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후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하나의 관심사가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2007년) 1월 1일에 북한이 발표한 신년공동사설이 하나의 단초였다. 거기에서 북한은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反보수 대연합을 실현하여 올해의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매국적인 친미반동 보수 세력을 결정적으로 매장해버리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상투적인 정치선동이라는 이해도 없지 않았지만, 남북관계를 예의주시해온 사람들의 눈에는 남북관계의 원칙을 훼손하는 북의 적극적 정치개입으로 이해되었다.
주지하듯이 남과 북은 1991년 총리급회담을 통해 `체제인정과 평화공존`에 합의한 바 있고, 이에 따라 상호 내정간섭행위는 금지되어왔다. 이러한 원칙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칙을 깨고라도 개입하고자 했던 북의 `의지`가 지난해 말 대선을 거치면서 좌절되고, 그간 `매국반역적` 집단이라 지칭할 만큼 배척해온 한나라당이 집권한 것을 북이 어찌 보고 있을지는 모두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北韓의 태도변화
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한 북한의 첫 공식반응은 2008년 1월 1일에 발표된 신년공동사설이다. 북한은 이 사설에서 "나라와 인민을 사랑하고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민족 공동의 번영을 위하여 특색 있는 기여를 하여야 한다"라는 간접적 표현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알려진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러한 표현이 이명박 정부에 보내는 북의 매세지라는 해설까지 덧붙여주었다. 북측의 태도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최근 이봉조 통일연구원장이 워싱턴에서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새 정부의 실용주의에 대해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사실을 확인해줌으로써 그 신뢰도가 높아졌다.
이러한 북의 태도를 감안한 것인지, 이명박 당선자의 태도도 매우 신중하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그는 신년 초 SBS 대담에서 "지금 제가 (당선)돼서 갑자기 북한에 대해 냉전이 되는 것은 아니고 더 평화적으로, 더 화해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틀림없다"는 말로 북을 안심시킨 것이다.
그는 또 자신이 얘기한 북한에 대한 "강력한 설득"과 관련해서, "혹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되면 체제유지도 어려워지고 그런 불안감이 있을 수 있다면, 대한민국이 앞장서고 6자회담에서 같이 안심을 시키고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해 대화를 강조하는 입장을 보였다.
통일부 폐지에 대한 당선자의 역설
기대 섞인 전망으로 흐르던 남북관계는 새 정부 조직개편을 둘러싸고 논전이 벌어지면서 흔들리는 듯 보였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그동안 설왕설래하던 통일부 폐지를 공식화한 것이 계기였다. 당시 새 정부는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하는 외교방침 기조 속에서 남북관계를 묶어두려 한다는 의심이 짙어졌다. 이에 대해서는 통일부 주변 인사에서부터 전문가집단, 시민사회단체가 일치되게 반발했는데, 그 흐름이 마치 격랑과도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특이한 사실은 통일부 해체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이명박 당선자가 언급한 대목이다. 그는 1월 17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南北간에 보다 더 확대된 교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했고 통일까지 염두에 두고 조직을 개편했다"고 밝혔을 뿐 아니라, "북한에서 고위층이 경축사절로 온다면 언제나 환영한다"고까지 말했다.
대통령 취임식에 북한 경축사절을 초청하는 문제는,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이 언급했다가 크게 공격받은 사안이라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선자의 이런 발언은 통일부 폐지에 대한 자신의 심중을 드러내고 반대자들의 저항의지를 꺾으려는 데 목적이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통일부를 존속시켜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설명하는 데 기여하는 역설을 낳고 말았다.
관망 속에서 우려하고 있는 북측
1월 하순경에 남북 민간단체들이 만나기 시작하면서 남북관계에 대한 북의 태도는 `관망 속 우려`로 이동하고 있음이 감지되었다. 1월 23일부터 대북 지원단체들이 평양에 들어갔으며, 6·15와 8·15행사 등 정부당국과 함께 대규모 남북공동행사를 진행해온 6·15남측위원회 관계자들도 금강산에서 북측과 만났다.
이러한 만남들에서 북은 민간단체들의 남북교류가 더욱 확대되기를 희망했지만, 정권이 바뀐 마당에 그 가능성이 높겠느냐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26일 금강산 남북접촉에서 북이 남쪽에 보낸 `연대사`라는 이름의 문서에서는 북이 느끼는 심정의 일단이 드러났다.
그 문서에서 북은 올해가 "6·15공동선언을 고수하고 10·4선언을 실천해나가는 데서 참으로 중대한 전환기"라 언급하며, "올해 통일운동의 승리적 전진은 6·15통일세력, 반전평화세력이 하나로 굳게 단결하는 데 크게 달려 있으며, 이것은 또한 지난해의 통일운동이 남긴 심각한 교훈"이기도 함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북이 내놓은 화두는 `단결`이지만, 2007년의 신년사설에서부터 6·15평양대회 때까지 북이 내건 反보수 대연합이 끼친 분열적 영향을 놓고 볼 때, 그 자괴감이 결코 작지 않을지 모른다. 그들 또한 취약해진 남한 민간단체의 힘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불투명한 정세, 민간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남북관계에 대해서 남한사회에서는 이미 우려가 짙어졌고 이 문제는 통일부 폐지 논의에서 결정적인 국면을 맞고 있다. 북은 여전히 관망중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전략이다. 북도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으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2월 1일에 이명박 당선자는 기자회견을 통해 `대북경제협력 4원칙`을 내놓았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계승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모호함 하나가 사라졌고, 북핵문제 진전 정도에 따른 경제협력 로드맵 설정을 내놓고 있어 역시 반 발짝 나아갔다. "北核 폐기 전에 남북관계는 없다는 것인가"라는 세간의 비판에 대한 당선자 측의 응수인 셈이다. 그러나 모호함은 여전하다. 이 또한 남한의 보수를 끌어안으면서 북 역시 자극하지 않으려는 당선자의 전략이다.
아마도 남이건 북이건, 자신의 뜻이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획득했다고 판단할 때라야 명백한 입장을 내놓을 것이다. 남측에서야 그것이 총선일 터이지만, 핵무기 보유국인 북도 核프로그램의 `신고`문제에서 결정력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점은, 남북 각각은 자기 백성을 달랠 수 있는 지점에서 행동하리라는 것이다. 일촉즉발의 예비단계, 이럴 때 민간운동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어디인지는 자명한 일이다. <창비주간논평>
저자소개
정현곤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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