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에 본래 문화칼럼을 쓰기로 했고, 예정된 기고일이 일주일이나 남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사정을 보니 도저히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습니다. 우선 KBS의 문제도 넓게 보아 문화의 문제라고 생각하시고 이게 무슨 문화칼럼이냐고 꾸짖지 말아주시기를, 그리고 원고 마감시간을 넘기는 일이 다반사인 이 업계에서 도리어 약속보다 일주일이나 빨리 칼럼을 쓴 초유의 사태에 대해서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를 독자님들께 부탁드립니다. 특히 그것은 제 잘못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킨 저들의 잘못입니다.)
맑스는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을 이렇게 시작한다. "헤겔은 어디에선가 모든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은 두 번 나타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처음엔 비극(悲劇)으로, 그다음에는 소극(笑劇)으로." 나는 두 사상가의 내공은 인정하지만 이 표현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무엇을 사건으로 보고 누구를 인물로 볼 것인가` `두 번의 유사성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주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레토릭이지 엄격한 명제는 아니다. 그런데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을 둘러싼 사태를 보면서 전에 본 듯한 기시감(deja-vu)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노태우정권 때인 1990년에 이미 같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감사원의 해임요구, 이사회의 해임제청, 고위인사의 압박, 대통령의 해임 그리고 새로운 사장. 그 수순은 18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 차이라면 예전의 사건은 언론말살의 비극이었지만 지금의 사건은 정신 나간 소극이라는 것이다. 사건이 반복될 때 뒤의 사건이 소극이 되는 이치는 단순하다. 세월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되풀이되면 시대착오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국민의 반응이 `분노`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반응은 `실소`에 가깝다. 어차피 유유상종이기 때문에 내 주위의 반응들이 나처럼 하나같이 비판적인 것은 당연하지만, 그 반응들이 `어처구니없다` `황당하다` `어이없다`인 것은 사건의 본질이 시대와 동떨어진 소극임을 보여준다.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과연 그저 웃기고 자빠진 일인가? 주로 성희롱적이거나 성차별적인 유머만을 전문적으로 구사하던 분들이 갑자기 이렇게 수준 높은 개그를 할 리가 없다. 이것은 우리의 반응과 달리 대단히 진지한 사건인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은 성인이 된 후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군사독재,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 변해가는 흐름 속에서 권력이 `소수에서 다수로` `밀실에서 광장으로` `폭력에서 논리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아왔고, 그것이 사회의 법칙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군사독재에 뿌리를 둔 정치세력이 승리하더라도 사회경제적인 문제야 할 수 없다 치고 민주주의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의 느낌은 20년 전 노태우 후보가 승리했을 때의 비참한 심정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정권이 교체되는 것도 길게 보아서 나라에 도움이 될 거라는 낙관적 견해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데 반년도 되지 않아 국민들은 분노해야 할지 실소해야 할지 모를 사태들에 끊임없이 직면하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붉은 여왕과 함께 미칠 듯이 달리지만 이상하게도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때 붉은 여왕은 깜짝 놀란 앨리스에게 말한다. "여기서는 같은 자리에 계속 있고 싶으면 힘껏 달려야 해. 다른 곳에 가고 싶다면, 적어도 그 두배는 빨리 달려야 하지." 그렇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적어도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제자리라도 지키려면 죽을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는 것, 그 노력을 게을리 할 때 민주주의는 순식간에 뒤로 처지고 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민주주의의 문제는 너무 시급해져서, 시한폭탄을 장착한 것 같은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조차 사치스러울 지경이다. 