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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마케터, 버락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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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정 LG경제연구원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대선 사상 최대의 마케팅 전쟁이었다. 승리는 버락 오바마와 그의 선거 캠프로 돌아갔다. 애드버타이징 에이지즈(Advertising Age’s) 는 2008년 올해의 마케터로 오바마를 뽑았다.

 

외교 경험이 전무했고 연방 상원의원으로서의 경력도 짧았으며 전국적인 선거 캠페인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는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상원의원을, 대선 본선에서 맥케인 상원의원을 차례로 이겼다.

 

오바마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오바마 선거 캠프는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했던 것일까? 상대적으로 낮았던 초기 브랜드 인지도를 어떻게 일등 브랜드로 끌어 올릴 수 있었을까?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방식으로 하여 흑인과 백인, 서민과 중산층, 그리고 베이비 부머에서 Y세대까지 두루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

 

현대의 선거전은 이미 마케팅 전쟁이 된 만큼 그 답은 분명 오바마라는 상품 가치를 팔기 위해서 오바마 캠프에서 얼마나 철저하고 치밀하게 마케팅 전략을 준비하고 실행했는가에 있었다. 오바마 캠프의 승리는 기업의 시장 분석 능력, 차별화된 경쟁 방식 및 전략의 실행 능력에 따라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 훌륭한 마케팅 사례라 할 수 있다.

 

< 목 차 >

 

Ⅰ. 오바마 마케팅의 승리

Ⅱ. 오바마 마케팅 전략은 무엇이 달랐나?

Ⅲ. 비즈니스 관점에서의 시사점

 

Ⅰ. 오바마 마케팅의 승리

 

오바마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2004년 민주당 당원대회였다. 오바마는 당시 대통령 후보 존 케리의 지지 연설자로 등장해서 4분여 짜리 연설 후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 연설자보다 호소력이 있었고 눈빛은 젊은 존 에프 케네디를 떠올리게 했다.

 

그 자리에서 남긴 유명한 말 중에서 Red States(공화당 선호 주), Blue States(민주당 선호 주)도 아닌 ‘하나의 미국’이라는 말은 2008년 대권 도전에서 미국의 통합이라는 오바마의 강력한 브랜드로 작용했다.

 

그의 어두웠던 성장 배경에서 현재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가 바라는 미국을 말하고 있는 모습은 어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많은 미국인들의 뇌리에 깊게 남았다. 그러나 유권자의 기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오바마의 대통령 만들기 팀조차 빨라도 2012년을 대권 도전의 해로 생각하고 있었다. 2004년 연방 상원의원이 된 오바마는 미 상원에서 100명 중 99위에 랭크된 신참 의원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2007년 5월 고향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에서 대권도전을 선언한다. 경쟁자들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 유명 인사였고, 대선 준비도 앞서 시작했다. 오바마는 그러나 무서운 저력을 보여주며 2008년 6월 경선에서 강력한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를 이기고, 11월 대선 투표에서 맥케인을 차례로 이기며 미국 4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역사적 사건과 그 영광의 뒷자리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오바마에게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이 바로 붙게 되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대통령직과는 전혀 관계없는 타이틀을 하나 더 얻었다. ‘위대한 마케터, 버락 오바마’가 바로 그것이다.

 

애드버타이징 에이지즈( Advertising Age’s)는 버락 오바마를 마케팅 전문가들이 뽑은 2008년 ‘최고의 마케터’라는 타이틀을 주었다. 아이팟과 아이폰의 애플과 나이키가 그 뒤를 이었다. 정치와 무관한 프로 마케터들이 왜 그를 올해의 마케터로 선정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오바마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놀라운 마케팅 실력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2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후보들에게는 동일한 크기의 시장과 같은 목표점을 향해 달리는 시간이 주어졌고, 전국에서 인재들이 모여 들었으며 후보자들은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후보도 압도적인 승리를 예측하기는 힘들었다. 특히 본선에서의 맥케인 전보다 더 흥미진진했던 민주당 예비 경선에서 오바마의 지지율은 힐러리에 계속 뒤지다가 마지막 역전에 성공한 것을 알 수 있다(<그림> 참조).

