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경제연구원 정지혜
인구 고령화가 우리 사회에 가져 올 다양한 변화 가운데 거대 소비 집단의 부상이라는 측면에서 시니어 시장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시니어들의 높은 자산 규모와 새롭게 시니어 시장에 진입할 베이비붐 세대의 적극적인 소비 성향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시장의 개막을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소비자의 경제력, 구매의지, 공급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현재의 시니어 시장을 점검해 볼 때 시니어 시장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기대만큼 현실화되지 않을 수 있다. 경제력 측면에서 시니어들은 전체 부의 규모는 크지만 양극화가 심하며 보유 자산도 당장에 현금화가 어려운 부동산 형태가 많다.
더욱이 길어진 은퇴 후 여명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돈은 있어도 선뜻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급 서비스나 복지용품과 같이 한정된 니즈에만 대응하는 기업들의 전략도 시장의 발전을 더디게 하는 요소다. 따라서 기업들은 시니어 시장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우선 어떤 연령집단보다 집단 내 동질성이 떨어지는 시니어 집단이 다양한 세분 시장의 집합체임을 이해하고 고객에 밀착한 니즈 파악 노력이 필요하다.
지갑을 쉽게 열지 않는 시니어들을 사로잡기 위해서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차원의 니즈를 모두 아우르는 솔루션을 제공해 기꺼이 돈을 지불할만한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경제적 불안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판매 전략과 시니어들을 위해 구매하는 자녀 세대를 공략한 마케팅 전략도 돌파구가 될 것이다.
< 목 차 >
Ⅰ. 시니어 시장에 대한 전망
Ⅱ. 시니어 시장의 불편한 진실
Ⅲ. 시니어 소비 시장 육성을 위한 기업의 과제
Ⅵ. 결론 및 시사점
Ⅰ. 시니어 시장에 대한 전망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2006)에 따르면 한국은 현재 열 사람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이다. 그리고 10년도 채 남지 않은 2018년이면 총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는 고령사회가 된다.
1955년부터 9년간에 걸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고령층에 진입하면서부터는 고령인구 증가에 더욱 가속도가 붙어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이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된 국가로 기록될 것이다.
급격한 인구 구조 변화가 진행됨에 따라 당연히 ‘시니어 시장’이라는 거대 소비 집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고령화로 인한 재정 악화와 노동 생산성 감소라는 암울한 전망이 팽배하지만 고령 인구가 창출해 낼 신규 시장은 한껏 긍정적인 기대를 가져볼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나이가 들면서 필요하게 되는 제품이나 서비스, 소위 고령 친화 산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저출산 고령사회 위원회는 2008년을 전후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국내 시니어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해 2010년에는 43조9000억, 2020년에는 148조6000억 원 규모에 이를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성장률로 보면 연 평균 12.9%로 산업 전체의 평균 성장률 4.7%보다 훨씬 높다(<그림 1> 참조>.
이렇게 높은 수요 성장이 실현될 수 있는 근거로는 시니어들의 높은 자산 규모를 제시할 수 있다. 실제로 2006년을 기준으로 가구주 연령이 55세 이상인 가구의 순 자산은 전체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가구주 연령이 55세 이상인 가구는 가구당 가구원수도 전체 가구 평균에 비해 적으므로 인당 자산 규모로 따지면 그 수치는 더욱 높아진다(<그림 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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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머지 않아 시니어 시장으로 흡수될 베이비 붐 세대들이 이전 시니어 세대에 비해 훨씬 적극적인 소비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는 기대도 이 시장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액티브 시니어, 루비족, 노무족, 오팔족 등 다양한 이름으로 표현되는 시니어, 혹은 잠재 시니어 소비자들은 이전 세대였던 소위 ‘조용한 시니어(Silent Senior)’에 비해 전반적인 소비 생활에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은 은퇴 후 늘어난 시간을 제 2의 인생을 즐기는 데 보내며 여가, 미용, 교육, 문화 등 통념상 시니어 소비 시장으로 분류되지 않는 산업 분야에서도 활발한 소비 활동을 전개하는 집단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일찌감치 이들 소비집단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러한 전망대로라면 고령화는 적어도 시장 측면에서 새로운 기회와 변화를 만들어 내는 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니어 소비자의 절대적인 수나 평균적인 자산 규모, 일부 적극적인 소비 성향을 가진 계층이 반드시 전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시니어 시장이 기대만큼 매력적인 시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부가 아닌 수요자 전반의 구매력과 구매 의지, 그리고 이를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공급 환경이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시장 잠재력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기업들에게 불확실한 미래로 남아 있는 시니어 시장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짚어 보고자 한다. 시니어 시장의 성장을 불투명하게 하는 장애 요소를 소비자의 특징과 공급 차원에서 살펴보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기업의 대응 방안을 생각해 본다.
