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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지방을 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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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직전 어느 택시기사가 한 말이 새삼 실감난다. "이명박씨가 되는데 국민들이 고생 좀 할 거예요." 나는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국민의 뜻을 존중한다.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다수의 유권자가 李후보를 밀었다면 참여정부가 잘못한 것이고, 실정(失政)을 했으면 정권을 내놓는 게 순리다.


요즘은 그런데 마음이 자꾸 외동친다. 이정권이 개혁정부의 연속집권에서 온 피로를 풀어내는 균형을 잡는 동안, 개혁세력은 엄정한 자기비판을 거쳐 나라의 청사진을 새로 구상하는 성찰의 귀한 시간을 갖는다면 그도 나쁘지 않겠다고 느긋하게 생각한 나의 어리석음이 우세스럽다. 이

 

정권의 회심(回心)을 위해서도 근본인 국민이 총명해지는 수밖에 없다.

촛불대중의 출현은 약속의 징표다. "아! 신화같이/나타난 다비데군(群)들". 일찍이 신동문(辛東門) 시인은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월 대중을 이렇게 호명한 터인데, 촛불대중은 새로운 상황에 즉해서 진화한 다비데군의 후신일 것이다.


이제 문제는 촛불 이후다. 토의과정에서 지방자치의 문제가 `이후` 의제의 하나로 추천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생활정치의 바로 그 마당인 지방자치를 온전히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난맥에 빠진 한국정치를 근저에서 구원할 중요 보루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도시 양극화로 지방은 빈사상태


현재 한국의 지방이 빈사상태에 처한 점은 주지하는 터다. 지방 명문대 입학생들도 휴학하고 다시 응시해 서울 소재 대학으로 옮기는 일이 비일비재할 정도라니 서울 집중의 우심함을 짐작할 만하다.


이제는 그 폐해가 수도권 도시만이 아니라 지방 대도시들에도 미쳐가고 있는 형편인바, 도시의 양극화도 사회양극화만큼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다양한 해결책이 추진되기도 했다. 참여정부의 균형발전정책은 대표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한가? 선의에도 불구하고 균형발전의 이름 아래 온 지방이 난개발의 현장으로 변모했다. 난개발로 주민들의 오랜 삶의 장소는 파괴되고 그 신기루같이 솟아난 공간에서 땅부자들이 양산된다. 그 부자님들이 지방자치를 금방망이로 두드려 지방정치로 변신시킨다.


지방정치를 두 손에 쥔 그들은 `말 타면 견마(牽馬) 잡히고 싶다`고 슬슬 중앙정치를 넘본다. 중앙과 지방이 함께 마이다스와 손잡고 나아가는 이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지방은 청사와 의회만 으리으리해질 뿐 주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는 반어적 상황에 직면하고 마는 것이다.


설령 이를 시정하려는 용기를 가진 시장·군수가 나와도 그들의 교묘한 견제에 부득이 개혁에서 퇴각할 수밖에 없도록 토호연합의 힘은 점점 강화되는 형편이다.


개혁정부의 연속집권에도 불구하고 심화된 도시의 양극화는 사회양극화의 진전과도 평행을 이룬다. 그(녀)가 사는 곳이 그(녀)의 계급 또는 계층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데에서 보이듯, 사회양극화와 도시의 양극화는 쌍생아에 가깝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금융위기 사태를 화급히 챙기느라 분배에 소홀해 양극화에 잘 대처하지 못했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참여정부 역시 공언한 만큼 분배정의의 실현에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李정권은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공격하지만 신자유주의가 개혁정부들의 힘을 빌려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고 볼 측면도 없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집권에 성공한 개혁세력은 왜 거꾸로 그 발판을 스스로 허물어, 다시 말하면, 손잡고 찾아온 두 양극화의 포위를 자초해 이정권의 출현을 돕는 결과를 초래했는가?


지방을 서울의 짝퉁으로 만드는 지방정책


문제의 핵심은 집권 이후에도 개혁세력이 여전히 소수였다는 점에 있다. 물론 선거에서 극적으로 표출된 민심이라는 강력한 뒷배가 있지만 그것은 또 얼마나 비정형적인 것인가? 소수자의 지위로부터 탈출하려는 시도는 당연한 것이고 그중 지방문제를 중요 정책으로 든 것 또한 옳았다.


그런데 이미 지적했듯이 정책의 선의는 실행과정에서 배신되었다. 왜? 정책 입안자도 알게 모르게 서울 또는 중앙의 시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를 놓고 배분하는 설계자의 자세에 이미 `문명화의 사명`을 의식하는 식민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한마디로 지방의 실정을 몰랐다. 지방의 보수파들은 중앙정부의 색깔 따라 의상을 갈아입으니, 개혁정부들이 이어져도 그들의 지방지배는 의구하다. 더러 지방의 개혁파가 이 판에 동참하는 데 성공하고, 개중에 집심(執心)이 강한 일부가 충성스런 반대자로서 그 안에 안착해도 기존 판을 강화하는 데 사역되기 십상이지 판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패착이 또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이분법에 근거한 정책추진으로 수도권 주민들을 개혁정부로부터 이반시킨 점이다. 수도권 주민들이야말로, 떡고물도 없지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박탈감에 가장 크게 노출된 부류들인데 허울 좋은 수도권이란 수사에 농락당하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서울도 그 내부를 잘 살펴야 하듯이 지방도 각기 사정이 다른 것인데 그저 하나로 밀어 보니 정책이 제대로 먹힐 리가 없는 것은 정한 이치다. 이런 켯속으로 온 나라가 서울의 짝퉁이 되는 위업이 달성된 것이다.


"독일이 각 영방의 다양성을 잃고 베를린 일색으로 통일된다면 그런 통일에는 반대한다"고 괴테는 일찍이 지적했지만, 서울과 지방을 함께 죽이는 이 끔찍한 획일화를 넘어서 지방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시혜적 또는 선도적 중앙 배분이 아니라 지방자치를 내실화하는 구조적 접근이 종요롭다.


지방이 살아나야 나라정치도 발라진다


나라정치의 짝퉁으로서 아래로부터 자치를 차단해온 기존의 지방정치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각 지방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배분된 광역과 기초의 장과 의회제도 가운데 조정할 것은 과감히 조정하고, 명목에 그치는 지방정부의 정치적 중립은 오히려 풀어 정치적 선택을 명확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에 대한 주민접근성이 대폭 완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순환하는 생활정치의 마당으로서 지방자치가 재구축될 때 나라정치도 발라지고 서울과 지방이 함께 자유로운 사회로 상호 진화할 것인데, 생활세계의 조리(條理)를 따라 지방을 밝히는 촛불이 방방곡곡에서 켜들어지기를!


저자 소개


최원식 / 인하대 교수, 국문학

1949년 인천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입선.

1977∼82년 계명대 및 영남대 국문과 교수 역임.

1986년 「이해조(李海朝)문학연구」로 서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 받음.

현재 인하대 동양어문학부 교수.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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