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감세정책은 원래 자신의 색깔에 충실한 것이니 이를 뭐라고 탓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여당이 아니라 야당과 진보진영의 소극적이고 비효율적인 대응이다.
모든 국민은 납세자이며, 세금 깎아주어서 싫어할 납세자는 별로 없다. 이러한 심리적 특성 때문에 정치권은 감세정책을 포퓰리즘적으로 이용할 유혹을 느끼기 쉽다.
다만 감세정책이 초래할 피해를 직접 경험했거나 감세가 복지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된 국가에서는 감세포퓰리즘이 잘 먹혀들지 않는다.
지난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부시 행정부의 감세안에 대한 지지율은 28%에 그쳤다. 미국 국민들은 80년대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로 불린 감세정책의 피해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편 보편적 복지체계가 잘 갖추어진 북유럽 등 선진복지국가의 국민들은 `세금은 복지의 수단`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조세정책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며 심지어 증세보다 감세가 더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둘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아 비교적 감세포퓰리즘이 잘 먹히는 경우에 속한다.
감세논쟁의 두 가지 방향
우리 국민은 그동안 국가로부터 변변한 복지혜택을 받은 경험이 없다. 그런 경험이 없으니 국가가 거두는 세금이 나에게 혜택이 되어 돌아온다는 인식이 생길 수가 없다. 그 결과 세금과 관련해서는 `세금은 적을수록 좋은 것`이라는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국민들의 의식 때문에 야권과 진보진영은 정부여당의 감세 드라이브 앞에서 매우 곤혹스러워하고 있으며, `감세는 부자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는 소극적 논리로 대응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이 논리는 `부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해서 서민들에게 나쁜 것이 무엇이냐? 사촌이 땅을 사면 꼭 배가 아파야 하느냐?`라는 반론 앞에 무력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5월 29일자 《한겨레》신문 기사에 의하면, 2008년부터 차등보육료 지원을 위한 소득심사 과정에서 전업주부에게 월 30만 원 가량의 추정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새로운 사업지침이 보건복지부에서 일선 동사무소에 전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차등보육료는 소득수준에 따라 지원액이 결정되므로, 실제로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에게 추정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할 경우 상당수 가구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거나 적용되는 지원등급이 떨어져 전체적으로 보육료 지원액이 감소된다.
즉, 이러한 지침은 보육예산을 줄이기 위한 조치이고 그 배경에는 감세로 인한 재정수입 감소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감세가 복지축소로 이어져 서민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간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 향후 감세가 본격적으로 실현될 경우 이러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감세=복지축소`의 논리만으로 감세의 문제점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세가 일시적으로 복지를 축소시킬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투자를 활성화하고 성장잠재력을 높여 궁극적으로는 복지의 여력을 높일 수 있다`고 반박할 경우, 감세논쟁이 `성장 대 분배`의 이분법적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역사적으로 성장의 혜택을 맛보았지만 복지의 혜택은 맛보지 않은 상태라서 감세논쟁이 이런 이분법적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변질된다면 감세론이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
감세정책은 납세자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는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재정수입 감소라는 부정적인 효과를 동반하고 있기 때문에, 재정수입이 감소할 경우 그만큼 재정지출을 줄이지 못한다면 재정적자가 초래된다.
그렇다면 감세로 인한 재정수입 감소분만큼 재정지출을 줄일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재정적자 확대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있는지, 재정적자 확대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대책은 있는지 등을 점검해보아야 한다. 결국 `감세하면 투자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가설에 불과하다.
감세의 효과가 현실에서 그대로 나타날지 여부를 실증분석 결과나 다른 나라의 역사적 경험, 한국적 특성 등에 비추어 냉정히 점검해보고, 이에 기반하여 現정부의 감세정책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감세의 역사적 경험
정부여당의 감세정책은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그렇다면 당시 레이거노믹스는 성공했는가? 1980년대 후반의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일본자본이 미국의 특정 도시나 분야를 지배하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실제로 1980년대 일본자본이 미국의 주요 부동산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현상을 당시 미국 언론은 `제2의 진주만 공습`으로 표현하곤 했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미국의 경제 암흑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레이거노믹스의 실패를 의미한다.
