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선 LG경제연구원
최근 스마트 그리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설비 투자의 필요성 증대, 전력 소비 효율화, 신재생 에너지 확대로 스마트 그리드 도입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도 스마트 그리드 도입의 필요성 및 유관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점검해볼 시점이다.
최근 미국은 지능화된 전력망, 즉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의 싱크탱크인 미국 진보센터(CAP)는 Green Recovery라는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 중 하나로 스마트 그리드를 지목했으며, 오바마 대통령 역시 미국재건계획(Rebuilding America) 연설에서 스마트 그리드의 중요성을 강조한바 있다.
지난 4월에는 바이든 부통령이 경기 부양법(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의 일환으로 스마트 그리드 보급 촉진을 위해 대규모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란 간단히 말해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하여 전기를 보다 효율적이고, 지능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차세대 전력망을 뜻한다. 현재 스마트 그리드는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유럽, 중국 등 전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 중 미국에서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스마트 그리드의 미래 비전 및 다양한 사업기회에 대한 논의가 가장 선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더구나 오바마 대통령의 강력한 육성의지로 미루어보아 스마트 그리드의 사업화 가능성도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서는 미국이 적극적으로 스마트 그리드에 투자하는 이유와 미래 비전에 대해 짚어봄으로써 향후 스마트 그리드 및 유관 사업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점검해보고자 한다.
전력망의 진화 양상
미국이 스마트 그리드에 투자하는 이유를 생각하기에 앞서 전기의 생산, 소비 방식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온실가스 배출 규제 강화, 신재생 에너지 확대, 전기 자동차 등장 등 새로운 기술과 글로벌 규제로 인해 전력망의 진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전기를 사용한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다. 1879년,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겨우 130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기는 우리 생활에서 이미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휴대폰, MP3, TV, 냉장고, 노트북 등은 모두 전기로 구동된다. 석유 대신 전기로 구동되는 자동차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여 전기 사용량은 꾸준히 증가해 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일 전망이다.
전기를 공급하고, 분배하는 전력망도 꾸준히 진화해 왔다. 전력망이란 발전, 송전, 배전, 소비에 이르기 까지 전력을 실어 나르는 모든 설비 및 기기를 의미한다. 처음 전기가 보급되던 시점에는 보다 넓은 지역에 전력망에 구축하는 것이 주요 이슈였다.
소비자들이 널리 분산되어 거주하기 때문이다. 일단 전력망이 갖춰진 다음에는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잦은 정전과 전력 사고로 인해 기기가 망가지거나, 업무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전력회사들은 충분한 양의 전기를 생산하여, 전력망의 안정성으로 운영하는 데 중점을 둬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전력 공급의 안정성보다 전력 수급의 효율성이 부각되고 있다. 즉, 버려지는 전기를 최소함으로써 불필요한 자원의 소모를 줄이고, 최근 큰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력 시스템을 운영하는 방식도 바뀔 전망이다.
기존 방식이 최대 소비량에 맞춰 발전량을 결정해왔다면 이제는 실시간으로 전력 소비량을 확인하여, 수요와 공급이 최적화되도록 자동으로 조정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과 각종 모니터링 기기의 발전이 이를 가능케 하고 있다. 즉, 전력망 관련 정보가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되면서 전력 수급이 보다 효율화될 전망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의 확대가 스마트 그리드의 도입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직접 전기를 생산하는 주택이나 빌딩이 등장하면서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소비하는 지역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력망은 필요할 때 전력을 끌어다 쓰고, 남을 때 나눠쓸 수 있도록 진화해야 한다. 즉 기존 전력망이 대형 발전소에서 최종 소비지까지 일방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에서 양방향 전력 흐름이 가능한 방식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복잡해진 전력망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전력 흐름을 실시간으로 확인, 제어할 수 있는 정보 수집 역량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이미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마이크로 그리드 (Micro-grid)란 이름으로 관련된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미국이 스마트 그리드에 주목하는 이유
이처럼 전력 수급의 효율성이 부각되고, 신재생 에너지가 확대되면서 차세대 전력망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관심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렇다면 미국이 지금 스마트 그리드에 대한 투자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투자가 필요한 기존 전력망
무엇보다도 현재 미국의 전력망 노후화로 송배전 설비에 대한 기본적인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노트북, TV, 휴대폰 등 디지털 기기의 보급 확대로 인해 가정과 공장 등에서 전기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반면,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송배전망에 대한 투자는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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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된 전력망은 송배전 과정의 전력 손실과 전력 품질 저하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미국 송배전 손실률은 6.6%로 한국(4.0%)이나 일본(5.0%)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한국의 경우 2006년 기준으로 송배전 손실률 1%에 해당하는 발전원가가 2,000억 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손실이다.
