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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들이 바라본 美 패권의 향방
기사입력 :

<LG경제연구원 최동순>

 

반세기동안 지속되어 온 미국의 일극(一極) 체제가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일단락될 것인지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 질서의 새로운 개편 과정에서 파생될 미국의 입지 변화에 대하여 저명한 경제 전문가들의 눈을 빌어 고찰해 본다.

 

미국發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질서의 지각 변동으로 미국의 영향력 약화와 함께 다극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막연한 예상들이 속출하고 있다. 명확한 전제와 체계적으로 구조화된 기준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의 견해를 분석해 볼 필요성이 대두된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 중 하나인 ‘새로운 미국 재단(New America Foundation)’ 산하 글로벌 금융전략팀(The Global Strategic Finance Initiative) 디렉터인 더글라스 레디커(Douglas Rediker)는 21세기 미국의 국제적 입지에 핵심적 역할을 할 네 가지 요인으로 자본, 이데올로기, 창조, 그리고 주의를 꼽고 있다(<그림 1> 참조).


각각의 요인들에 속해있는 하위 개념들은 실제로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 차원에서 이번 금융위기 이후 국제질서의 지각변동에 주춧돌 역할을 담당하게 될 기본 변수들이다. 

 

이러한 기본 변수들은 크게 두 가지의 결정적 기준들로 수렴될 수 있다. 세계 경기의 조기 회복 가능성 여부와 국제적 공조의 달성 여부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가지 결정적 기준들은 향후 미국 패권의 향방에 대한 해외 유수 석학들의 견해를 분명히 구분해준다.

 


배경과 철학이 각기 다른 전문가들의 주장을 일정한 기준으로 비교 및 대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기준들을 적용하면 해외 석학들이 바라보는 향후 미국의 모습을 크게 네 가지로 그룹화할 수 있다.

 

세계 경기 조기 회복 및 국제적 공조의 성공적 달성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 환경 관련 국제적 공조 통한 경기 부양 속 미국의 입지 유지

제프리 삭스 美 컬럼비아大 교수는 국제적 공조를 통해 세계 경기가 충분히 조기에 회복될 수 있으며 미국의 입지도 그 가운데에서 유지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그는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인한 소비의 위축이 위기 극복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장애물이라고 규명한다. 미국·유럽·아시아 모두가 주택가격 및 주식시장 폭락으로 인한 자산가격의 폭락을 경험하고 있으며, 특히 각국 자산가치의 최고치 대비 하락 폭은 미국의 경우 연간 수입(National Income)의 100%에 육박하는 15조 달러, 유럽과 아시아의 경우 70%에 해당하는 10조 달러 규모이다.


세계적으로 연간 수입의 60%에 해당하는 약 25조 달러 규모의 자산가치가 증발했다는 의미이다. 가계의 자산가치가 1달러 하락할 때마다 소비는 0.05달러만큼 하락한다고 전제했을 때 가계 소비가 입는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소비 위축은 궁극적으로 완화되겠지만 문제는 완화 속도가 실업률 증가와 생산량 급감을 막기에 턱없이 느리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비 수요의 하락은 국제적 공조를 통한 全지구적 투자로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다.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중앙아시아 등 빈곤 지역 및 개발도상국들을 대상으로 수송·대체에너지·수자원·오염방지 시설 등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해 수요를 인위적으로 창출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세계은행이나 아프리카 개발은행 등 국제 금융기구들의 대출 여력을 확대시켜야 하며 미국이 선두에 나서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각국이 조금씩 희생하여 지금까지의 내수부양 정책과는 다른 형태의 정부 지출을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 회복의 핵심 장애물인 소비 위축은 수요의 전환을 통해 극복 가능하고 이를 위해 국제적 이해관계를 조율할 적임자로서 미국의 리더십이 요구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가계 소비 위축으로 인한 수요 하락을 지구가 현재 필요로 하고 있는 부문에 대한 투자 수요로 메워, 재정 확대에 따른 민간 투자 구축효과의 악영향을 오히려 역이용하는 방식은 사실 글로벌 차원에서 긍정적이며 장기적으로 필수적인 것이다.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한다는 고전적인 도전 정신을 내포하고 있는 동시에 국제 협력 속에서 미국 리더십의 색깔 변화를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피터 보틀리에(Pieter Bottelier) : 중국과의 협력 통한 미국 입지 유지

 

피터 보틀리에 美 존스홉킨스大 교수 역시 향후 미국의 입지는 반드시 국제적 공조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그는 美·中 이해관계 조율 및 협력 정도가 미국의 입지 결정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제적 공조를 통한 미국의 입지 유지에는 두 가지 중요한 조건이 따른다. 첫 번째는 보호주의를 지양하고 미국과 중국이 장기적으로 국제 무역과 자본 이동 부문에서 상호 보완·의존하는 관계를 지속시키는 것이며, 두 번째는 SED(US-China Strategic Economic Dialogue) 과정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다.


