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류산 등산축제가 열렸다. 5년 전부터 해마다 열리는 거류산 축제는 사전적 의미의 축제(축하해서 벌이는 큰 규모의 행사)나 festival(잔치" 축제" 향연)의 의미보다는 그저 단순화 해서 ‘거류산 등산하는 날’ 정도로 인식하면 좋을 법하다.
오늘 5회 거류산 등산축제는 우리가 어떤 행사를 치를 때 그 본래 목적이나 취지를 잃게 되면 어떤 왜곡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만 했다.
우선 행사장에 들어서는 순간 어떤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거류산 아래에서 곧 벌어질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부쩍 많아진 행사용 텐트" 버라이어티 쇼가 열린다는 점을 직감하는 무대장치" 산자락을 쩡쩡 울리는 음향 따위에서 도심에서나 있을 법한 여느 일반 행사장과 다를 바 없었다. 이른바" 만추지절에 심신을 달래고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해보려던 마음가짐은 입구에서부터 달아나버리기 딱 좋은 분위기였다.
누가 VIP(매우 중요한 사람)인지는 몰라도 행사장에는 그들만을 위한 전용 주차장이 마련돼 있었다. 대체 누가 VIP란 말인가? 군수가? 부군수가? 국회의원이? 아니면 도의원 군의원이? 정말 VIP는 타지에서 거류산 축제 소문 듣고 먼 길 마다않고 달려온 그들이 바로 VIP가 아닌가!
그저 도착하는 순서대로 자동차 주차시키고 약속 시간되면 다 같이 모여 몸 풀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면 될 일이다. VIP로 불리는 이들의 복장을 보면 산에 오르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왜 그들이 하는 인사말을 듣게 하고 남의 귀한 주말시간을 헛되이 빼앗는가 말이다.
산이 좋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축제를 연다면서 산사람들의 기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도무지 모르는" 몰라도 너무 모르는 그 근사하고 웅장한 무대는 도대체 무언가. 그 곳에서 북치고 꽹과리치고 징 울리면 산 속 야생동물들이 어떻겠나? 요즘은 산에서 야호 소리도 하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어젯저녁으로 계획됐던 거류산 달빛사냥인지 달빛콘서트인지가 비가 내려 취소되고 오늘 저녁에 열린다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정말 산 짐승들이 스트레스 받기 딱 좋다.
무대 앞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라. 95%가 노인들이다. 누가 봐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사진이나 영상에서 보이는 이들이 과연 이런 복장으로 거류산을 오를 수 있겠나? 아니라면 대체 이 노인들은 그곳까지 걸어 올라왔나. 자신이 운전해 올라왔나. 왜 이렇게 노인들을 동원하는가. 무대 앞 의자라도 없앴더라면 산에 오를 사람들만이라도 그 자리에 서서 무대 앞을 매우지 않았겠는가. 웅장한 무대가 애당초 불필요한 것이었지만 노인들을 동원하지 않았더라면 최소한 지금과 같은 추한 모습은 안 보였을 것 아닌가 말이다.
그저 밝은 모습으로 행사를 준비한 측에서 ‘반갑습니다. 안전하게 잘 다녀오시고 내려와서 막걸리 한 잔 합시다’ 하면 될 것을 무슨 국민의례가 필요하며 우렁차게 반주 울려서 산 속 동물들 괴롭히나.
또" 엄홍길 대장이 차가 밀려 도착이 늦어지면 행사는 행사대로 진행하면 될 것을 왜 그가 올 때까지 그렇게 지루하게 똑 같은 엄홍길 홍보 나레이션을 틀어놓아 마치 엄홍길 추모식 같은 분위기로 만들고" 자리에 앉은 노인들을 피곤하게 하는가. 그 순간은 차라리 엄홍길 추모행사장 같았다. 10시에 시작한 행사였는데 10시 52분이 되도록 엄홍길 대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왜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엄홍길 대장 올 때까지 자리에 잡아두는가. 노인들이 엄홍길 보고 싶다고 하던가?
등산 하러 갔는데" 가을 거류산 즐기러 갔는데 무슨 식이냐 식이~ 내빈소개는 또 뭐며. 행사장에 참여하지도 않은 사람 줄줄이 써서 스크린에 비쳐주면서도 ‘의전을 간소하게 하기 위해 소개하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엉뚱한 짓인가 글쎄.
얼마 전 새로 취임한 군수는 수행비서가 차문을 열고 닫아주는 그 오랜 관행을 없애고 자신의 손으로 자동차 문 열고 타고 내린다더라. 이게 바로 변화라면 변화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을 이제야 고쳤다. 앞으로 어떤 행사를 하든지 일반군민들을 VIP로 생각해보고 행사를 준비해보라. 그렇게 변화하면 오늘과 같은 터무니없는 행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