 

 

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정치와 마케팅은 점점 상호 관련성이 높아져서 대선의 전 과정은 마케팅 게임과도 매우 흡사한 모습을 보인다. 모든 후보에게 공략해야 할 시장이 있고, 소비자들로부터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며.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미디어 그리고 조직력이란 요소가 주어진다.

 

이 요소들을 어느 선거 캠프가 어떻게 활용하는 가에 따라 결과는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과연 오바마 캠프는 어떤 특별한 강점이 있었을까? 유권자들로 하여금 오바마를 최고의 상품으로 인정하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본고에서는 오바마 캠프의 성공을 정치적 관점이 아닌 마케팅 관점에서 들여다 보고 그 시사점을 찾고자 한다.

 

Ⅱ. 오바마 마케팅 전략은 무엇이 달랐나?

 

전략 1: 오바마 브랜드 만들기

 

정치 선거에서 후보자들이 내건 공약을 실천할 것인지 알기란 매우 힘들다. 특히 출마 후보에 대해 미리 경험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결국 유권자는 한 후보에 대해서 미래 가치를 사는 것이다.

 

또 유권자들은 후보들에 대한 세밀한 정보를 비교 분석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보다는 주위에서 들리는 말과 인상, 후보들의 행동 양식 그리고 보이는 모습 등 시각적이며 정서적인 태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후보가 가지는 브랜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오바마는 전국적인 규모의 선거 캠페인 경험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짧은 연방 상원의원의 이력으로 일리노이 주 밖에서는 인지도가 낮았다. 오바마 캠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뚜렷이 인지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오바마가 가진 모든 불리한 조건을 상쇄할 수 있고, 오바마 지지층뿐 만 아니라 경쟁자의 지지층과 부동층까지 유혹할 수 있는 오바마 만이 가질 수 있는 차별화된 브랜드가 필요했다. 오바마 캠프는 오바마 브랜드의 모습을 만들어 가야 했다.

 

유권자에게 가장 호소할 수 있는 브랜드는 바로 오바마란 미국인이 가진 속성에 있었다. 그래서 누구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어메리칸 드림, 통합적 리더쉽, 그리고 낡은 정치에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브랜드는 만들어 졌다.

 

백인 어머니, 케냐 출신 아버지, 이혼 가정, 흑인도 백인도 아닌 모호한 피부색 및 코카인 등 오바마의 모습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많은 미국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8년 동안 지속된 공화당의 집권과 전쟁, 어두운 경기에 염증이 난 시점에 오바마 브랜드의 ‘Change(변화)’라는 단어는 바로 시장과 유권자가 애타게 찾고 있었던 것이며 선거가 진행될수록 오바마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그에 비해 힐러리와 맥케인의 브랜드는 새로움에 있어서도, 뚜렷하게 차별화하며 믿음을 주는 데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그 힘이 미치지 못했다.

 

오바마 브랜드를 지속적이며 강하게 해 준 브랜드의 내재적 속성에는 일관성과 진정성이 있었다. 오바마 캠프는 역대 최하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었던 부시 정권에 대한 싸늘한 시선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선 끝까지 낮은 자세와 겸손 그리고 정직이라는 내부의 전략을 유지해 갔다.

 

유권자들은 워싱턴의 엘리트 이미지를 원하지도 않았고 오바마 스스로도 서민 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혀갔다. 이러한 접근 방식으로 흑인 대통령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가득했던 흑인 유권자뿐만 아니라 불안한 시국에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던 다수의 백인 층마저 움직이게 하는 구매력을 창출할 수 있었다.

 

시작 시점의 오바마 브랜드는 신선함, 새로움, 인상적임의 브랜드 인지도였다면 선거 유세가 진행될수록 변화, 희망, 믿음이라는 브랜드가 인지되었는데, 이것은 찰스 다윈의 말을 빌리자면 가장 힘이 강력한 것보다는 가장 시대가 원하는 그리고 시대에 맞는 브랜드로 성공한 것이다.