SED 과정은 2007년 미국의 헨리 폴슨(Henry Paulson) 재무장관과 중국의 오의(Mme Wu Yi) 국무원 부총리가 함께 추진해 작년 12월까지 총 다섯 차례 치루어진 美·中 간 무역 및 경제 전반에 관한 협력 모임이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견제하기보다 협력해 나가는 가운데 미국의 국제적 입지가 유지될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안정도 도모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계 경기 침체 장기화 속 국제적 공조 노력 지속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 : 신자유주의 몰락·부의 불균형 해소 과정 속 미국의 퇴조

 

조셉 스티글리츠 美 컬럼비아大 교수는 현 경기 침체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상황임을 거듭 강조하는 가운데 새로운 글로벌화의 물결 속에서 미국의 상대적인 퇴조를 막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가 가장 확신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완전한 몰락이다. ‘보이지 않는 손’ 및 자유시장제도에 대한 맹신, 그리고 무조건적인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이 수명을 다하고 시장과 국가 간 균형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인위적인 정부의 개입이 정당화되어 분배 위주의 경제 정책이 보편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워싱턴 합의(Washington Consensus)’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그 기반을 두어 온 미국의 패권은 자연스럽게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미국 패권의 쇠퇴 배경이 이처럼 간단하지만은 않다. 그는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시장제도가 경제학 이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정당화되어 왔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자유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 체제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허울 아래 궁극적으로 소수 상위 집단의 이득만을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가져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금융 위기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점이 초래할 수 있는 수많은 현상들 중 하나가 갑작스럽게 가시화된 것일 뿐이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위기 극복 의지가 당장의 일시적인 경기 회복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문제점은 여전히 잠재되어 있으므로 뿌리채 제거해내지 않는 한 언제든지 다른 형태로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점을 뿌리 채 제거해내는 방법으로 그는 新개념적 글로벌화를 들고 있다. 국경을 초월하여 부의 불균형 해소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국가 내에서의 빈부 격차 해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全세계적 차원에서 부국(富國)과 빈국(貧國)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다.


이는 국제기구의 다국적 구성 및 영향력 향상 등을 통해 지금까지 미국에 집중되어 왔던 힘과 책임, 그리고 부담을 全세계에 골고루 지우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경기의 회복 시점 예측에 全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최근, 경기 침체의 극복 여부 자체는 현재 글로벌 차원에서 최우선적 과제가 아니라는 그의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 단기적이고 피상적인 해결책보다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점 해결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이 그 동안 누려왔던 최강국으로서의 특권은 재분배되는 과정을 겪어야만 하며, 국제적 공조를 통한 범국가적인 부의 재편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글로벌화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폴 케네디(Paul Kennedy) : 국채 신용 추락 및 자본 이동으로 인한 미국의 퇴조

 

폴 케네디 美 예일大 교수 역시 미국의 퇴조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대표적인 ‘자칭 미국 비관론자(Self-Identified Declinists)’ 중 한 명으로 미국으로부터 빠져나가는 자본의 이동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기는 이미 늦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1조 달러 규모를 넘나드는 수준으로 통화량을 급증시켜 재정 적자를 메우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낮은 금리로 제공되는 미국 국채를 외국 투자자들로 하여금 매입하도록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특히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의 투자자들이 더 이상의 미국 국채 매입 자체를 거부하거나 헐값에 파는 행위를 보인다면 금리는 상승할 수밖에 없어 경기 침체기에 최대 악재 중 하나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결국 경기 침체는 장기화되는 동시에 미국의 위상도 추락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세계 경기 조기 회복 및 다극적인 대립 기조 팽배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 강조되며 미국의 입지 유지

 

프랜시스 후쿠야마 美 존스홉킨스大 교수는 세계 경기가 곧 회복되고 다극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 하지만 미국 나름대로의 경쟁력은 유지되는 가운데 다른 국가들도 부상하는 형국이 나타날 것으로 내다본다.


