級이 안되는 사람들이 높고 좋은 자리만 차지하여 갖은 악폐와 말썽을 일으킨 사례는 동서고금에 흔한 일이었던가 보다. 굳이 남의 나라 예를 들 것도 없이 이순신 장군도 이런 급이 안되는 사람들에 대하여, “권세 있는 사람들에게 아첨이나 일삼아 감당치 못할 지위에 까지 올라가서 국가의 일을 크게 그르쳤건만 조정에서는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하랴, 어찌하랴.” 이렇게 깊은 탄식을 했으니 말이다.
級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계급. 등급. 학급 등을 일컫거나 또는 정도나 수준에 따라 나눌 때의 일정한 구획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통칭 級이 안 된다거나 級이 모자란다고 할 때의 級은 어떤 지위나 자리가 요구하는 합당한 인품과 경력, 학식을 두루 갖춘 수준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니 그 자리에 맞는 인물이어야 제 격인데 소위 사람의 품격이 수준 이하일 때 級이 모자란다는 표현을 쓴다.
바둑에도 級과 단이 있다. 초급인 18급에서 실력을 쌓아 1급에 오르면 이윽고 대망의 단이 된다. 초단은 수졸(守拙), 2단은 약우(若愚), 3단은 투력(鬪力), 4단은 소교(小巧), 5단은 용지(用智), 6단은 통유(通幽), 7단은 구체(具體), 8단은 좌조(坐照), 9단은 입신(入神)이라 하여 級의 엄격한 권위와 위계를 구분하고 있다.
요즈음에는 갓 입단한 초단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 산전수전 다 겪은 능구렁이 같은 입신인 9단을 이기는 것이 화젯거리도 되지 않으며 저단인 이세돌이나 최철한, 박영훈 등이 세계대회에서 우승하여 복잡한 승단절차를 생략하고 곧바로 입신으로 직행하는 사례가 종종 벌어지고 있다.
시인 조지훈은 술을 마시는 데에도 급수와 단이 있다고 했다. 9級은 부주(不酒), 8級은 외주(畏酒), 7級은 민주(憫酒), 6級은 은주(隱酒), 5級은 상주(商酒), 4級은 색주(色酒), 3級은 수주(睡酒), 2級은 반주(飯酒), 초級은 학주(學酒)라 하여 주졸(酒卒), 초단은 애주(愛酒)라 하여 주도(酒徒), 2단은 기주(嗜酒)라 하여 주객(酒客), 3단은 탐주(眈酒)라 하여 주호(酒豪), 4단은 폭주(暴酒)라 하여 주광(酒狂), 5단은 장주(長酒)라 하여 주선(酒仙), 6단은 석주(惜酒)라 하여 주현(酒賢), 7단은 낙주(樂酒)라 하여 주성(酒聖), 8단은 관주(觀酒)라 하여 주종(酒宗), 9단은 폐주(廢酒)라 하여 열반주(涅槃酒)로 구분했다.
마지막 단계인 8단은 남들이 마시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빙긋이 웃는 상태이고 9단은 이미 한 잔만 더 들어가면 저 세상으로 곧 떠날 지경에 이른 상태다.
유도, 검도, 태권도 등의 무술에도 실력에 따라 엄격히 적용하는 級과 단이 있다. 요즈음에는 돈으로 주고 사는 가짜 단증이 나돌아 다녀서 단의 권위가 많이 훼손되고 떨어졌지만.
개인 회사에도 인재가 곧 경쟁력이라 하여 온갖 공정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찾아 공모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級이 맞는 인물을 채용하기 위해 관상이나 철학을 보는 사람까지 동원하여 심사위원으로 앉힌다는데 하물며 국가를 경영하는 자리에는 級이 맞는 천하의 인재를 널리 발굴하여야 한다. 그러한 인재를 찾기 위해 삼고초려는 하지 않아도 회전문 인사나 윗돌을 빼어서 아랫돌 괴는 식의 인사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인사가 만사란 말은 결국 級에 맞는 인물을 찾아 앉히라는 것이다.
전쟁에 승리하여 전리품 나누어 주듯이 주변 사람들에게 높은 자리 하나씩 나누어 주는 것은 꼴불견이고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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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룡<통영문인협회 회장> |
통영문인협회장을 맡고있는 정해룡님은 고성읍 출신으로 현재 한국전력 고성지점에 근무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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