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항쟁에 대한 중간고찰
사회는 종종 자신에게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래서 사회는 종종 스스로에게 놀란다. 이제는 `촛불문화제`가 아니라 `2008년 촛불항쟁`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이 사건도 그런 것에 속한다.
촛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역사적 사건의 참여자인 동시에 관찰자인데, 그들은 모두 자신의 소박한 행동이 장엄한 촛불 물결과 동일한 실체라는 사실에 경탄한다.
지난 한달 동안 거듭해서 스스로를 초월하며 발전해온 2008년 촛불항쟁의 성격을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도 정리해 말하자면 현재의 상황은 후진기어를 넣고 역진하는 `불도저`를 시민들이 촛불을 밝혀 막아선 것이라 할 수 있다.
민주적 정부 아래서는 민주화가 밥 먹여주냐는 냉소가 흘렀다. 하지만 마치 사장이 구내식당에 납품될 쇠고기를 수의계약 하듯이 미국에 간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개방했을 때, 시민들은 민주화의 역진이 밥상 자체를 위협한다는 것을 명료하게 알게 되었다.
미국산 쇠고기 개방은 더불어 영어몰입교육에서부터 4·15 교육규제 철폐, `고소영 강부자` 내각, 대운하 추진 같은 선행하던 사건들 그리고 수돗물과 건강보험을 비롯한 각종 민영화 같은 다가올 사건들의 의미 또한 또렷하게 해주었다.
시민들로서는 적어도 역전 불가능한 지점을 지정해줄 필요를 느꼈고,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음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스스로 촛불을 들 수밖에 없었다.
후진하는 불도저를 막아선 촛불들
생각해보면 87년체제를 통해서 시민들은 대의제가 작동 불능이나 오작동 상태일 때마다 그리고 87년 민주화의 성과가 무화될 위기에 처할 때마다 직접민주주의적 행동을 개시했다. 1996년 겨울 노동법파동 때 그랬고, 2000년 총선연대의 활동이 그랬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시위가 그랬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촛불항쟁은 87년체제를 통해서 반복되어온 시민의 직접민주주의적 개입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촛불항쟁은 반복을 상회하는 혁신과 변화의 징후들을 가지고 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 사태의 추이를 되짚어보자.
4월 17일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었을 때만 해도 협상의 의미는 불명료했다. 하지만 송기호, 박상표, 우석균 같은 전문가들에 의해서 사회적 계몽이 시작되었다.
축산포드주의에 기반을 둔 쇠고기산업의 이윤추구가 얼마나 추악한지, 정부가 얼마나 몽매한 협상을 했는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후 인간광우병을 피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지독한 강박증적인 주의력을 요구하며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가 속속 드러났다.
그때 이미 쇠고기 문제는 논쟁의 국면을 지났다. 이어진 수많은 TV토론은 이명박 정부를 수호하려고 나선 인물들의 논리가 얼마나 가관인가를 보여주는 구경거리였을 뿐이었으며, 정부 관계자나 그들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몇 년 전 황우석 박사가 갔던 길을 뒤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인상적인 동시에 새로운 현상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드러난 계몽의 확산 속도와 조직화의 힘이었다. 지식인과 전문가, 비판적인 언론매체, 인터넷 까페와 블로그 그리고 사람들의 손에 들려진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의 협력 아래 진행된 이런 사회적 계몽은 의학과 국제법과 국제경제학을 넘나들며 관료적 레드 테이프와 보수언론의 담론 조작, 사이비 전문가들의 요설을 남김없이 격파했다. MBC 신경민 앵커의 말처럼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시민 되기가 쉽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 일을 능히 해냈다.
주인으로서 행동하는 시민의 등장
계몽과정의 양식과 속도만이 새로운 것이 아니고 행동의 차원에서도 새로움은 나타난다. 사실이 하나씩 규명될 때마다 사람들의 분노는 커져갔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행동이 중요하다.
이 행동이라는 핵심적 계기를 마련한 것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여학생들이었다. 정치로부터 가장 먼 거리에 있다고 추정된 존재가 정치의 전면에 불쑥 출현한 것이다. 이전에 쓴 글에서 나는 이들이 지닌 세대론적 함의를 지적한 적이 있는데 그런 세대론적 함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시청앞 광장에서 보인 모습이다.
그들은 참 스스럼없고 재기발랄한 표어들을 들고 나섰는데, 그중엔 "미친 소, 너나 먹어"라는 당돌하고도 엄중한 표어도 있었다. 나는 이 표어가 촛불항쟁의 새로움의 한 차원을 드러내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표어에는 주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의미심장하게도 남한 정부수립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여러 면에서 생채기진 분단국가의 수립이었지만, 어쨌거나 정부수립은 식민지 아래서 살아온 민중이 국가시민으로 거듭난 경험이었다.