그는 이번 금융위기를 신자유주의의 몰락보다는 단순한 시장의 실패로 이해하고 있다. 거품 조장 및 도덕적 해이라는 자유시장제도의 취약점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은 사실이지만 규제 강화 및 정부 차원의 보완을 통해 충분히 극복 가능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의 견해와 대조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경제 위기의 심각성 및 회복의 메카니즘을 논하기보다 위기가 극복된 이후의 세계질서 상에서 나타날 지각변동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다극화 시대의 도래 이다.

 

다극화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미국과 기타 국가들 간의 경제 동조화 현상이 덜해지면서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 목격된다. 미국의 늘어나는 부채와 세계 각국에 골고루 쌓이기 시작하는 자본 보유량에서 그 징후를 찾아볼 수 있듯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 경기는 미국의 영향권에서 점차적으로 벗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이 그룹화 하는 방식을 통해 암묵적으로 미국을 견제한다. 상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Council), 걸프협력위원회(Gulf Cooperation Council) 등과 같은 지역적 혹은 이해 관계적 집단 조성이 더욱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초국가 조직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대규모 군사력의 힘이 무력화된다. 종교 집단·사이버 모임·NGO 등 국경을 넘어선 조직들이 정보 통신 및 과학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그 힘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디커플링, 그룹화, 초국가 조직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는 미국도 스스로의 변화를 통해 충분히 국제적 입지를 유지할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미국의 대응 방식은 기존의 하드 파워(Hard-Power)에서 소프트 파워(Soft-Power)로의 전이(轉移)이다.


규모의 군사력 및 경제력에 기반한 국력에서 기술과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국력으로 증진 계획을 전향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소프트 파워 중에서도 그는 특히 미국이 향후 상당히 우월한 위치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되는 나노·바이오 등 최첨단 산업과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유학생 수에서 나타나는 교육산업을 꼽고 있다. 적어도 이 두 분야에서만큼은 최상의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로버트 서터(Robert Sutter) : 중국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입지는 유지

 

로버트 서터 美 조지타운大 교수 역시 다극화 시대의 도래가 곧 미국의 쇠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다른 국가들의 급부상이 미국 패권의 퇴조를 반드시 필요조건으로 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는 특히 폴 케네디 교수와 같이 미국의 패권 향방에 대해 비관적인 학자들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들의 주장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 전에서의 패배, 소련의 부상, 일본의 부상을 겪으면서 미국의 쇠퇴에 대한 기대는 항상 있어왔다.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도 미국의 약점과 중국의 강점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깊이와 파급 효과에 대해서 진정으로 객관적인 분석이 결여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경기 장기 침체 및 국제적 공조 여력 부족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 경기 침체 장기화 속 미국 패권의 향방 불확실

 

누리엘 루비니 美 뉴욕大 교수는 全세계가 U형 경기침체의 가능성을 넘어 L형 장기 불황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으며 한동안 미국을 포함한 그 어느 국가도 조기에 이를 회복시킬만한 계기를 마련하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총수요가 총공급을 훨씬 밑도는 상황에서 인위적인 노력들을 통해 그 차이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시장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수준의 균형점을 되찾기는 한동안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장의 위축은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며, 실제로 스태그디플레이션 팽배 및 全세계 동반 경기 침체(synchronized global economic contraction)의 규모와 속도는 유례가 없는 수준이다.


소득, 소비, 산업 생산, 고용, 수출입, 건설 및 설비 투자 부문 등에서 끝없는 추락(Free Fall)을 막을 뚜렷한 방법이 전무한 가운데 이는 0% 에 가까운 세계경제 성장률로 대변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존폐 자체가 위협받지는 않을 것이며 신자유주의의 몰락도 완전히 현실화되기는 힘들다는 입장을 피력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와 견해를 같이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위기의 깊이와 구조의 복잡성이 워낙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규제 강화 및 정부 차원의 보완을 통한 조기 수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불가피한 장기 불황의 가능성 속에서 미국 패권의 향방과 국제적 차원의 공조를 논하는 것 자체가 한동안은 무의미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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