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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명분을 살려야 고성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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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저수지에서 저무는 해를 보며 ‘2006년 고성’을 뒤돌아본다.


<논어> ‘자로’편에 정명(正名)에 대한 유명한 대화가 나온다.

어느 날 위나라 임금의 초청을 받은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잘 해보려고 기다리고 있다는데 그 나라에 가시면 선생님께서는 어떤 일부터 하시겠습니까?”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겠다.”


“선생님은 사정에 너무 어두우십니다. 어째서 명분 같은 것부터 바로잡겠다고 하십니까?”


“무식하구나. 자로여.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일에 함부로 나서는 것이 아니다.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을 따르지 않게 되고, 말을 따르지 않게 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문화가 일어나지 못하고, 문화가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맞지 않고, 형벌이 맞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 둘 데가 없어진다.”


자로와 공자의 대화를 통해 오늘 고성의 문제로 새겨 보자.

과연 고성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세계에는 명분이 바로 서 있는가?


한마디로 두렵다. 공자가 말한 명분에는 시대가 담겨있고 세상을 경영하는 철학이 살아있다.

 

그러나 사람만 있고 철학이 없는 인류에 우리는 무슨 희망을 기대하겠는가! 마찬가지로 철학이 죽고 명분이 죽은 고성에서 우리가 무슨 희망의 싹을 피울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왜 고성에서 명분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상을 통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호흡하고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하여,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둘인 이유를 최근에야 알 것도 같다.


대화 상대를 만나는데 별도의 시간과 장소가 필요 없었다. 앉으면 토론장이었고 만나면 약속이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살기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고들 말했다. 무엇 때문일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들이 그 이유다. 다만, 극복해 내고자하는 이유는 각기 달랐다.


자식 교육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또한, 고성이라는 작은 나라에서도 지도자들에게 바라는 희망만은 동일했다.


`잘 사는 것!`

이것은 더 이상의 욕심이 아니라 기본이자 필수였다.


문제는 명분이다.

 

                 <동생>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익명의 누리꾼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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