 

전략 2: 시장 분석과 세그멘테이션 전략

 

오바마는 매우 애매모호한 피부색의 ‘흑인’이었다. 백인들은 그를 흑인으로 생각하고 흑인들은 그를 완전한 흑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멜팅 팟(Melting Pot) 미국에서 항상 민감한 이슈인 인종에 대한 전략짜기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오바마 캠프의 시장에 대한 판단은 유권자들이 피부색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리더십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만약 오바마 캠프가 인종 대결 구도로 작전을 짰다면 과거 미 대선에 두 번이나 출마해서 낙마한 제시 잭슨의 전철만 밟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직 흑인은 전 미국 인구의 15%를 넘지 못한다. 출구 조사에 따르면 미국 백인이 투표 시에 인종을 고려한 율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설문 조사에서 투표 시 인종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 후 결국 백인을 찍어 버린다는 ‘브래들리 효과’도 이번 대선에서는 빗겨 나갔음을 여러 언론에서 지목했다.

 

그러나 인종주의에 호소하지 않는 것만으로 승리를 보장할 수 없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지지층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서 시장 자체를 키운다면 승산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시장 자체를 키우기 위한 목표 세그먼트는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세대,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 그리고 선거에 전혀 관심이 없는 유권자들이었고 이들은 집중 공략 대상이 되었다.

 

세대 세그먼트에서 보면 미국의 주요 유권자 시장은 베이비부머, X세대 그리고 Y세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는 베이비부머 중 여성들로부터 이미 지지를 받고 있었고, 오바마는 X, Y세대의 젊은 세대 표밭에 투자를 강화했다.

 

Y세대 세그먼트 중에서도 고등학교 상급생 중에 47%가 첫 투표권이 있어서 이들에 대한 마이크로 세그먼트 공략도 필요했다. 또한 인종 세그먼트에서는 아시아계 및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고, 이들은 점점 더 정치에 참여적이었다.

 

특히 히스패닉 인구는 미국 인구의 14%를 차지할 정도로 증가해 있어서 오바마 캠프는 히스패닉을 포함한 아시아계까지 집중 공략하여 효과를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의 최고 전략가이었던 마크 펜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선거 참모였고 바로 ‘마이크로 트렌드’라는 베스트 셀러의 작가였으나 2008년 경선에서는 팀 내에서 선거 전략으로 여러 갈등을 일으키다 선거 기간 도중 물러나게 되었다.

 

결국 2008년 대선에서 다양한 마이크로 세그먼트에서 우호적 힘을 발견한 쪽은 오히려 오바마 캠프라 할 수 있다.

 

전략 3: 유권자의 눈에 맞춘 커뮤니케이션 전략

 

오바마가 마케팅 대통령이라 불리는 이유 중에는 오바마가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바마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은 간결성, 진정성, 참여성, 그리고 일관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메시지는 매우 간결했고, 오바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춘 모습이 쉽게 드러나서 유권자들에게 더 서민적이고 솔직하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권자 즉, 소비자를 이끌어 내는 참여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오바마는 경쟁자에 비해 앞서 갔던 것이다. 대부분의 연설문을 분석해 보면 오바마는 말머리에 ‘우리(We)’라는 말을 썼다.

 

프리랜스 리자 리빙스톤이 조사한 데이터에 따르면, 맥케인의 연설문 중 총 2,685 단어 중 우리라는 단어가 48번 등장하고 있는 반면, 오바마의 경우 2,632 단어 중 76번 등장하여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것으로 분석되었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일관성은 생명이다. 오바마에게는 여러 번 전략적 판단을 내려야 할 어려운 시간이 있었다.

 

경선 과정에서는 힐러리가 오바마의 정치적 경험 부족과 청소년 시절 코카인 경험 등을 들어 공격해 왔고, 대선 과정에서 맥케인은 군대에 가 본 적도 없는 애송이가 어떻게 미국을 책임질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라는 네거티즘으로 공격하여 오바마측에서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유리할 지 전략적 판단을 해야 했다.

 

오바마는 대중 매체를 통해서 직접 유권자에 설명하고 경쟁자와는 달리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개혁을 위한 메시지에 더 집중했다. 또한 동일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이웃과 같은 오바마 브랜드를 강화해 갔다.

