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가며 문득 “인간은 본래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과 마주할 때가 있다.
매일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 저마다 다른 생각과 태도로 살아가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저들도 한때는 티 없이 맑은 숨을 내쉬던 갓난아기였을 텐데, 무엇이 저들을 이토록 서로 다른 모습으로 빚어냈을까.
얼마 전 신생아 도우미 교육을 받으며, 이 오래된 질문은 다시금 마음속에 깊이 내려앉았다.
신생아를 돌보는 법을 배우며 머릿속에 맴돈 것은 동양 철학의 오랜 화두인 성선설과 성악설이었다.
맹자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선한 마음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았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 부끄러워할 줄 아는 수오지심, 양보하는 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지심이 그가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단(四端)이다.
인간은 본래 타인을 배려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도덕적 본성이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지만, 환경이나 욕망 때문에 본래 태어난 본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반면, 순자는 인간의 본성을 욕망과 이기심으로 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욕망을 지녔기에 그대로 두면 다툼과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예(禮)와 법, 그리고 배움을 통해 선한 행동이 길러진다고 역설했다. 인간의 거친 본성을 갈고닦아 후천적인 노력으로 변화시킨다는 '화성기위(化性起僞)'가 바로 그의 핵심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의 퇴계와 율곡이 우주의 근본 원리(이기론)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했듯이, 그보다 훨씬 앞선 중국 전국시대의 맹자와 순자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은 무엇인가?(인성론)를 두고 정반대의 답을 내놓았다.
이 논쟁은 단순한 학문적 논쟁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국가와 사회를 어떤 원리로 이끌어가야 하는가”라는 정치와 교육 철학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 지역사회의 수장, 크고 작은 조직의 대표가 인간의 본성과 교육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회의 방향이 결정된다.
인간의 본성과 이를 바로 세우는 인성 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철학적 고민을 품고 마주한 신생아 교육의 순간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지만, 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으며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 것인지, 어떤 세상을 살아갈지를 생각하게 됐다.
엄마의 뱃속에서 40주를 보내는 동안 태아는 혈류의 거친 울림(전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만큼 태아에겐 크게 들림)을 견디며 자란다.
바깥세상의 소리는 희미하지만, 엄마와 나누는 정서적 교감은 태아에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울타리가 된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 아기가 오감(五感)으로 처음 맞닥뜨리는 세계가 바로 주변 사람들이다. 부모의 따스한 눈빛, 가족의 음성, 그리고 신생아 도우미의 조심스러운 손길과 온기야말로 아이의 마음에 처음으로 그려지는 인성의 밑그림이자 첫 교육이다.
흔히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 한다’는 말처럼, 그저 부모의 본능적인 사랑만으로 아이를 키우면 될 것이라 여겼던 막연함은, 이번 교육을 통해 무거운 책임감으로 바뀌었다.
갓 태어난 한 사람의 생명을 어떤 정서적 울타리에서, 어떤 태도로 보살펴야 하는 가를 깨닫는 일은 참으로 숙연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은 단순한 습관을 넘어, 생애 초기 정서와 돌봄이 한 인간의 전 생애를 좌우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현장에서 묵묵히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헌신하는 산모, 신생아 건강관리사들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보낸다.
한 아이의 출발선에 선한 환경과 올바른 손길을 더해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근본을 가장 단단하게 세우는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