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법을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지켜왔는지 법에 매달려 사생결단이다. 마치 법대로 살아온 것처럼. 싸움 끝에도 법대로 하자며 고소고발 전으로 이어진다. 정치는 사라지고 法 만능주의만 살아 있다.
일이 터질 때마다 특별법을 만든다고 난리다. 필시 여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알고 보니 집권여당 안에 법률가 출신이 무려 20%다. 전체 국회의원 중에도 다섯에 하나가 법조인 출신이다. 그러니 법대로 하잘 수밖에. 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입법부의 할 일은 당연히 법을 만들고 고치는 것이다. 새로 출범한 정권도 공약을 실현하고 정책을 펴기 위해 많은 법제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 해에도 수없이 많은 법들이 탄생하고 개정된다.
법안 심사와 처리가 마치 공장의 컨베이어 위에서 쉼 없이 만들어지는 공산품처럼 일사천리다. 그러나 법률이라고 다 올바르고 정의로운 법인 것은 아니다. 법률이라는 외투를 뒤집어썼다고 다 정의의 법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공감을 얻는 법률이어야 법다워진다. 만들어놓고 얼마나 많은 법률들이 죽은 법이 되어 가는지 셀 수도 없다.
물론 법률이 아무리 反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이라고 하더라도 다수당의 입법의사와 형식적인 합법절차에 따라 제정되었다면 정의로운 법이며 시민이 지켜야 할 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법대로`를 외치는 정부, 불복종하는 민주시민들
그러나 입법자가 다수의 힘으로만 법을 제정하고 개정하고 그에 근거하여 공권력이 행사될 때에는 반드시 시민의 법적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국민의 입법의사를 무시하고 다수당의 입법의지에 의해 실정법이 제정되거나 개정된다면 민주법치국가의 시민들은 실정법에 복종할 의무보다는 자신들의 쌓아온 정치적 자유와 기본권을 방어할 의무와 부정의에 저항할 의무를 선택한다.
이것이 과거 독재시대부터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민주화 이후 20여 년간 우리가 경험한 바다. 일시적으로는 질서와 안정을 찾는 것 같지만 국민을 무시하는 것 자체가 무질서이므로 시민불복종에 부딪치게 된다. 무질서와 부정의에 저항하여 촛불이 들불처럼 번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우리의 法현실에서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법이 정치적 지배의 도구나 기득권 옹호 장치로 쓰였던 시대를 한참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움츠리고 있던 용수철처럼 순식간에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공권력 강화, 공안, 집회시위의 과도한 제한, 의사표현의 자유 제한, 감시와 통제의 강화 등 민주화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그동안 정치적 투쟁의 산물이며 피와 눈물로 쌓아온 헌법적 가치인 인권, 인간의 존엄, 법치, 민주, 자유, 정의, 평화 등등의 개념이 뒷전으로 밀려날 위기다.
민주시민에게 돌려주었던 정치, 문화, 사회, 경제와 법이 일부 계층의 소유물로 되돌려질 판이다. 법과 공권력이 정권유지의 도구로 전락할 위기다. 국가와 사회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개인의 인권쯤이야 희생되어도 좋다는 전체주의적 사고가 망령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이 외치는 `법대로`, `법치`가 위압수단으로 들린다. 정치세계의 전면에 등장한 시민을 자꾸 법이라는 이름으로 광장에서 쫓아내려는 상황이다. 다시 법이 지배의 도구로 재편되고 시민의 지배자로 군림하려 한다.
정의와 자유를 추구 보장하는 법보다는 질서와 안정을 추구하는 법이 우선시되는 분위기다. 법이념의 양 날개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후자만 강조되면 추락하는 법이다.
법과 질서만 외치다 보면 과도한 공권력 행사는 필수적이고, 용산 철거민 참사 같은 비극은 필연적이다. 무고한 희생 앞에서도 법과 원칙을 운운하며 과격 불법시위 책임으로 돌린다. 그런 법 앞에서 사회적 약자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이상 대한민국 국민은 과거 권위주의적 독재국가에 의해 길들여진 복종하는 국민이 아니다. 정치적 목소리도 높일 줄 알고 국가에 대해 불복종의 반기도 들 줄 아는 민주국가의 민주시민으로 성장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뛰쳐나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아고라에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성숙한 시민이 되었다. 헌법 제1조 2항에 적혀 있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민주시민이다.
국민의 입법의사는 국회 다수결보다 우선되어야
국가권력의 정당성의 연원은 국민의사다. 지금 정부의 오류는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과 국민 다수에 의해 만들어진 집권여당이므로 정부와 집권여당이 곧 국민의사라고 의제해버린 데 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했거나 선거에 불참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무시한 채. 국민의 선택으로 다수당의 지위를 얻었다고 해서 4년 동안 마음대로 하라는 무조건적 권력부여가 아니다.
설사 지금도 1년 전처럼 여전히 다수의 지지를 받는 집권여당이라고 하더라도 밀어붙이기식 입법은 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난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야당을 설득하고 대화하는 절차가 있어야 입법의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다수당의 입법의사와 의지가 아니라 국민의 입법의사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집권여당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도 다수결이라면 제정 못할 바 없다는 오만이다. 집회시위를 제한하려는 집시법 개정안도 그렇고 싸이버모욕죄 신설도 마찬가지다.
국가권력은 남용하고 부패하고 부정의를 범하기 쉽다. 그래서 끊임없이 도덕성과 정당성의 연원인 국민의사를 확인하며 지지받고 승인을 얻어야 한다. 민주시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견해를 존중할 줄 아는 것이 민주국가의 통치자의 자세다.
다른 이념과 목소리를 관용하고 대화의 상대방으로 여겨 소통하려는 태도가 민주주의의 정치의 기본이다. 그러지 않으면 통치자는 항상 시민불복종의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다른 목소리를 `국론분열`이니 `사회혼란세력`으로 낙인찍어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눌러버린다면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갈등만 커져갈 것이다. 법치국가의 법은 통제와 억압의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임을 알아야 한다.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하태훈 / 고려대 법대 교수
고려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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