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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전략과 한반도
기사입력 :
미국 국민들은 47세의 흑인 상원의원에게 미국의 향후 4년의 운명을 맡겼다. 오바마 당선자는 일리노이주의 초선 상원의원이며, 국가적 차원의 업무를 담당해본 경험도 일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2세의 노련한 경쟁자와 현 집권당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것은 변화에 대한 열망이 미국 내에서 격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거가 끝난 지금 선거운동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의 비전이 앞으로 4년간 어떠한 정책으로 실현될 것인가가 주 관심사이다.


선거운동은 선거를 위한 것일 뿐, 향후 정책의 전모를 드러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자신이 미국내 어떤 세력을 대표하고 있는가, 미국 전체의 국익을 어떠한 방식으로 재설정해야 하는가 그리고 야당이 된 공화당과 그 지지세력을 어떻게 끌어안아야 하는가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여 향후의 정책패러다임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주 관심사 중 하나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두 후보 대외정책의 큰 줄기가 표출되었으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번 대선의 쟁점은 이라크에서 시작하여 경제 이슈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를 마친 미국민들은 설문조사에서 경제가 전체 이슈의 60%를 차지한다고 응답했고, 이라크문제는 10% 정도의 중요성을 가진다고 했다. 이번 선거는 그만큼 경제선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미국민들의 바람은 모든 이슈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단지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군해야 하는가에 달린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난 8년간 부시 행정부가 추진해온 대외정책의 대전략(grand strategy)에 대한 근본적 반성의 문제였다.   


미국패권 시대의 갈림길에서 선택받은 오바마


脫냉전기 단극체제의 주도국으로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대전략의 선택지는 많았다. 단순화하여 분류하면 고립주의, 전면적 개입의 국제주의, 선택적 개입주의 그리고 우세(primacy) 혹은 제국전략 등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국제적 협력에 기반한 선택적 개입주의를 추구했다면, 부시 행정부는 우세/제국전략을 추구하면서 유례없는 강력한 군사력과 9·11테러 이후 마련된 지구적 개입의 정당성 논리에 힘입어 지구 구석구석에 미국의 힘을 투사했다.


대량살상무기와 연관된 테러의 재발을 방지하려는 목적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더불어 향후 미국과 패권을 다툴 경쟁국을 견제하거나, 미국체제에 끌어들이는 패권전략을 동시에 추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부시 2기 행정부에 들어서면서 군사적 일방주의는 미국의 국제적 신뢰를 실추시켰다. 쏘프트 파워를 강조한 변환외교(transformational diplomacy)도 처방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오바마의 당선은 구조적으로 미국 힘의 약화를 반영한다. 미국민들이 국내외적 신뢰가 실추되어가는 미국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효과적인 리더십을 요구한 결과, 미국 역사상 가장 예외적인 인물이라 할 오바마가 열렬한 지지를 받아 당선된 것이다.


이라크전쟁으로 미국은 군사력이라는 하드 파워가 21세기에 많은 한계를 지닌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리고 올해 불어 닥친, 끝을 알 수 없는 미국의 금융위기는 경제력이라는 하드 파워의 취약성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이에 군사력과 경제력이라는 하드 파워의 양 날개가 부러진 미국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강력한 쏘프트 파워이다. 새로운 쏘프트 파워는 과거의 것과 강하게 대비될수록 두드러질 수 있기에, 새로운 대통령은 파격을 바탕으로 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만약 오바마 새 행정부가 `희망`과 `변화`를 실현할 수 있는 이념, 정책, 지식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하드 파워의 부족분을 벌충할 수 있는 쏘프트 파워를 생산하지 못한다면,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패권 쇠락을 맞는 첫 행정부가 될 수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한편으로는 미국의 하드 파워를 다시 일으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명하고 효과적인 정책패러다임을 제시하여 미국의 국내외적 신뢰도를 높이고자 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 대외전략의 방향


민주주의사회에서 공약과 정책은 항상 차이가 있기에, 향후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전략이 어떻게 펼쳐질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묻힌 이슈가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권자들이 부시 3기를 상징하는 매케인 후보를 거부한 만큼 부시 행정부와 근본적으로 차이점을 보일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전략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은 지구적 차원에서 대량살상무기 테러 방지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 유지가 될 것이다.


그 속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가 추진해온 군사적 일방주의 노선을 거부하고, 국제적 공조, 공격적 외교, 제한된 군사력 사용, 테러문제에 대한 포괄적 접근을 추구할 것이다.


16개월 내 이라크 철군, 전면전보다는 테러 주도세력 격파 그리고 테러의 근본원인 제거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전면적인 군사력 투사는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대한 강한 반대, 테러 주도세력에 대한 전면적 대결 등의 양상은 지속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어느 정도 효율적으로 진행될 것인가이다.