하지만 뒤이어진 전쟁과 독재정권으로 인해 사람들은 국가에 대해 피해자 심리를 가지게 되었다. 거의 원초적이라고 할 만한 이 피해자 심리가 이들에겐 씻은 듯이 없다. 그들은 진정으로 주인으로서 말하고 있거니와 이것이야말로 촛불항쟁이 보여준 최고의 새로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항쟁을 `국민 MT`라고 부른 역사학자 한홍구는 정곡을 찌른 것 같다. 계속되는 집회 속에서 주인임을 자각할 필요조차 없이 이미 주인으로 발언하는 청소년들에 의해서 사람들은 주인됨의 몸짓과 언어를 습득하는 동시에 주인이 되어 있음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항쟁은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국가공동체의 멤버십 트레이닝이라 할 수 있다.
한겨레 기획위원 홍세화가 몇 년 전부터 끈기 있게 외쳐온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지금 집회현장에서 노래로 울려 퍼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노래는 질적 비약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홍세화의 말은 주장이고 요청이었지만 지금 불리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확증된 사실의 선포이고 주인의 자유로운 읊조림이다.
87년 헌법이 추상적으로 기재한 헌법 제1조가 비로소 사람들의 육체와 목소리에 현존하게 된 것이고, 체제의 지향점이 마침내 자기완성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촛불항쟁이 6·10항쟁 21주년과 접속한 것은 자신과의 조우인 동시에 나선형의 상승,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도 인상적인 이런 주인됨의 양태, 주권자의 모습을 추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살수차를 혼자 막고 서서 "경찰이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면 안되잖아요"라고 말하는 여고생,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표어를 들고 경찰 앞에 서 있는 한 노인, 불법시위를 운운하는 경찰의 선무방송에 대해 "너희가 불법이다"라고 말하는 시위군중은 실정법을 압도하는 법 정초적 발언, 주권자의 목소리이다.
공포가 있던 시위현장을 접수한 풍자의 시학
촛불항쟁에 흐르고 있는 주인됨을 당연시하는 태도는 항쟁의 양상을 완전히 바꾸었다. 이 태도가 권위주의적 정부의 폭력에 대한 모든 공포를 깨끗이 소멸시켰기 때문이다.
전경이 사람들을 체포하면 그것을 `닭장차 투어` 쯤으로 여기는 것, 바리케이드 쳐진 전경버스 위에 전경이 보이면 "노래해"를 외치고 물대포에 "온수"를 요청하는 것 뒤에는 전경 대다수가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이해심과 그들을 측은히 여기는 주인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국가의 권위주의적 폭력은 이제 사실적으로 발생한다고 해도 규범적으로 가능성의 경계 저편으로 내몰린 셈이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선 주부들의 모습, 아이들을 목말 태우고 행진하는 아빠들의 모습은 그 명백한 증거이다. 그들의 태도는 아이의 목숨까지 담보한 위험한 투쟁에 임한 자의 모습이 아니라 모든 공포가 소멸한 광장에서 역사적 순간을 자녀와 함께하려는 이들의 모습이다.
공포가 사라진 곳에서 풍자의 자기 표현적 시학이 만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위현장과 인터넷을 채우고 있는 시민들의 말들은 수사학 사전 하나를 채우고도 남을 만해서 시민 전체의 카피라이터화, 시인화, `진중권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더러는 "명박아 미국에서 얼마 받고 알바하니" 같은 거친 조롱도 있지만, 판소리의 전통에 닿아 있는 멋진 것도 있다. "이름은 명박, 별명은 땅박, 관상은 쥐박 … 생각은 천박, 정신은 띨박, 철학은 척박, 언행은 경박 … 인심은 야박, 의리는 깜박 … 공무원은 타박, 기관장은 압박, 서민은 핍박 … 경제는 쪽박, 전망은 희박 … 운하는 강박, 정치는 도박, 정책은 엇박, 변명은 또박, 구속은 임박, 탄핵은 촉박."
풍자의 시학 속에서 새벽을 넘기곤 하는 집회현장이 난장의 형태를 띠는 것은 또한 당연하다. 더러는 서고, 더러는 앉고, 더러는 노래하고, 더러는 술 마시고, 더러는 구호를 외친다. 한쪽에서는 중고생 밴드가 사람들과 어울려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를 노래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경버스를 두들기거나 "영차영차" 밀고 있다.
