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5876개 초·중·고교에 청소 용역비를 지원해 달라는 교육부 측과 “청소도 교육의 일종”이기 때문에 지원할 수 없다는 의원들 사이의 실랑이였다.
교육부와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의 지원 요청 근거는, “요즘 초·중·고교생들이 집에서도 청소를 안해서…” 또는 “대부분의 학교가 아직도 간단한 교실청소는 학생들에게 시키지만 화장실 청소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발이 커 아줌마를 고용해 월 50만-60만원 정도 주고 시키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또 “요즘 아이들은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할 만큼 청소하는 법을 모른다”는 말도 나왔다.
자기의 생활 공간은 스스로 정리하고 청소해야
이 신문기사를 읽고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도대체 교육이 무엇인가? 올바른 인간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 아닌가. 올바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덕목을 갖추어야 하지만, 최소한 자기가 생활하는 공간을 정리하고 깨끗이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일 것이다.
특히 학부모들의 반발이 크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지금 대부분 학교의 화장실은 수세식이다. 이런 수세식 화장실 청소마저 시킬 수 없다는 것은 그릇된 자식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명심보감』에도 “자식을 사랑하거든 매를 많이 주고 자식을 미워하거든 밥을 많이 주어라”(憐兒多與棒憎兒多與食)고 하지 않았던가. 청소도 시키지 않고 왕자나 공주처럼 곱게 기르는 것만이 자식사랑이 아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릴 때 작은 일부터 잘할 줄 알아야 한다. 주자(朱子)의 『대학장구(大學章句)』 서문에도, 사람이 나서 여덟 살이 되면 왕공(王公)으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 소학(小學)에 들어가 물 뿌리고 쓸고 응대하는 일부터 배우게 한다고 말했다.
“물 뿌리고 쓰는” 일이 곧 청소하는 일이다. 『시경(詩經)』에서도 훌륭한 제왕이 되기 위해서는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뜰 안을 쓸고 닦는다”(夙興夜寐 灑掃廷內)고 했다. 이렇게 고전(古典)에서까지 ‘쓸고 닦는 일’ 즉 청소를 강조한 것은 그것이 비록 사소한 일이지만 그만큼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일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기본이 갖추어져야 나중에 훌륭한 인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인가,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사는 어느 중년 부부가 자기 집 마당에 텐트를 쳐놓고 농성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텐트 옆에 ‘부모는 파업 중’이라는 팻말을 내걸고 벌이는 이들 부부의 농성 이유가 재미있다.
17세 된 아들과 12세의 딸이 평소 집안일이나 설거지도 돕지 않고 방 정리도 하지 않으며 빨랫감도 아무렇게나 내팽개친다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아무리 설득해도 말을 듣지 않아서 최후로 택한 방법이 농성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아이들에게 삶의 교훈을 주기 위해서” 농성을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결코 이들이 미국의 부모들을 대표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부모들 중 자식들에게 집안일 돕고 설거지하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자식을 사랑하거든, 제대로 교육하려거든
아마 아이들의 학교청소를 반대하는 학부모들은 집에서도 아이들에게 청소를 시키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자기 자식이 후에 큰 인물이 되기 바란다면 집에서부터 청소를 시켜야 한다. 빗자루를 거꾸로 들면 바르게 들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명심보감』에서는 “자식을 사랑하거든 매를 많이 주라”고 했지만, 지금은 자식에게도 매를 주면 법에 저촉이 되기 때문에 매를 줄 수는 없고 그 대신 “자식을 사랑하거든 청소를 많이 시켜라”고 한다면 좀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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