레이거노믹스의 결과 감세는 확실히 이루어졌다. 그런데 재정지출은 오히려 증가했다. 이미 복지혜택의 맛을 본 선진국에서 재정지출 삭감은 증세만큼이나 저항이 거세다. 그래서 원래 약속한 대로인 `감세―재정지출 삭감`이 아니라, 대중에게 인기 있는 것만 골라 `감세―재정지출 증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마어마한 재정적자를 불러왔다. 게다가 감세가 투자를 활성화해 세수를 증대하는 소위 `래퍼 효과`(Laffer effect)도 나타나지 않았다. 세금 외에 재정적자를 메우는 유일한 방법은 국채발행이다. 막대한 국채발행은 민간부문의 자금을 고갈시킴으로써 고금리를 초래했다.
고금리는 한편으로는 민간부문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소위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를 가져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달러가치 상승으로 미국 제품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려 경상수지 적자를 낳았다. `재정적자―경상수지 적자`의 쌍둥이 적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쌍둥이 적자는 미국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았고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졌다.
법인세, 소득세 인하의 실제 효과는?
1997년 OECD는 QUESTII 모형을 이용한 법인세의 변화가 GDP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논문을 소개했다(Economic Department Working Papers, No. 176). 이에 따르면, GDP의 1%에 해당하는 만큼 법인세 부담을 매년 줄이고 같은 금액만큼 재정지출을 줄여 재정균형을 유지할 경우 연평균 0.033∼0.088%포인트의 GDP 성장률 제고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GDP의 1%인 9조원의 법인세를 경감하고, 같은 액수만큼 재정지출을 줄일 경우 연간 최대 0.09%의 경제성장 효과가 있음을 의미한다. 연평균 최대 0.1%도 안 되는 경제성장 효과를 얻고자 9조원의 재정지출을 깎아내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연구결과가 있다. 2002년 CGE 모형을 이용하여 법인세율 인하가 투자 및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에 대하여 실증분석을 한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법인세수를 20% 감소시키고 가계에 대한 보조금 삭감으로 세수감소를 보전하면 장기적으로 연 0.066%포인트 경제성장률 상승효과가 있다고 한다(이인실 외 〈법인세제 개편방향 연구〉).
즉, 약 6조원의 법인세를 경감하고 같은 액수만큼 복지지출을 줄여 재정균형을 맞춘다면 0.066%포인트의 경제성장 효과가 있다는 것으로서 OECD에서 소개한 연구결과와 비슷하다.
한편 2004년 산업연구원에서는 재정지출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에서 재정지출을 1조원 늘릴 경우 연간 경제성장률이 0.12~0.22%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정부지출의 거시경제 및 산업별 파급효과〉). 특히 제조업보다 교육, 보건부문 등 써비스 부문의 소득창출 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연구결과만 봐도 감세가 경제회복을 위한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떠드는 지금의 분위기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게다가 감세보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재정지출을 하는 것이 경제회복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다.
법인세 감세의 논리적 근거가 투자의 활성화이듯이, 소득세 감세의 논리적 근거는 소비의 활성화이다. 소득세 인하가 소비를 촉진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상위 10% 계층의 소비만 촉진하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약 45%, 자영업자의 50%가량은 면세자이다.
이는 소득세를 인하해도 하위 50%에게는 한 푼의 혜택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반면 감세혜택의 대부분은 상위 10%에게 돌아간다. 부유층은 물건을 사도 비싼 외제를 사고 여행을 가도 해외 골프여행을 주로 간다. 이들의 소비확대는 내수 진작과 연관성이 크지 않다. 내수를 촉진하려면 주머니가 비어 국산 생필품조차 구입하지 못하는 서민층의 주머니를 채워주어야 한다. 이들의 주머니는 감세로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재정지출 규모와 총 조세부담률은 OECD 평균 대비 10%포인트 가량 낮은 최하위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기업과 부유층에 혜택이 집중되는 감세정책을 펴는 것은 영양실조 환자에게 다이어트 약을 주고 비만 환자에게 비곗덩어리를 주는 격이다.
감세가 불러올 재정적자의 폭탄이 우려 된다
세금을 내리기는 쉽지만 올리기는 매우 어렵다. 감세를 했지만 재정지출을 줄이지 못해 재정적자가 누적되고, 투자확대의 효과도 미미할 경우에는 어찌할 것인가? 차기 정권에서 재정안정을 위해 증세를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에서 이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누적되는 재정적자의 폭탄이 적어도 자신의 집권기간에는 터지지 않기를 바라며 미봉책으로 재정안정화 대책을 계속 미루는 소위 `수건돌리기 게임`에 돌입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그 폭탄은 언젠가는 터질 것이며 그로 인해 국민이 받을 고통의 크기는 1997년 외환위기에 버금갈 것이다.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윤종훈 / 회계사,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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