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월의 어느날, 서울역 앞 광장은 뜨겁고 숨이 가빴다. 서울의 사방팔방으로 통하는 넓은 차도를 가득 메운 학생과 시민들은 스크럼을 짜고 서서, 상복처럼 보이는 검은 군복의 벌떼 같은 전경들과 대치했다.
가슴 가득한 분노와 슬픔이 햇살의 열기와 뒤섞여 아스팔트를, 서울의 하늘을 통째로 녹여버릴 듯했다.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시간이었으나, 마음과 달리 몸은 자꾸 고통의 신호를 보내왔다.
내 옆의 낯모르는 남학생과 맨살로 꽉 낀 팔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려 쓰라렸다. 몇 시간 째 서 있느라 다리는 부었고, 언제쯤 시작될지 모를 진압의 공포로 자칫하면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목이 터져라 쉼 없이 노래를 불렀다. 가슴 깊은 곳의 말들을 소리 내어 외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벅차고 감격스러웠다.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노래는 함성이었고 함성은 곧 노래였으며, 우리는 같은 언어를 정확히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을 때까지"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20여년 세월 건너 닮아 있는 두 `6월`
그 사이로 이런 말들이 유령처럼, 암시적이고도 강력한 지령처럼 흘러다녔다. "탁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행동하는 양심 행동하는 욕심" 쇠파이프, 지랄탄, 호헌철폐, "지구를 멈추어다오 나는 내리고 싶다"
그때 투철한 신념과 용기를 지닌 운동권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대학 2학년생이던 나는 이제 마흔이 넘어 또 다른 6월을 살아내고 있다. 두 6월이 보여주는 유사한 모습들에 흠칫흠칫 놀라면서. 20년이 넘는 세월을 납작하게 축약하면서 두 6월이 빚어내는 몽따주의 풍경은 기묘하게도 닮아 있다.
80년대 내내 끊이지 않던 폭력적인 철거사태와 21세기 서울의 한복판에서 공권력이 철거민을 죽음으로 몰아간 용산참사, 80년대의 언론통폐합과 2000년대의 미디어방송법 개정논란, 이름을 다 기억할 수도 없는 지난 시대의 분신 노동자들과 단돈 30원의 배송료 인상을 요구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오늘의 비정규직 노동자, 그때나 지금이나 정당하고 합리적인 대책을 뒤로한 채 반복되는 대량해고와 파업, 광장과 거리에서 슬픔에 젖어 일시에 대열을 이루는 사람들.
오늘 우리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론 지난 시대에 비해 민주화되고 개선된 부분도 상당히 많다. 더 안정되고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현상이 아닌 본질의 차원에서도 그러할까. 일상과 편익의 측면이 아닌, 개인의 내면에서도 그러할까.
눈에 보이는 체감의 영역들은 자유로워진 대신, 삶의 전체 공간은 자각하기조차 어려운 뿌리 깊은 억압에 점령된 것은 아닐까. 그러니, 그렇다면, 오늘 이곳에서 나는,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자유롭다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가.
폭압의 시대에 맨몸과 양심으로 저항하던 시인 김남주는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라고 선언했다. 서로를 위해 땀 흘려 함께 일하고 함께 싸우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자유"라고 역설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을, 무엇보다 "제 자신을 속이고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유로운 사람이란 세상과 자신에 맞서 싸우는, 외적이며 내적인 `투사`이다. `투사`의 다른 이름은 `바보`이다. `바보`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다. 속일 수 없기에 그는 바보이지만, 속이지 않기에 그는 투사이다.
다시 들리는 선언과 함성의 노래
선언과 함성으로 이루어진 김남주의 시 「자유」 앞에서 나는, 우리는 "자유다라고 노래"할 수 있는가. 선언과 함성이 노래가 된 시대의 노래가 여기에 있다. 다시 나와 우리를, 나와 우리의 현실을 겨냥하며.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 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다라고 노래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
피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다라고 노래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누어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다라고 노래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민주주의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속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시인의 육성으로 듣기
— 김남주 「자유」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김수이 /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1968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문학동네』 문예공모에 평론 「타자와 만나는 두 가지 방식 - 기형도, 남진우의 시에 관하여」가 당선되었다. 평론집 『환각의 칼날』 『풍경 속의 빈 곳』 『서정은 진화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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