또한 낙후된 전력망 때문에 전력 품질 저하가 나타나고 있다. 늘어나는 첨단기기 사용을 감안할 때,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례로 서버, 컴퓨터, 의료기기 등 디지털 기기의 경우, 1/60초라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전압이 허용 범위를 벗어나더라도 고장이 발생할 수 있다.
북미전력안정위원회(NERC, North American Electric Reliability Corp.)에 따르면 전력 품질 저하로 인한 미국의 경제의 손실규모는 연간 1,5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전력망에 대한 투자는 불가피한 선택인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전력 산업 구조 특성상 실시간 정보 공유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미국의 전력망은 단일 기관이 아니라 10개 지역망, 약 3,300개의 전력회사에 의해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동시에 전체 전력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발전량이 부족할 경우, 다른 전력망에서 전기를 구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에서는 한쪽에서 발생한 작은 사고가 도미노처럼 퍼져나가서 순식간에 주변 전력망을 마비시키기는 위험이 상존한다.
일례로 2003년에 1백억 달러의 피해로 이어졌던 정전 사태는 오하이오 지역에서 전선이 가로수에 걸리면서 시작되어, 뉴욕을 포함한 미국 북동 지방과 캐나타 온타리오 지방까지 확대된 결과이다.
이처럼 미국의 입장에서 송배전망에 대한 전반적인 투자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 게다가 60~70년대와는 달리 정보통신기술, 전력 반도체 등 각종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전력망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사고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각종 디지털 검침 기기와 초고속 통신망이 보급되고 있다. 또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원격이나 자동으로 복구가 가능한 송배전 설비도 주목받고 있다. 향후에는 미리 사고 위험을 감지하고, 정전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지능화된 소프트웨어도 등장할 전망이다.
● 소비 최적화를 통한 투자비용 절감
둘째, 스마트 그리드는 효율적인 전력 소비를 통해 발전 및 송배전에 필요한 막대한 투자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해준다. 효율적인 전력 소비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불필요하게 전기를 사용하는 기기를 찾아내서 스위치를 끄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개별 제품별로 전력 소비량을 파악하여, 불필요한 전력 사용에 관한 정보를 보여줌으로써 소비자가 스스로 플러그를 뽑도록 유도할 수 있다. 상업용 빌딩의 경우 한달 전기료가 수백 만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방안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피크타임(peak time, 전력사용량이 최고조인 시간대)에 집중된 전력 소비를 고르게 분산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력 회사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최대 소비량을 기준으로 발전소를 건설한다.
이는 여름철 낮 시간처럼 일년 중 단 며칠간만 운영하는 발전소를 짓기 위해 몇 억 달러가 투자되는 것이다. 게다가 피크타임에 가동되는 발전소는 값싼 원자력, 석탄 대신 값비싼 가스, 석유 등을 사용한다. 컨설팅사인 Brattle Group은 미국의 피크타임 전기 소비량을 5%만 줄여도 연간 30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에너지 소비 효율화는 기존의 전력망에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각 가정에서는 개별 기기마다 전력 사용량을 검침하여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송하고, 이들 정보를 취합할 수 있는 별도의 기기를 구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가정과 전력회사간의 양방향 통신을 지원하는 차세대 검침 인프라(AMI, Automatic Meter Infrastructure)와 스마트 미터기 보급이 가속화되고 있다. 가정과 빌딩의 피크타임 수요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냉난방기기를 스마트 미터기와 연동하여 자동으로 작동시키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이미 지난해 미국 국립연구소(Pacific Northwest National Laboratory)는 스마트 미터기에 온수기, 건조기 등을 연동하여 약 15%의 피크타임 전력소비량을 줄인 바 있다.
최근에는 효율적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실시간 사용량 정보 수집이 가능한 차세대 검침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요금체계의 도입도 논의되고 있다. 실시간으로 수급 여건을 파악하여 전기 요금을 부과하는 실시간 요금제(Dynamic Pricing)가 대표적인 예이다.