 

전략 4. 풀뿌리 민주주의의 힘을 결집

 

미국 대선에서 자원 봉사자들의 자발적 지원과 유세 활동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캠프 오바마’라는 오바마 캠프의 자원 봉사자 조직이 경쟁자들에게 위협감을 준 것은 자원 봉사자 조직의 능력을 뛰어 넘는 조직력과 확장성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오바마 캠프는 2004년 민주당 경선 시 온라인 기금 모금의 힘을 보여 주었던 하워드 딘의 사례를 유심히 관찰했고 벤치마킹을 했다. 그러나 오바마 캠프는 하워드 딘 캠프의 케이스를 넘어 온라인 풀뿌리 조직화를 기반으로 체계적이면서도 자발적으로 성장하며 아이디어가 흘러 다니는 생태계를 만들어 갔다.

 

이른바 오바마 생태계는 매우 조직적이어서 마치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의 구조처럼 일사 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150만 명이 넘는 자원 봉사자들로 증가해 갔다.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최고의 공신이 ‘캠프 오바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한 조직 운영은 구심체가 되는 철학과 정신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팀 조직 이론의 권위자인 하버드대 사회 심리학 교수인 마샬 간즈가 오바마 캠프에 합류한 것도 오바마 캠프에는 큰 행운이었다.

 

인간적 관계도 없는 자원 봉사 조직원들이 하나 같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언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교육이 필요했는데 마샬 간즈가 그 정신적 역할을 한 것은 다른 후보들보다 더 강한 자원 봉사자 조직을 일구는 데 강력한 힘이 되었다.

 

또한 오바마 캠프는 효과적인 조직 관리를 위해 마케팅 프로그램에서 활용되는 고객 충성도 프로그램을 적용했다는 점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자원 봉사자들의 활동의 양을 차별화하여 그들이 더 많은 활동을 할수록 정보의 접근성과 임무의 수준을 높여 갔다. 또한 ‘오바마와의 점심’ 같은 혜택도 프로그램에 포함하여 리더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지금까지 살펴본 오바마 캠프의 다양한 노력을 통해 오바마는 풀뿌리 민주주의 방식으로 대선 역사상 가장 거대한 자원 봉사자 조직을 움직였고, 그 조직력이 경쟁자를 압도한 것이다.

 

이 조직의 힘은 힐러리와의 경쟁에서 힐러리 캠프에서 이길 것이라고 예측했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오바마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고, 공화당 맥케인과의 경쟁 시에 플로리다와 같은 격전지 (Swing State)에서의 승리에 큰 힘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공화당 성향이 강한 플로리다에서 오바마는 풀뿌리 조직의 결과로 얻은 많은 헌금을 바탕으로 2008년 6월 이후 2천 7백 5십만불을 TV 광고에 쏟아 부으면서 공중파 홍보에서도 압도했다.

 

오바마 캠프의 놀라운 기부금 모금을 통한 규모의 경제로 오바마는 맥케인과의 공중파 홍보전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으며 결과적으로 맥케인 캠프가 공화당 텃밭에서 자신들의 영토를 방어하기에도 힘들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오바마 캠프가 점점 커지는 조직과 방대한 정보를 잘 관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오바마 캠프의 조직력,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생태계 조성 및 조직 관리 철학의 결합 등 여러 요소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과 같이 속도와 효율성이 중요한 시대에는 수 많은 자원 봉사자들의 귀와 입을 움직이는 미디어 수단이 필요하다. 2008년 미 대선에서 뉴미디어는 그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다음에서 살펴보는 오바마 2.0으로 거듭난다.

 

전략 5. 뉴 미디어의 힘을 최대한 활용

 

가장 다양한 미디어 툴과 가장 많은 광고비가 소모된 2008년 미 대선은 뉴 미디어간의 전쟁이었다. 뉴 미디어는 사회적 속도 (Social Velocity)가 매우 빠르고, 네트워크를 통한 전파성, 아메바처럼 스스로 번식해가는 놀라운 증폭성, 비용 효율성, 창의성 그리고 참여성의 특징을 갖추고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더욱 강력한 시너지가 발생하게 된다.

 

오바마 캠프는 그 어느 경쟁 팀보다 뉴 미디어 활용력이 높았다. 타임지에 따르면 오바마도 자신의 예상보다 더 강력한 인터넷의 효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과거의 대선 역사를 보면 당시의 앞서가는 미디어 형태는 승리 후보들의 일등 공신이었다.

