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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판사가 문제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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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김승연 두 재벌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 때문에 여론이 떠들썩하다. 막대한 규모의 회사 돈을 빼돌리거나 조직폭력배처럼 집단 보복폭행을 한 재벌회장에게 법원은 이번에도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 파이낸셜타임즈에서 `한국의 재벌회장들은 사건만 일어나면 휠체어를 타고 탈출한다`고 비꼰 걸 보면, 이제 한국의 사법은 국제적인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정몽구 회장에 대한 판결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판결은 판사의 가치관과 양심에 대해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할 점을 던져주었다고 본다. 법을 어겨도 심하게 어긴 정몽구 회장에게 `준법에 관한 강연이나 기고를 해서 사회봉사를 하라`는 판결 내용은 그냥 들었으면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시사패러디로 착각했을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별로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본다. 다만 그것이 사회봉사명령이라는 제도를 희화화한 것임은 분명하다. 앞으로 절도범에게는 `도난 방지에 관한 강연을 하라`고 봉사명령을 내리고, 폭행범에게는 `평화적 갈등 해결에 관한 기고를 하라`고 봉사명령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코미디 같은 사회봉사명령


게다가 재판장은 판결을 선고하면서 `국가경제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鄭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으면 국가경제가 위기에 처한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도 참으로 모를 일이지만, 과연 재판장이 실제로 국가경제가 그렇게 걱정이 되어서 그런 내용의 판결을 선고했는지도 의문이다. 국가경제에 대한 걱정이 실형을 집행유예로 감경할 수 있는 사유도 되지 않는데 말이다.


사실 이런 판결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 재벌회장뿐 아니라 뇌물을 받은 고위공무원 등 재력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법원은 유독 관대한 판결을 내려왔다. 형사판결만이 문제가 아니다. 각종 기업 관련 소송, 개발사업과 관련된 소송, 정보공개 관련 소송들에서도 법원은 대기업이나 정부 관료조직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이후 시민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사법부의 그런 판결들에 대해 비판도 계속되어왔다. 그런 비판들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이용훈 대법원장이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하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두 판결을 보면 그것 역시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이런 판결들을 더 이상 보지 않을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사법제도가 정의와 인권의 편에 설 수 있는가이다.


정의와 인권에 둔감한 법관의 탄생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현재의 사법 씨스템 전반과 관련되어 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가 존재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핵심이 다가오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하면 문제의 핵심은 그런 판결을 내리고도 태연하게 `비판은 달게 받겠다`고 말할 수 있는 판사에게 있다. `비판은 달게 받겠다`는 것은 겸손한 태도가 아니라 오만 그 자체이다. 그것은 비판을 하든 말든 자신이 가진 특권적 지위에는 변함이 없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오만일 것이다.

 

사실 법원에 사법권이 귀속되는 이상 법관의 신분은 보장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임용된 법관에게는 개별적인 재판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다. 그래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은 아니지만, 사법부는 `견제 받지 않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이런 오만의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현실을 개선하는 핵심은 법관을 제대로 임용하고 그들의 권한을 재배분하며 그들을 견제·감시할 수 있는 씨스템을 확대해가는 데 있다. 우선 지금처럼 인권과 정의에 둔감하고 기득권 옹호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쉽게 판사가 될 수 있는 씨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인권과 정의의 의미를 경험하고 고민하기보다는 실정법 지식과 法기술만 터득하면 판사가 될 수 있고, 판사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좋은 시험성적`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법관 임용방식을 변혁해야


이런 상황에서 판사에게 올바르고 균형 잡힌 가치관, 인권과 정의에 대한 신념을 지니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게다가 판사가 되면 외부로부터 대단한 대우를 받게 되고, 퇴임하면 변호사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보장되어 있다. 그런 판사가 사회에서 기득권 의식을 갖게 되고, 역시 이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법관을 어떻게 뽑고 그들을 어떻게 견제·감시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 되는 것이다. 로스쿨이 도입된다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관을 어떻게 뽑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가시화된 것이 없다. 로스쿨이든 사법연수원이든 수료하고 시험성적으로 법관을 뽑는 씨스템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법관에게 필요한 것은 법전과 판례를 외는 능력이나 특수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라기보다는 인권의식, 정의에 대한 신념, 공익과 사회를 위한 봉사의식일 것이다.


이제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의 활동을 통해 인권의식과 가치관 등이 검증된 사람 중에서 법관을 뽑아야 한다. 그런 씨스템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게다. 그리고 법관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해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전관예우는 아직도 존재하는 법조계의 문제이다. 이를 뿌리 뽑아야 한다.


더구나 요즘에는 대형 로펌들이 고위법관 출신을 영입하지 못해서 안달이다. 주로 돈 있는 사람들과 대기업에 자문하는 이들 로펌이 고위법관 출신을 거액의 연봉을 주고 데려오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 점에서 전관예우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신화를 재생산하는 우리 사법 씨스템의 핵심적 문제이기도 하다.


국민의 사법참여로 사법개혁의 흐름을 이어나가자


한편 법관의 권한을 재분배하고 법관을 견제·감시하는 것은 국민의 사법참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내년부터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될 예정이지만, 현재의 제도는 중범죄에만 제한적으로 그리고 피고인이 원할 경우에만 적용되는 제도이다.

 

앞으로 국민의 사법참여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고 대폭 확대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국민의 사법참여는 법관의 자의적 판단을 제어하는 기능도 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사법의 실체를 경험하고 사법에 대한 자신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며 사법에 대한 견제·감시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법개혁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법원과 정부 관료조직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두 재벌회장 판결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것은 `즉자적인 분노`가 그냥 식지 않고 사법개혁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는 시민사회의 몫일 것이다.

 

저자 소개

 

하승수(河昇秀) | 제주대 법학부 교수, 변호사

제주대 법학부 교수, 변호사. 저서로 『교사의 권리 학생의 인권』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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