이라크 철군이 향후 미국의 중동정책의 큰 그림과 조응하여 철군 이후 이라크와 중동이 미국의 국익에 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성을 회복할 것인가에 오바마 행정부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란문제에 적극성을 보일 것이다. 탈레반세력 격파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지역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테러 방지, 이란 핵문제 해결, 서아시아 지역질서 안정의 목표가 복합적으로 걸려 있다.


패권 경쟁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부시 행정부는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에 대해 명확한 전략적 입장을 표명하지 못했다. 소위 양방정책(hedging)이라는 이름하에 견제와 관여의 두 축을 오갔다.


패권 경쟁국에 대한 전략은 선거공약에서 어설프게 표출되기 어려운 핵심과제이기 때문에, 현재까지 오바마 행정부의 對중, 對러정책의 전모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과 러시아의 성장이 세계질서에서 부정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양국을 견제하기에는 너무 많은 현안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위기에 봉착하여 중국의 도움이 더욱 절실해졌다. 집권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과제는 경제위기 해결일 것이기에, 향후 1~2년간 경쟁국에 대한 강한 견제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대선은 오바마의 승리일 뿐 아니라 민주당의 승리이기도 하다. 앞으로 2년간 민주당은 백악관과 상하원 모두를 장악하여 막강한 힘을 행사할 것이며, 오바마 개인이 상징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백악관과 민주당 간의 협력도 긴밀하게 유지될 것이다.


민주당정부가 국제주의, 외교우선주의, 실용적 현실주의, 선택적 개입 등의 기조를 유지할 것은 명백하다. 미국이 정책수단의 현저한 한계상황에 당면했다는 인식도 이를 뒷받침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념적으로 줄곧 견지해온 인권 강조, 민주주의 확산, 보호무역 등의 기조는 실용적 현실주의와 더불어 긴장관계 속에 공존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미동맹 그리고 한반도문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항상 미국의 지구전략과 지역전략하에서 세워졌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체 외교전략기조에서 한미관계의 주요 이슈는 한미동맹의 역할 재설정, 북핵 및 북한문제,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협력방안 등이 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명박-부시 대통령의 협력하에 만들어진 `21세기 전략동맹`의 구체적 내용에 관해 궁금해할 것이다. 오바마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승리,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테러문제 해결에 한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답을 구하고,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21세기 전략동맹이 포괄하는 지리적·기능적 범위가 무엇인지 현재까지 확실하게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한미동맹관계는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에 우리 스스로 한미동맹의 21세기적 역할에 대한 합의와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시간은 촉박하다. 북핵문제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핵 중심의 이슈설정에서 북한 전체에 대한 포괄적 접근, 6자회담 유지 속에서 적극적 양자회담 모색 등의 변화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북핵이 아니라 북한의 미래라는 사실이 부시 행정부보다는 강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를 풀어나갈 정책적 대안과 수단을 가지고 있는지는 현재까지 확신할 수 없다. 한국정부가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오바마 행정부가 경제위기 극복과 외교대전략 마련에 여념이 없을 동안에도, 한반도의 문제는 지속된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 직후 상황이 오히려 급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미국정부가 한반도문제를 기본부터 재설정하는 과정에서 한국정부가 좀 더 긴 안목, 좀 더 포괄적인 비전 아래 준비되어 있을 때,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대한 우리의 전략을 실현시킬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오바마 시대, 한국이 나아갈 길


이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21세기 한미동맹 비전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現정부의 정책이 확실하지 않고 국내적 합의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새로운 지구전략에 한국이 주니어 파트너로 함께 참가하게 되는 수동적 상황이다.


한국은 지구적·지역적 차원의 국익 개념을 명확히 한 상태에서, 협상에 의한 한미동맹 역할조정을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성장동력과 중진국의 리더십을 지향하고 있는 現상황에서,


우리의 이익이 펼쳐져 있는, 동북아를 넘어서는 새로운 지역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가지고 미국의 지구전략과의 공동이익 범위를 찾아나가야 한다.


북핵 문제에 관해서도 핵문제를 넘어 북한문제 전반에 관한 장기전략을 마련하여 미국에 제시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동북아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주요국들 사이에서 합의될 때에만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기에, 북한의 미래는 물론 한반도의 평화구조에 관한 전략적 밑그림을 미리 만들어 제시해야만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을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핵문제를 미국에 기대고 남북관계가 현저히 악화된 現상황이 지속될 경우,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북한에 대한 포괄적 접근방식에서도 한국은 또다시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전재성 /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공저서로 『지식질서와 동아시아』 『동아시아 공동체』 『현대 외교정책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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