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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먹만 한 빗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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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7월 26일, 조선의 선비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청나라 건륭황제(乾隆皇帝)의 70수를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에 끼어 연경(燕京) 곧 지금의 북경으로 가고 있었는데 산해관에서 연경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일행은 이날 큰 비를 만났다. 아마도 소나기였을 터인데 연암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광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갑자기 난데없는 냉수 한 종지가 손등에 덜컥 떨어져 몸이 오싹했으나 사방을 돌아다보아도 물을 뿌리는 사람은 없었다. 또다시 주먹만 한 물덩이가 창대가 쓴 벙거지 가장자리에 탕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같이 간 부사(副使)의 입을 빌려 “빗방울 크기가 술잔만 하니 대국(大國)의 빗방울은 역시 무섭더군요”라고 『열하일기』에 적고 있다.


‘문명의 숲’이라 했던 곳이었는데


빗방울이 주먹만 하고 술잔만 하다는 것은 물론 과장된 표현이지만 이 말은 당시 조선 선비들의 중국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은 그만큼 크고 넓은 곳이었다. 중국은 크고 넓을 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문명국이었다. 연암과 같은 시기에 중국을 다녀온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는 중국을 ‘문명의 숲(文明之藪)’이라고 했다. 그만큼 중국은 아름답고 화려한 곳이기도 했다.


연암이 다녀간 지 209년만인 1989년에 가본 중국은 연암과 초정이 본 중국과 너무나 달랐다. 빗방울은 오히려 한국의 빗방울보다 작았고, 가는 곳마다 “문명한 도시를 건설하자(創建文明城市)”는 등의 문명화 표어가 중국 천지를 뒤덮고 있었다. ‘문명의 숲’이었던 나라가 문명화를 외치고 있다니! 모든 것이 불결하고 사람들은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1992년 한·중 양국은 국교를 맺었다. 이후 한국 사람들은 중국을 드나들면서 중국과 중국인을 어쭙잖게 보고 으스대기 시작했다. 어떤 관광객은 달러를 흔들며 돈 자랑을 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마치 우리가 대국이고 중국이 소국인 양 그 위에 군림하려 들었다. 한편 양국간의 인적, 물적 교류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07년 8월 24일은 이렇게 국교를 수립한지 15주년이 되는 날이다. 15년 동안 한국과 중국의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수교 초기만 해도 기술과 경제력에서 한국이 우위를 점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경제 성장률이 고작 4% 전후에 머물렀던 반면 중국은 10%대의 성장률을 계속 유지해왔다. 기술력도 이제 거의 대등한 수준이라고 한다. 중국은 이제 ‘세계의 공장’으로 불릴 만큼 성장했다. 초강대국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나라로 우뚝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에 ‘인문(人文) 올림픽’까지


유인(有人) 우주선을 쏘아 올릴 만큼 발달한 과학기술 못지않게 문화적으로도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다. 중국이 내세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구호는 ‘인문(人文) 올림픽’이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예모(張藝謀)가 연출하는 이 인문 올림픽의 개막식 행사는 ‘성당(盛唐) 시대의 재현’을 주제로 꾸밀 예정이라고 한다. 이 개막식 행사 계획에서 우리는,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를 배출한 화려한 성당시대의 인문정신을 부활시키려는 중국의 야심을 읽을 수 있다.


1993년에 내가 만난 북경의 대학생들은 『논어』 한 대목도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지금 중국의 소학교(小學校) 학생들에게는 당시(唐詩)를 30수 가량 외우게 한다고 한다. 막강한 경제력에다 인문학으로 무장까지 하게 된다면 중국은 천하무적의 국가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일한 자만(自滿)에 빠져 있다가는 경제적으로 중국의 하청국(下請國)이 될 것이고 문화적으로 중국의 주변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미 도둑맞은 발해사(渤海史)와 고구려사(高句麗史)보다 더 큰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중국의 빗방울이 또다시 주먹만큼 커 보이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글쓴이 / 송재소
·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 저 서 : <다산시선, 다산시연구, 신채호 소설선-꿈하늘, 한시미학과 역사적 진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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