민주주의는 죽을힘을 다할 때 지켜지는 것 이제 이명박 정부는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고 정치 사찰만 하면 군사독재정부와 똑같은 정부가 된다. 앞의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뒤의 것은 장담할 수 없다. 어느 현명한 판사에게 재판과 관련한 전화를 걸었다가 망신당한 국정원 직원의 사례는 어떤 징조를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이 정부의 정체는 무엇일까? 보수인사들이 입만 열면 지키겠다는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몇 가지 원리는 잘 알고 있다. 주권자는 국민이고,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기 곤란한 부분을 대리인들에게 위임했다는 것. 맡겨진 권력은 주권자를 위하여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만들어진 법은 게임의 규칙으로서 누구나 존중해야 한다는 것. 나는 보수적인 견해보다는 진보적인 견해에 귀를 기울이게 되지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게임의 규칙`만 준수한다면 어떤 보수적인 견해에 대해서도 함께 토론하고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약자라서 불리할 것 같은 때에만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권력을 쟁취한 후에는 그것을 사유화하는 자들, 국민들에게만 법의 지배를 받으라 하고 막상 자신들은 힘의 지배가 사회의 냉혹한 규칙이라고 믿고 실천하는 자들과는 한 세상에서 살 수 없다. 그들은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제 배를 불리고 공공의 이익을 말하는 척 패거리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공의 적이며, 민주주의의 파괴자다. 그대들에게 `게임의 규칙`을 묻는다 혹시 그대들이 민주주의와 법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가? 한번 따져보자. 뜻을 모아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판사의 조정 아래 분쟁을 합의하여 처리한 것이 왜 사장의 배임인가? 이득은 도대체 누가 보았는가? 그렇다면 판사와 국세청장도 공범이란 뜻인가? 어느 법률가가 그따위 법률해석을 하는가? 도주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을 출국 정지하여 괴롭히는 것이 공권력의 집행인가? 공권력은 필요한 경우에 최소한으로 행사하게 되어 있는 것을 그대들이 정녕 모르는가? 해임할 빌미를 찾기 위하여 정해놓고 하는 감사가 `바른 감사`인가? 그대들이야말로 감사대상이다. 나는 KBS가 경영을 어떻게 했는지는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경영상의 잘못이 있다 쳐도 그것이 사전적 의미에서 `비위(非違)`라는 표현에 들어맞는가? 그대들은 일상생활에서 `비위`라는 말을 그런 경우에 쓰는가? 그렇다면 쇠고기협상이야말로 엄청난 `비위` 아닌가? 이전의 법에서 `임면권(任免權,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규정한 것을 `임명권`이라고 고친 것이 해임할 권리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국회가 심심해서 문장을 다듬었다는 뜻인가? 진실을 구부려 권세에 아부하는 그대들의 논리는 `비위`가 상해서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은 아무리 적이라도 온당한 법에 따른 절차를 거쳐 배제하라고 말한다. 그게 불가능하면 법을 고치든가, 법을 고칠 수 없으면 참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법과 `게임의 규칙`과 `인간에 대한 예의`와 심지어 `국어의 원칙`을 무시한다. 이기는 것밖에 관심이 없는 무리에게는 더 이상 관용이 적용될 수 없다. 그대들은 우리의 신성한 민주주의의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그대들은 승자인 자신들이 올림픽 메달리스트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프로레슬링 시합에서 상대의 눈을 찔러 비만한 배에 챔피언벨트를 찬 반칙왕에 지나지 않는다. 붉은 여왕은 우리가 저들로부터 소중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하고, 그래야지 제자리나마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저들은 힘과 반칙과 불법과 기만으로 국민을 능멸하지만 국민은 오로지 비폭력, 민주주의, 법치주의, 선거 그리고 단결로써 저들을 심판하자. 저들을 신성한 민주주의의 경기장에서 기필코 퇴장시키자.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조광희 / 영화제작자, 변호사.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차장 역임. 명필름, 봄, 싸이더스 등의 영화제작사에서 고문변호사로 활동했으며, 영화 〈카라〉 관련 사건을 시작으로 〈하얀방〉 〈범죄의 재구성〉 등 상영중지 가처분 사건을 상당수 수임했다. 2006년 영화사 봄의 제작관리본부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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