Ⅱ. 시니어 시장의 불편한 진실
시니어 시장은 정말 매력적인 시장이 될 수 있을까? 소비자의 경제력, 구매의지, 그리고 공급 환경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기대는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관점 각각에서 시니어 시장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들이 숨어 있다.
1. 구매력: 부유한 시니어가 전체 시장을 과장
흔히 ‘시니어는 고급 성향이 강하다’든가 ‘시니어는 실제 나이보다 자신이 훨씬 젊다고 느끼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확실히 그런 사람들의 비율이 과거보다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인구 중에서 그런 여유를 가진 시니어는 많지 않다.
고급 크루즈 여행, 영원한 젊음을 꿈꾸며 고급 자동차를 구입하는 시니어가 존재한다고 해서 전체 시니어가 고가 소비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국민 연금에 대한 불안, 의료비 부담 증대 등으로 인해 노후 생활에 불안을 느끼고 병원조차 가지 않는 시니어가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지난 2007년 미국 베이비붐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 높은 자산 규모에 근거한 시니어 시장의 경제력에 대한 시장의 자신감에 의문을 던졌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은퇴 후 현재 수준의 소비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인구는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현재보다 소비 수준을 낮추어야 하는 ‘준비되지 않은’ 집단이었다. 베이비붐이 나이 들어가면서 형성될 새로운 시니어 시장에 대한 전망은 부유한 일부 계층에 의해서 과장된 감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해 말부터 불어 닥친 불황의 여파로 많은 베이비붐 세대들의 자산 가치가 감소한 사실을 감안한다면 준비되지 않은 집단은 2007년 조사에서보다 더욱 늘어났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 총 자산에서 금융자산의 비중이 낮기 때문에 최근의 경제 한파가 시니어들의 경제력에 미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령층의 부의 편중이 예상보다 심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평균적으로는 자산도 많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통계에 나타난 만큼 여유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2008)의 조사에 따르면 가구주 연령 50세 이상의 중고령자 가구 가운데 상위 10%가 50대 이상 전체 순자산의 절반에 가까운 49.3%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위자산의 50% 이하를 보유하고 있는 가구를 빈곤 가구로 정의했을 때 가구주의 연령에 따라 80대의 57.7%, 70대의 47.5%, 60대의 28.6%가 자산빈곤층으로 분류되었다(<표> 참조).
이렇게 본다면 시니어 시장의 구매력에 대한 자신감은 극히 일부 부유한 사람들에 한정되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2. 구매의지: 돈이 있어도 쓰기 어려운 사람들
시니어들의 구매력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사람들이 부의 현재 크기뿐 아니라 미래의 재정 상태를 고려하여 지출을 한다는 사실이다. 출산을 앞두고 자녀 양육비 지출이 예상되는 30대와 독신으로서의 삶을 계획하는 30대의 소비 심리는 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정 소득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시니어들은 현재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미래의 소득이 불안하기 때문에 소비 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퇴직 연령은 빨라지는데 출산 연령은 늦춰지면서 은퇴 후 소득이 줄어든 후에도 자녀 부양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 이전 세대보다 길어진 기대 여명 등은 우리가 예상했던 시장이 기대만큼 빨리 형성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시니어들은 경제력에 대한 불안 심리가 높다. 통계청의 사회통계조사에 따르면 예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건강에 대한 불안 다음으로 경제력에 대한 불안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3> 참조).
미국, 일본의 경우 건강에 대한 불안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을 감안하면 경제력에 대한 불안이 높다는 것은 우리나라 시니어들의 특징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자산 항목 중 부동산 자산, 그 중에서도 주택의 비중이 높다는 것 또한 구매 의지가 쉽게 생기지 못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빠른 현금화가 어려운 고정 자산은 실제 구매력으로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며, 주택을 현금화 할 경우에는 생존의 기본 요건인 주거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불안으로 쉽게 풀리기 어려운 돈인 셈이다.
조만간 시니어 층에 진입할 중장년층이 이전 세대보다 전반적으로 부유하고 소비에 적극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길어진 은퇴 후 여명과 높아진 생활수준에 대한 기대 탓에 미래에 대한 불안 또한 높다.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많은 소비자들이 선뜻 지갑을 열기는 어려울 것이다.