 

1960년에 공중파 TV에서의 존 에프 케네디, 1996년 케이블 TV에서의 빌 클린튼, 그리고 2008년 유, 무선 인터넷의 황제 오바마까지 뉴 미디어를 장악하는 자가 높은 승률을 보여주었다.

 

오바마의 뉴 미디어의 중심에는 홈페이지인 ‘마이버락 오바마 닷컴’(my.BarackObama.com)이 있다. 이 홈페이지는 자원 봉사자를 움직이는 가상공간이자 모든 자원 봉사자들과 교감하는 커뮤니케이션 모체 역할을 해냈다.

 

이 사이트를 만들기 위해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사인 페이스북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인 크리스 휴즈는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오바마 캠프에 합류하여 큰 기여를 했다. 마이버락오바마닷컴에는 이후 총 백만 명이상의 지지자들이 온라인 회원으로 등록하게 되었으며, 수많은 캠프 조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주고 받았다.

 

온라인에 등록하는 지지자가 하나 둘 씩 늘어 날 때마다 소액 기부금이 쌓여갔다. 오바마 캠프는 유권자 정보를 데이터 베이스화하여 이메일을 통해서 지지자들과 교감하고 선거 유세를 유리하게 진행해 갔다.

 

오바마는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에서도 경쟁자중에서 가장 많은 ‘사이버 이웃’을 가지게 되었고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인 유투브에서 오바마의 공식 비디오를 네티즌이 클릭한 것을 시간으로 환산하면 1천4백만 시간이 넘었고 이것을 TV 방송의 금액으로 환산하면 4천7백 만 불에 이르렀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뉴미디어 관점의 보편화된 모바일 텍스트가 캠프와 자원 봉사자간에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고 조직을 움직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모바일 텍스트는 핸드폰을 사용하는 유권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퍼미션 마케팅 방식이 필요했지만 캠프의 뉴스를 언론보다 더 빨리 알고 싶어하는 지지자들에게 퍼미션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프린스턴 대학과 미시간 대학의 2006년 공동연구에 따르면 선거전에 문자 메시지로 투표에 참여 해 줄 것을 호소하면 투표율이 4% 올라갔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오바마 캠프에서 보내는 텍스트 메시지는 오바마의 유세 일정, 집결지, 오바마 캠프의 이벤트 및 이슈 등을 실시간 공유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뉴 미디어의 활용은 특히 오바마와 같이 젊은 층으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어서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선거 출구조사를 보면 18~29세 사이의 투표자들의 비율이 1972년 이후 가장 높았고 이 중 다수가 오바마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밝혀졌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이 유권자층의 반은 인터넷을 통해서 선거 정보를 얻고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뉴 미디어는 선거 자금을 모으는 데 분명 큰 몫을 해냈다. 오바마가 모은 총 6억불이상의 역사상 최대의 기부금은 2백 5십만이라는 다수의 미국 시민들이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으로 기부한 것으로 뉴 미디어가 오바마 풀 뿌리 민주주의의 중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오바마 캠프의 뉴미디어 전략만 보는 것보다는 왜 경쟁자들은 상대적으로 열세적이었는가도 고려해 봐야 한다. 이것은 오바마 캠프에 더 뛰어난 뉴 미디어 전문가들이 모여 들었고, 오바마가 웹 2.0에 친숙한 젊은 세대에게 더 인기가 많았던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오바마 승리가 마치 뉴 미디어 전쟁에서만 이겼기 때문이라고도 보기 힘들다. 선거 막바지까지 오바마는 다른 후보들보다 많은 돈을 TV 홍보에 쏟아 부었고 효과를 보았다.

 

2008년에 TV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것은 기업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도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미디어는 목적에 준하는 것이지, 수단을 위해서 어떠한 미디어가 활용될 지는 전략가의 판단에 달렸을 뿐이다.

 

전략 6. 오바마 리더십의 부각

 

마지막으로 오바마 개인의 특징을 들 수 있다. 그의 카리스마와 그의 리더십이 승리의 핵심적 요인이다. 리더쉽은 한 사람을 둘러싼 총체적인 예술이다.

 

행동 양식, 말투, 습관 및 손 동작까지 모두가 하나의 이미지로 형성된다. 오바마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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