그 안에는 사회적 투쟁에서 흔히 발견되는 심각함 대신 유쾌함이 흐른다. 해방과정 자체가 해방적이어서 혁명과 축제가 직접적으로 동일시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87년 6월 항쟁과 만난 2008년 촛불항쟁
확실히 전경버스와 시위대중이 맞닿는 경계면에는 어떤 과잉이 있다. 거기에서는 밧줄도 등장했고 몽둥이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 몽둥이 옆에는 현장채증을 시도하는 경찰 카메라에 물총을 쏘는 재기발랄함이 공존하고 있다.
사실 전경버스 몇 대를 끌어낸다고 청와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다. 더러 다혈질인 사람들에게 이런 장면은 답답하고 울화가 치미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전경차를 끌어내려는 사람들은 시골장터의 차력사처럼도 보였다. 그것은 시위에 활력과 초점을 부여하는 이벤트 같은 것이다.
이 말은 밧줄로 전경버스를 끌어내려고 하고 전경버스에 기어오르는 사람들의 행동이 시늉일 뿐이라는 것이 아니다. 전경들을 뚫고 청와대로 가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표현적이지도 않고 몰입을 이끌 수도 없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는 희망과 우려, 분노와 자제의 긴장이 어린다.
그럼에도 두드러지는 것은 시위대의 폭력이 아니라 겁먹은 전경들의 폭력이며, 시위대에 흐르고 있는 분위기는 "될 때까지 모이자"는 단호한 느긋함이다.
"될 때까지 모이자." 이 말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상상(특히 이명박 정부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항쟁의 지속성의 원천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항쟁에 참여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들 내가 안 가면 다른 사람이 갈 것을 믿고 있고, 시간이 있으면 시청 앞에 나가고 있다.
그래서 전경들은 피로에 찌들어갈지언정 릴레이하고 있는 항쟁의 참여자들에게는 피로감이 없다. 그래서 지치지도 지칠 수도 없는 시민들은 긴 시간을 지나 6·10과 만났고, 6·10을 넘어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항쟁의 공간은 정부와 시민 간의 협상공간이 아니다. 시민들은 지금 주권자로서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협상은 미국하고만 가능하며 그것도 재협상의 형태로만 가능할 뿐인데도, 여전히 대통령은 국민들의 염장을 지르는 말을 하거나 "자율규제" "인적 쇄신" "유류세 환급" 같은 동문서답을 거듭하고 있다. "땅 파지 말고 귀를 파라"는 표어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도 몰래 대운하사업을 추진했으며, MB맨들은 언론사를 장악하고 공기업 사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국가라는 여물통을 차지하고 관직과 공직이라는 사료에 코를 처박고 있는 30개월 넘은 소들의 꼴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는 `명박산성`을 세워봐야 촛불이 꺼지기는커녕 더 높은 `시민산성`이 세워질 뿐이다.
지난 대선을 경유하며 87년체제와 민주화의 시효만료를 선언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한편에는 민주화가 끝나고 선진화가 시작되었다는 우파적 판본이, 다른 한편에는 87년체제가 신자유주의적 97년체제로 전환되었다는 좌파적 판본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촛불항쟁은 그런 주장들을 기각하고 있다. 87년체제의 극복과 민주화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으며, 오직 민주화에 뒤이은 감수성의 혁신에 힘입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87년체제의 극복과 민주화의 과제는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스스로를 초월해가는 촛불항쟁이 어디서 멈출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바리케이드 친 전경버스와 컨테이너박스 뒤에 웅크리고 앉아 시민들이 지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시점을 초과해갈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언젠가 이 국민적 원탁이 접히고 일상의 시간이 되돌아올 것이다.
사회는 다시 이해관계의 선을 따라 분열과 갈등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리에 선 모든 이들과 그들을 인터넷TV 중계로 바라본 이들 모두의 기억들이 존속할 것이며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다.
인터넷 주부카페가 주도한 조중동에 대한 광고투쟁 같은 다양한 투쟁방식들도 남을 것이다. 잘 작동하지 않은 대의제를 개선하려는 작업도 이어질 것이다. 항쟁을 통해 확인된 공공성에 대한 합의도 남을 것이다.
그렇게 일상을 정지시켰던 이 非일상의 시간은 되돌아올 일상의 경계를 再확정할 것이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금을 다시 그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 사회는 항쟁 이후에 전혀 다른 사회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촛불항쟁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고대 아테네의 민주적 지도자 페리클레스가 했던 펠로폰네소스전쟁 전몰자 추도연설문의 한 구절을 바친다. "앞으로의 시대는 우리에게 놀랄 것입니다. 마치 오늘의 시대가 지금 우리에게 놀라워하듯이……"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김종엽 /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1963년 경남 김해 출생. 현재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문화평론가. 계간『창작과비평』 편집위원. 창비주간논평 기획위원장.
저서로 『웃음의 해석학』(1994)와『연대와 열광』(창작과비평사 1998) 역서로『토템과 터부』(1995)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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