전력 수요가 높을 때는 요금을 비싸게 매기는 반면, 전력 수요가 낮을 때는 요금을 싸게 매김으로써 소비자 혹은 지능화된 가전들이 피크타임 수요를 스스로 줄일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 신재생 에너지 사용 확대
셋째,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의 확대도 스마트 그리드의 도입을 앞당기는 요소이다. 오바마 정부는 온실가스 저감, 에너지 안보 확립,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신재생 에너지를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다. 이번 경기부양안에도 풍력, 태양광 부문의 세액 공제 및 보조금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각 주정부에서도 일정 비율 이상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 Renewable portfolio Standard)를 도입하고 있다. RPS제도가 제대로 시행된다면 2015년 이후에는 전기 공급의 상당 부분을 신재생 에너지가 담당할 전망이다.
신재생 에너지의 확대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송전망 투자가 필요하다. 신재생 에너지 발전소가 외곽 대규모 발전단지의 형태로 조성되어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에너지 개발사 Sempra사는 58MW 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네바다주의 엘도라도 사막에 짓고 있다.
태양광/열 발전소는 주로 남서부 사막지대에 위치하며, 풍력 발전소는 바람이 많은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 때문에 신재생 에너지 발전소와 대도시를 잇는 스마트 그리드에 대한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북미전력안정위원회(NERC)도 풍력발전소와 태양광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인구 밀집 도시로 끌어올 수 있는 초고압 송전망(High voltage transmission backbone)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전력업체의 입장에서 바람, 햇볕 등 자연환경에 따라 발전량이 결정되는 신재생 에너지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에너지원이다. 제어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기예보가 100% 정확하지 않는 한 발전량을 예측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독일 전력업체인 E.ON Netz는 풍력 발전량의 최고치와 최저치간 차이는 4,340MW까지 날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그림 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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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는 주택이나 빌딩의 지붕, 벽면, 창틀 등에서 필요한 전기를 직접 생산하고, 남는 전기를 전력망에 보내는 등 새로운 전력 사용 방식이 등장하면서 스마트 그리드로의 전환이 가속될 전망이다.
각 가정은 대용량 배터리에 전력을 저장할 수도 있다. 혹은 태양광 발전 패턴은 수요의 피크타임 패턴과 유사하기 때문에 태양광 발전이 주로 피크타임에만 사용하는 석유, 가스 발전소를 대체할 수도 있다.
지난 5월, 미국의 전력회사 Arizona Public Service사는 200~300가구의 지붕에 태양광 전지를 설치함으로써 1.5MW의 전력을 생산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해당지역 전력망에는 이제 수백 개의 소형 발전소가 생긴 것이다.
과거에는 발전소에서 가정으로 전류가 일방적으로 흘렀다면, 이제는 개별 가정 간의 자유로운 전력흐름이 가능해야 한다. 또한 전력 흐름을 안정적으로 제어하기 위해서는 어디서 전류가 남고, 어디서 전류가 모자라는 지를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여기에 잉여 전기를 저장하거나, 비상시 전기를 공급할 있는 저장장치 역할을 하는 전기자동차까지 더해지면 전력 흐름을 제어하는 것은 더욱 복잡해진다. 따라서 이를 정확하기 관리하기 위해서는 실시간을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전력망 제어, 즉 스마트 그리드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정책 지원 방향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스마트 그리드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2003년 1백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피해를 낸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은 이래, 국가적 차원에서 차세대 전력망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계속해왔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스마트 그리드 역시 전력중앙연구소(EPRI)의 인텔리그리드, Modern Grid Initiative, GridWise 등 10여 개가 넘는 기관에서 전력 시스템의 지능화 및 선진화에 대해 꾸준히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미 2007년 부시 정부에서 발표한 에너지 안보법(Energy Independence and Security Act of 2007)에도 스마트 그리드 지원 법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게다가 최근 오바마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스마트 그리드와 관련된 재정지원, 외국 자본 및 기술 유치, 표준안 마련, 정보 보안 등 다각도의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미국 정부는 스마트 그리드를 육성하기 위한 대규모 재정지출 계획을 발표했다. 경기부양책 (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중 전력망 선진화에 할당된 액수는 110억 달러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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