3. 공급 환경: 다양하지 못하고 편중된 시장
이처럼 자세히 뜯어보면 부유하고 여유로우며 인심 좋을 것 같은 시니어 시장에 대한 인식은 실제 시니어 시장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 소득 감소로 실용적인 소비가 필요하고 돈이 있더라도 미래가 걱정돼 선뜻 쓰지 못하는 사람들, 여유 있는 노년을 즐기기 보다는 경제 활동을 지속해야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시니어 시장에 대한 관심은 아직까지 고령자 복지 용품이나 고급 서비스 시장 등 ‘고령자는 신체적으로 쇠약하다’, ‘고령자는 고급을 좋아한다’와 같은 선입관에 따라 편중되어 있다.
게다가 시니어 시장의 중요성이 강조된 지는 이미 오래지만 이들 소비자 집단을 대하는 기업의 적극성은 아직 부족하다. 대부분의 마케팅 조사는 50대 이하 고객들을 대상으로만 이루어지고 공공 기관의 통계에서도 고령자는 ‘60세 이상’이나 ‘65세 이상’과 같이 모두가 한 집단인 것처럼 포괄적으로 취급된다.
대표적으로 대다수의 제품 광고는 18~49세 사이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반 이상이 50세 이상의 소비자들에게 판매되지만, 이들에게 할당되는 자동차 광고 예산은 총 예산의 10%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 iPOD 매출의 19%는 45세 이상 소비자들에게서 발생하지만 애플이 마케팅 활동을 하는 대상은 35세 이하의 소비자들뿐이다. 심지어 발기부전 치료제에 대한 마케팅에서도 고령자는 배제되고 베이비붐 세대와 젊은이들만이 타깃이 된다.
사실 시니어 시장은 경제적으로든, 욕구 측면에서든 다양성이 존재하는 시장이다. 의료비 부담의 증가가 제네릭 약품과 같은 저가 약품 시장에 더 큰 시장 기회를 열었듯이 고령화로 인한 시장 기회가 흔히 생각하듯이 일부 상위층을 대상으로 한 더 고급, 더 큰 차와 같은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시니어 시장에 대한 획일적 접근으로는 극히 일부분의 소비자를 만족시켜주는 데 그칠 것이다.
Ⅲ. 시니어 소비 시장 육성을 위한 기업의 과제
시니어 대상 시장을 발전시키고 기존 수요의 감소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다수 시니어를 아우를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는 시니어 소비자에 대한 기업들의 명확한 이해도 부족하고 이들이 쓸 만한 제품이나 판매 전략도 미흡한 실정이다.
시니어 소비자의 불안한 구매력을 보완해 주고 더 많은 시니어의 니즈에 맞게 목표 고객이나 대상 사업을 대응해 나갈 때 시니어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
1. 시니어 시장의 다양성을 이해
시니어 시장은 연령과 신체적, 사회적 능력, 니즈 측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는 다양한 세분 시장으로 구성된 집단이다. 시니어 시장을 위한 전략의 첫걸음은 이들 다양한 시장을 이해하는 데 있다.
덩어리는 없다
복잡한 시니어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복잡한 시장을 나누어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시니어 시장을 말할 때 마치 이들 전부를 하나의 시장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평균 수명이 80세 이상인 오늘날 많게는 30년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는 연령대의 사람들을 동일한 시장으로 보는 것은 분명히 무리가 있다.
마치 10대부터 30대까지를 같은 집단으로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오히려 10대에 속하는 사람들이 60대에 속하는 사람들 끼리보다 서로 비슷한 점이 더 많을 수 있다. 십대 때는 한 해가 지나면 동년배가 모두 다 같이 한 학년씩 진급하는 비교적 서로 유사한 라이프 스테이지를 밟아 간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는 이후의 인생에서는 동년배와 동일한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 더 이상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삶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다른 욕구와 성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 정교한 세분화를 요구하면서 정작 시니어 시장에 대해서는 포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시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을 수 있다.
일본에서 전후 1946년에서 1949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를 일컫는 단카이 세대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커다란 덩어리’라는 의미이다. 이들 세대가 동일 기간의 다른 세대와 비교해 인구가 훨씬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세대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동일한 소비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사실 출생 시기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개별 소비자의 특성으로 이해해 보았을 때 이들은 덩어리가 아닌 다양한 세분 시장의 집합체이다. 덩어리 세대는 없는 것이다. 시니어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세분화 전략이 필요하다.
