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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남북관계,
정부는 기다려도 민간은 달려간다
기사입력 :
남북관계가 더이상 물러설 곳 없는 정면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서로 뱉어놓은 입장과 선언만 난무한 채 이를 주워 담을 수 있는 양보의 움직임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상대방의 선(先) 입장변화를 요구로 내세우며 원칙과 강경함으로 버티고 있는 남북 사이에, 이제는 조그마한 갈등도 큰 충돌로 이어질 위험성만 존재할 뿐 문제를 풀 수 있는 여지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상호 체제인정과 비방 중지를 합의한 정치 관련 합의사항이 무효화됨으로써 북은 이제 이명박 대통령 실명비난과 대남비방을 거침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군사적 대결상태 완화를 위한 합의들도 무효화됨으로써 남북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었다.


특히 북이 서해상 북방한계선의 존재를 정면 부인한 것은 지난 인민군 대변인 성명에 이어 NLL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재강조한 것으로서, 이제 남과 북이 해상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경계선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서로 먼저 굴복하기를 기다리는 남북 당국


이명박

정부 역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기다림의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남북관계 악화를 개선하려는 노력과 의지보다는 북한책임론을 강조하는 데 급급한 실정이다. 북한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먼저 손을 내밀지 않겠다는 남북관계 중단불사 론의 연장선이다.


지난 연말 남북대화 복원에 나서겠다는 통일부의 업무보고를 질타했던 대통령의 인식은 여전히 그대로다. 관계단절이 오히려 북한을 굴복시키고 나오게 할 것이라는 안이한 주관적 기대가 대통령 TV토론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은 북한이 더 이상 남측에 10·4선언 이행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10·4선언 존중과 이행의지를 밝힌다면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었지만, 정치 및 군사 관련 합의무효를 선언함으로써 이제는 기존 합의 중 하나인 10·4선언에 대한 기대 자체를 북이 거두어들인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상호 체제존중과 군사적 대결 해소노력 등은 분명 2007년 10·4선언에 명시된 내용들이고, 따라서 이 합의들을 무효화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10·4선언 이행을 요구하던 기존 주장을 스스로 거둬들인 셈이 된다.


조평통 성명에 과거와 달리 10·4선언 이행촉구가 빠져 있음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음날 노동신문 논평에서 보이는 ‘남북관계를 수습할 방법도 바로잡을 희망도 없게 된 사태’라는 상황인식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 남과 북은 퇴로 없는 ‘치킨게임’에 돌입한 상태다. 상대방에게 겁쟁이라는 욕을 먹지 않기 위해 남과 북은 더 강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처지다. 자기 스스로 멈출 수는 없고 다만 상대방이 굴복해야만 이 게임은 끝나게 되어버렸다. 북한이 미사일을 만지작거리고 남측이 서해상의 경계태세를 강화하는 양상은 치킨게임이 결국 정면충돌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관계복원의 실마리는 경제협력에서


남북 당국이 스스로 치킨게임을 멈출 수 없다면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제3의 행위자를 통해 게임이 멈춰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지금 남과 북이 미국을 동시에 쳐다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은 남한과의 대결 입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협상의지를 포기하지 않은 채 오바마 행정부와의 통 큰 담판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다소 강경한 원칙적 입장을 천명하면서 동시에 한반도 긴장을 원치 않고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 노력을 밝히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결국 한국을 고립시키고 굴복시키겠다는 통미봉남의 유혹을 북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역시 남북관계 자체로 문제를 풀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미동맹에 기대를 걸고, 미국을 움직여 북한을 자기 뜻대로 굴복시키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마디에 이명박 대통령은 더더욱 한미공조의 힘을 믿고 있다.


향후 북미협상의 진전양상과 한미공조 정도에 따라 남북의 치킨게임이 누군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미국發 외부요인이 지금의 남북관계를 강제로 변화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불신만 남아 있는, 상처뿐인 남북관계일 뿐이다.


결코 바람직한 문제해결 방식이 아닌 셈이다. 남북間 치킨게임을 멈추기 위해서는, 그래서 결국 내부로부터 그 계기를 찾아야 한다. 당국의 노력이 힘들다면 민간에서 여지를 찾아야 하고 정치·군사 분야가 어렵다면 경제에서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필자는 조평통 성명이 발표되는 그 시각 평양에 체류하고 있었다. 대북지원단체인 (사)남북나눔의 대표단과 함께 황해북도 봉산군 천덕리에 추진 중인 살림집 건설 사업을 확인하고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정치적 전면대결과 군사적 긴장고조를 선언하는 조평통 성명에도 불구하고 평양은 경제건설 외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남북관계 경색국면에서 남측 민간단체의 방북을 허용한 것도 북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지원 때문이었다.


한 마을을 새롭게 조성해주는 실질적인 경제적 도움은 북으로서 포기하기 힘든 것이었다. 남북나눔이 새로 제의한 못자리용 비닐박막 제공에 대해서도 북측은 반색하며 합의서를 작성해줬다.


문구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긴 했지만, 당장 경제적 혜택이 되는 것을 북이 마다할 리 없었다. 남북間 합의무효를 선언한 그 시각 평양에서 대북지원을 위한 새로운 합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제 정부가 입장을 바꾸기를 기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성공하지 못할 기다림의 전략을 걷어치우라고 말하는 것도 이젠 무의미한 듯하다.


반(反)포용과 방관의 대북정책이 결국은 남북관계를 전면 중단시키고 우리 스스로의 대북 영향력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일도 이제 입만 아플 뿐이다. 동굴에 갇힌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정부가 나서서 악화일로의 남북관계를 푸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 보인다.


정부가 안 나서면 민간이 우선 나서야


그럼에도 우리는 남북관계 복원노력과 그 여지를 포기할 수 없다. 이번 방북에서 필자가 확인할 수 있었듯이, 경제 강국 건설에 총력 매진하고 있는 북한의 전략과 이를 위해 외부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한 북한 내부의 입장을 감안한다면, 경제협력의 물꼬를 통해 관계복원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현명한 방식이다.


조평통 성명에 경제 관련 합의사항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경협 약속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경제적 지원과 협력을 통해 북한이 대화에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호 파괴적인 정치·군사적 대결 대신 대북지원을 통해 당국間 대화재개의 물꼬를 트는 것도 방법이다. 당국이 어렵다면 민간이 우선 나서서 대북지원을 시작하면 된다.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노력은 여전히 지속되어야 한다.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김근식 / 경남대 교수, 정치학

 

1965년생.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경남대학교 정치언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북한의 체제전망과 남북경협』(공저) 『남북한 관계론』(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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