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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동상 여수 해양공원서 제막식
아이젤스 시장 “여수박람회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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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호르큼시 아이젤스 시장 “여수박람회 지지”

 

‘하멜표류기’를 통해 조선을 서양에 알린 네덜란드인 헨드린 하멜을 기리기 위한 하멜동상이 오늘(5일) 전남 여수 종화동 해양공원에 세워졌다.

 

▲  하멜 동상

하멜의 고향인 네덜란드 호르큼시 비터 아이젤스 호르큼시장과 J.오스트롬 호르큼시의원 등 여수 방문단 일행은 이날 여수 해양공원에서 열린 하멜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하멜동상은 네덜란드 호르큼시가 유명 조각가를 통해 직접 제작했으며 무게는 140㎏, 높이 1.2m 크기이다.


하멜동상임을 알리는 명판과 표지석은 전남대 최석 교수의 자문을 거쳐 영문과 국문 두 가지로 제작됐다. 명판 제목은 ‘하멜과 여수’.

 

▲ 아이젤스 호르큼시장

 

아이젤스 호르큼시장은 이날 제막식을 통해 “바다와 하멜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여수와 호르큼시간의 교류 협력이 활발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면서 “바다를 주제로 한 여수세계박람회가 2012년 여수에서 개최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오주 여수 부시장은 “한국과 네덜란드는 하멜과 히딩크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면서 “2012여수세계박람회 유치 지지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하멜동상은 해양공원 끝자락에 벌써 세워져 있는 하멜등대와 함께 또 하나의 명소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 최오주 여수시부시장

 

하멜은 165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제주도 근해에서 태풍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했다. 이어 1654년 서울로 압송됐다가 1656년부터 강진 전라병영성에서 7년 세월을 보냈다. 1663년 여수에 있던 전라좌수영성 문지기를 생활을 하다 1666년 탈출, 고국으로 돌아갔다.


 

<헨드릭 하멜 동상이 세워지기 까지>

 

네덜란드와 한국은 수세기동안 호르큼의 향해사 헨드릭 하멜로 인하여 인연이 맺어져 있었다.


1653년 그의 동인도회사 소속인 스페르웨르호가 한국의 섬 제주도의 바위에 부딪혀 난파되었고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당시 유럽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던 나라의 왕명에 의하여 13년동안 억류되었다.


1666년 하멜과 다른 7명의 동료들은 보트로 여수를 떠나 나가사키로 탈출하게 되고 그곳에서 하멜은 그들의 모험과 한국사회에 대한 글을 썼다.

 


이 고난의 보고서가 아니었다면, 그 후 몇 백년동안 서양에서는 이 나라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체 지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멜이 ‘한국의 콜럼버스’로 알려진 이유이다.


하멜의 표류 이후 3세기반이 지난 지금 네덜란드와 한국은 다시 한 번 그 역사의 실타래를 엮게 되는데, 웹 하트만(Jaap Hartman)이 조각하여 호르큼시에 세운 하멜동상이 그 인연의 표시인 것이다.


이 동상과 동일한것이 1657년부터 1663년까지 하멜이 억류되었던 대한민국 강진과 1663년부터 1666년까지 억류되었던 여수에 세워졌다.


이 동상은 2007년 10월 5일 오현섭 여수시장과 비트 아이젤스 호르큼 시장에 의해서 제막되었다.

 

<하멜과 여수의 인연>

▲ 주승용 의원이 네덜란드 아이젤스 호르큼시장 일행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1653년 1월에 네덜란드 상선 스페르웨르호가 텍셀에서 출발하여 7월 바타비인(자카르타) 항을 거쳐 일본나가사키항을 향해 64명의 선원을 싣고 출항하였다. 1653년 8월 16일 제주도 근해에서 태풍을 만나 제주에 표착하였다.


살아남은 사람은 64명중에서 36명이었는데 그중 한사람이 헨드릭 하멜이었다.


1654년 왕(효종) 명으로 하멜일행은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1656년 강진 전라병영으로 압송되어 7년 세월을 보낸다.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하자 1663년 2월 살아남은 22명을 여수에 12명 순천에 5명 남원에 5명씩 분산 수용하게 되었다.


여수에 오게된 12명중에 하멜이 있었고, 여수 전라좌수영성 문지기 생활을 하였다.


1664년 초에 이도빈(李道彬) 수사가 왔는데 이 수사는 인자하여 하멜일행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었으며 양모장사를 하여 탈출할 배도 살 수 있는 돈을 벌게 되었다.


1666년 수사 정 영(鄭 韺)이 왔는데 그는 인자하지 못하여 모진 생활을 하다가 탈출을 시도하였다.


1666년 9월 4일 밤 아무렇지도 않는 듯이 주민들과 함께 지내다가 전라좌수영성 담을 넘어 약속해 두었던 부두가로 갔다.


식수를 준비하여 썰물이 시작될 때 군선 옆을 지나 남쪽끝을 향하여 달렸다. 저녁 무렵 부산끝을 마지막으로 보면서 조선영역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곳(종화동 해양공원)이 하멜일행이 자유를 찾아 향해를 시작한 출발지이다.

 

하멜등대를 둘러보는 네덜란드 아이젤스 호르큼시장 일행

 

여수 임소희(soo23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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