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 이른바 이명박특검은 이명박 대통령의 BBK 주가조작과 횡령, 서울 도곡동 땅과 다스의 차명소유,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쎈터(DMC) 특혜분양 등 제기된 일련의 의혹에 대해 모두 `무혐의` 판정을 내렸다. 그가 도곡동 땅 매각대금 263억원 상당의 금융자산이나 주식 또는 부동산을 차명으로 소유한 사실이 없으므로 공직자윤리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 역시 모두 "혐의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특검의 `줄줄이 무혐의 결정`은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이같은 특검의 발표내용은 작년 12월 5일 "이명박 대선후보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는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보다도 몇발 더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작년 검찰의 발표에서 도곡동 땅의 이상은씨 지분은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고 했는데, 이번 특검은 이상은씨가 그 땅의 실질 소유주라고 확인까지 해주고 있는 것이다. BBK는 대통령 자신이 설립했다고 말한 광운대 동영상도 "김경준과 BBK를 홍보해주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일 뿐 제기된 의혹의 직접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아예 대변인 역할까지 맡고 나선 것이다. 결과적으로 특검은 검찰이 쥐여준 것보다도 더 자상하고도 광범위한 면죄부를 대통령에게 쥐여준 셈이다.
면죄부를 쥐여준 BBK특검
특검의 조사기간이 너무 짧았음을 감안하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의 권유로 50억원을 투자했다고 주장하며 이명박과 김경준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벌였던 심텍의 전세호 사장이나 도곡동 땅의 원주인 등 핵심적인 사람들에게서 한마디 증언조차 듣지 못한 것은, 특검수사의 신뢰성이 결정적으로 의심받게 하기에 충분하다. 거기다 대통령 당선자의 법적인 지위와 그에 따른 예우문제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삼청각`이라는 음식점에서 했다는 이른바 `꼬리곰탕 조사`는 조사라기보다는 하나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검은 "검은 머리 외국인에게 대한민국이 우롱당했다"는 수사(修辭)로 이 사건을 마무리지으면서 책임을 그 `검은 머리 외국인`에게 몽땅 떠넘기고 있다. 발표 당일까지 그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어쩌나 조마조마해하던 한나라당은 이를 기화로 특검을 관철시킨 야당에 대해 정치공세를 강화했다. 언론에선 특검 무용론 내지 낭비론을 들먹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특검의 수사결과 발표를 듣고 "다시 한 번 모든 의혹이 해소되어 새 정부가 산뜻하게 출발하게 돼 다행"이라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년 12월 검찰의 수사결과를 신뢰하지 않았던 국민들 입장에서 이번 특검수사로 모든 의혹이 해소되고 진실이 밝혀졌다고 믿을 수 있을까.
야당은 특검 수사결과를 "권력 앞에 정의가 무릎을 꿇은 것"이라며, "언젠가는 역사가 진실을 밝힐 것"이라 경고했다. 실제로 살아 있는 정권, 이미 완장까지 차고 있는 기세등등한 정권에 대한 수사에서 진실이 밝혀지리라고 믿었던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설사 특검 발표대로 법적으로는 혐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으로도 결백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진실은 관련자들의 양심 속에 숨어 있다가 언젠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고, 무상한 권력의 부침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그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진실은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 밝힐 수 있는 힘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영구미제`는 없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겸손되이 사과해야
그러나 처음부터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된 진실게임은 국민에게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국민은 대통령의 도덕성을 기대하지도, 신뢰하지도 않았다. 자식들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이나, 아들을 자기 소유 건물의 관리인으로 위장취업 시켜 탈세행위를 자행한 것 등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자식의 위장취업과 탈세가 BBK나 도곡동 땅 의혹보다 죄질이 나쁘다는 것이 대선 당시의 여론이요 분위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당시 검찰의 발표를 믿기보다는 `그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 무렵 국민들에게 알려진 그의 언행 또한 국민들 눈에 아름답게 비치지는 않았다. "어떤 유형의 업종에서는 못생긴 여자의 서비스가 더 좋다"는 말은 듣는 사람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고, "나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은 우리가 듣기에 매우 민망하며,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는 거침없는 말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분반(噴飯)을 금치 못하게 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대선에서 국민이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것은 그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품격 높은 지도자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좀 더러우면 어떠냐. 품위가 떨어진다고 대수냐. 도덕적으로 좀 흠결이 있어도 괜찮다. 경제를 살려 국민을 잘살게만 해준다면 그래도 무능한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 하는 것이 당시 대통령을 선택하는 논리요 흐름이었다. 장관 청문회나 하다못해 국회의원 공천심사의 기준에 비추어보더라도 그의 도덕성은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었다. 그러나 대선 때는 총선 때와는 다른 논리와 흐름이 대세를 이루면서, 흔히 말하는 것처럼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특검의 수사결과 발표를 보고, "그동안 너무 억울하고 오랫동안 힘들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힘들기야 했겠지만 크게 억울할 것은 없어 보인다. 먼저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순서일 테니 말이다. 두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의혹도 홀로 솟구치지 않는다. BBK회장 명함을 사용한 것이나 BBK는 자신이 설립했다는 광운대 동영상에 대해서는 적어도 국민 앞에 먼저 사실을 고백하고 자신의 가벼운 처신에 대해 사과했어야 마땅했다. 비겁하게 특검 뒤에 숨일 일이 아니다.
나는 더 나아가 이대통령이 자신의 삶의 궤적에서 이미 드러난 도덕적 흠결에 대해 국민 앞에 겸손되이 사과하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한다. 이는 결코 누구를 헐뜯고 흠집 내려 함이 아니다. 그의 말대로 그것은 새 정부가 산뜻하게 출발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이른바 이명박 의혹을 끝내고 씻어내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길이다. 새 정부가 도덕적으로 새롭게 출범하는 것은 그 자신을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더욱 바람직하다.
도덕적으로 성숙한 대통령을 기대하며
정의를 말하는 자는 먼저 다른 사람의 눈에 그 자신이 정의롭게 비쳐야 한다. 사과하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요, 수치는 더욱 아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국민은 다시 태어나는 대통령의 성숙한 모습에 감동하고 환호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을 통하여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는 정부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과 함께 나라가 도덕적으로도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국민의 자존심에 비추어 조금이라도 덜 창피한 대통령을 갖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간절한 기도요 처절한 절규이기도 하다.
저자 소개
김정남(金正男) /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졸업. 1964년 6·3 사태 때 배후의 인물로 구속된 이래, 30여 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막후에서 주도했다. 민주화운동단체 결성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으며, 각종 성명서 작성, 구속인사에 대한 변론자료 준비와 구명운동, 구속자 가족들에 대한 지원, 해외 지원세력과의 연대, 수배자에 대한 은신처 마련과 수발 등으로 민주화운동을 뒷받침하면서 재야민주화운동의 대부로 알려져 왔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평화신문 편집국장으로 평화신문의 창간을 주도했으며, 김영삼 정부 때 대통령 교문사회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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