나이가 말해주지 못하는 것
시니어들은 실제 연령과 인지 연령의 차이가 다른 세대보다 크다. 시니어 계층에 대한 각종 조사들은 많은 시니어들이 실제 연령보다 스스로를 10~15세 정도 어리게 인지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그래서 이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나이는 효과적인 분류 기준이 되지 못한다.
더욱이 과거의 60대와 오늘날의 60대가 다르듯이 연령대별 특징 또한 끊임없이 진화하기 때문에 시니어 시장에 대한 이해는 일반 트렌드와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되어야 한다.
1997년 시세이도(Shiseido)는 ‘아름다운 50대가 증가하면 일본은 변할 것이다.”라는 광고 카피를 내보냈다가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직접적인 나이를 강조하는 것은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금기시 되는 일이다. 스스로를 그 만큼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4년 고세(KOSE)의 스킨케어 제품은 제품 포장에 버젓이 50이라는 숫자를 표기하고도 성공했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지금의 50대는 과거의 50대와 달리 스스로의 연령에 대해 보다 긍정적으로 자각하는 세대라는 것이다.
이들은 50이라는 숫자에 거부감을 느끼기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지 않는 젊은 사람들 용 제품보다 자신들을 위한 전용 상품을 선호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한 가지 가능한 해석은 예전보다 더 많은 고령자들이 미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50세라는 연령에 거부감이 없는 더 많은 60대, 70대 고객들이 시장에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60~70대 시니어들에게 50대는 여전히 지향하고 싶은 모습일 수 있다. 오히려 지나치게 젊은 모델들을 기용하고 있는 브랜드는 자신들을 위한 제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최근 유명 화장품 브랜드들이 ‘곱게 늙은’ 아줌마 배우들을 기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시니어 시장은 호적 등본상의 나이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에 따른 특징도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시장이다. 이 당연한 진리가 유달리 시니어 시장에서만은 간과되어 왔기에 앞으로는 기업들이 새로운 고령자의 이미지를 이해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이 되어보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처럼 니즈도 다양하고 인지 연령과 실제 연령의 차이가 큰 시니어들의 솔직한 본심을 알아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조사 전문가들은 시니어들은 나이가 들었다는 것, 그로 인해 불편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므로 웬만한 불편은 잘 표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시니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질문·답변식의 조사 방법보다는 그들의 행동을 오랜 시간 동안 관찰하거나 우주인이 진공 상태에서 적응 훈련을 하듯 그들의 현실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시니어들을 위한 다양한 생활 용품들을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미국의 ‘골드 바이올린(Gold Violin)’이라는 인터넷 쇼핑몰은 시니어 비즈니스의 성공 사례로 종종 꼽힌다. 이 업체의 주요한 경쟁력 중 하나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차별화된 제품 구색인데 이를 위해 고객의 니즈 파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아웃소싱하는 콜센터 업무도 골드 바이올린은 직접 운영을 고집한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획득한 정보가 마케팅과 머천다이징의 핵심 요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인근 은퇴자 커뮤니티의 입주자들을 비공식적인 포커스 그룹으로 조직하고 이들의 의견을 참고한다. 설문식의 시장조사만으로는 시니어들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이처럼 지속적이고 직접적인 접촉의 수단을 갖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라는 영화를 보면 나이 든 주인공이 여전히 멋진 스포츠카를 운전하고 싶어 고집을 피우다 사고가 나는 내용이 나온다. 고령 운전자들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미국이나 일본의 자동차 업체들은 일찌감치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증후군’이라는 고령 운전자들의 문제점에 주목하고 이들의 신체 기능을 보완해 줄 기능 개발에 연구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가운데 포드(Ford) 자동차의 엔지니어들은 조금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시니어들의 불편함을 이해하려고 했다. 자체 제작한 옷과 안경을 쓰고 시니어들의 몸의 움직임이나 시력, 색채 인식의 변화를 몸으로 체험하면서 기존의 자동차를 사용하는 데 이들이 겪을 어려움을 파악해 내려고 한 것이다.
마치 우주복처럼 보이는 포드의 ‘Third Age Suit’는 고령자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니즈를 연구하기 위해 이후에도 많은 병원과 연구 기관에서 활용되고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족의 하나인 체로키족의 속담에 ‘누군가를 제대로 알려면 그 사람의 신을 신고 몇 달을 걸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시니어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시니어처럼 되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