925년 유대인으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직접 체험한 뒤 홀로코스트, 마르크스주의, 현대성 등의 주제에 천착하며 깊이 있는 사유를 발전시켰다. 야만의 시대인 20세기를 관통한 뒤 예측 불가능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이 현자의 통찰력은, 인간을 규정하는 조건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일깨운다.
1925년생이니 올해 89세인 노학자의 저서가 유행한다는 것은 대단하다. 서구권 학자의 책이 대중에게 널리 읽히는 것은 슬라보이 지제크 정도를 제외하면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한국에는 최근 알려졌지만 바우만은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탈근대` 사상가다. 1990년 정년퇴직한 후 현재 리즈대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1989년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간의 뿌리 깊은 연관 관계를 분석한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출간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초기에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영국 노동운동과 계급 문제를 연구했으나 점차 근대성의 문제에 천착하면서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을 가지고 현대인의 불안정한 삶의 양식을 설명했다.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에서 그는 개인의 해방과 자아실현, 시공간의 문제, 일과 공동체라는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이 `액체화`되었다고 진단한다.
현대인의 삶에 대해 변화를 추구하고,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멈추지 않는 것이라 설명하는 것이다. 그는 유동하는 사회의 문화는 `유행의 시대`로 규정한다. 문화는 이미 소비시장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유행에 종속된 현대인들이 소비하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의 기치 아래 온 인류가 공유하는 똑같은 문화는 결국 초국적 자본이 최대한의 이윤을 얻기 위한 상품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바우만은 포스트모더니티나 포스트모던이라는 시대 규정 용어 대신, 자신이 만든 "유동하는 근대(리퀴드 모더니티)"라는 신조어를 사용한다. 이 시리즈의 책을 많이 펴냈고, 국내에도 <액체근대>, <유동하는 공포>, <리퀴드 러브> 등 다수가 소개됐다.
포스트모던이라 통칭되는 시대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 사회학적인 공로가 있다. "포스트모더니티"라는 단어가 한국어 상으로는 "모더니티 이후" 정도의 의미 말고는 말해주는 게 별로 없는데, "리퀴드 모더니티"는 이미지로 강력하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사는지에 대한 그림이나 조감도를 갖고자 할 때, 유력하게 참고할 만한 사회학적 통찰 아닌가 싶다.
군사활동 시 불가피하게 따르는 민간인 피해를 이르는 ‘부수적 피해’라는 미국 군사용어를 확장해 현대사회 전반을 진단했다.
‘부수적’이라는 말 속에 도사리는 ‘고의는 아니다’라는 무책임함은 사회문제의 본질을 희석하며, 권리와 기회에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을 암묵적으로 가정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힘은 무력하고 사회적 연대는 힘들어진 개인주의 사회는 개인이 모든 걸 해결하거나, 낙담해 무너지거나를 요구받는 불안한 사회다.
바우만이 각광받는 것은 그런 시대에 연민 어린 시선을 가지고 발언하며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통찰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