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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백수’ , ‘신이 내린 직장’
씁쓸한 신조어 봇물
기사입력 :
취업난이 지속되고 직장 내 생존 경쟁이 이어지면서 작년 하반기에도 이 같은 세태를 반영한 갖가지 신조어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한 취업포털사이트에서는 8일 2006년 하반기 취업시장에서 새로 등장하거나 유행했던 신조어를 발표했다.


취업시장을 살펴보면 최대 화두로 고용 안정성이 부각되면서 공기업에 대한 입사 선호도는 신조어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과거 군대 면제받은 사람을 ‘신의 아들’, 군 복무자를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칭했으나, 요즘에는 공기업 취업자를 ‘신의 아들’, 사기업 취업자를 ‘사람의 아들’, 백수를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부를 정도다.


특히 높은 급여와 안정성으로 ‘4대고시’라고 일컬어지는 국책은행은 ‘신이 내린 직장’을 넘어 ‘신도 다니고 싶어하는 직장’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해 10월 22일은 금융권 취업희망자들 사이에서 ‘A매치 데이’였다.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등 7개 국책은행이 한꺼번에 신입사원 공채시험을 치러 수능시험을 방불케 했다.


과열된 ‘공시족병’(많은 젊은이들이 안정된 직장을 찾아 공무원 시험 준비에 몰리는 현상)은 ‘공시백수’라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낳았다. 공무원 시험 불합격자들에게 남겨진 것은 생활비와 학원수강료 등 1~2천만원 가량의 갚아야 할 빚. 설상가상으로 이들은 다른 사기업 취업준비생들보다 나이가 많고, 기업 인사담당자에게 ‘언제든 공부하겠다고 그만둘 사람’이란 선입견을 줘 취업이 쉽지만은 않은 실정이다.


작년 하반기에는 아르바이트 직종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반영한 신조어도 많이 등장했다. 법정 최저 임금인 시급 3,1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난한 알바’가 있는 반면, 소비자 품평회 아르바이트처럼 시간당 보수가 2만5000원이 넘는 ‘귀족알바’도 눈길을 끌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새로운 인맥을 구축해가는 ‘취업품앗이’도 유행했다. 취업품앗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아가 면접스터디, 생활스터디, 밥터디(밥+study) 등 오프라인 스터디 모임으로 확대됐다. 최근에는 합숙면접이 증가하면서 함께 고생했던 면접자들끼리 새로운 인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새로운 트랜드도 생겨났다. 합격자로부터 조언을 구할 수 있고, 목표 기업이 비슷하기 때문에 좋은 정보를 교류할 수 있어 유용하다는 반응이다.


군인들 사이에서도 취업준비 열풍이 불었다. 군 복무 기간 동안 토익시험을 치르고 한자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틈틈이 취업 준비를 하는 ‘실속파 군인’들도 늘어났다.


암울한 취업시장에 희망을 담은 신조어도 등장했다. 작년 상반기에 유행한 이구백(이십대의 90%가 백수)과 십장생(10대들도 장차 백수가 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에 대조되는 ‘이백회’(20대 구직자 100%가 회사원)와 ‘구마선’(구직자는 마음에 드는 일을 선택할 수 있다) 같은 긍정적인 바람을 나타내는 신조어가 선보이기도 했다.


대학가에서의 취업열풍도 거세기만 했다.

작년 하반기 대학의 유일신(唯一神)은 ‘학문’이 아니라 ‘취업’이었다. 대학 내 낭만이 사라지고, 대학이 `취업준비학원`으로 전략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학 내에서 ‘과외받는 대학생’도 많아졌다. 특히 학원수강보다는 저렴한 비용으로 선배나 동료들에게 과외 받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과외 종류도 ‘취업과외’와 ‘전공과외’ ‘컴퓨터과외’, ‘외국어과외’ 등으로 다양했다.


대입 대비 고3참고서는 취업준비생들의 취업 대비 ‘대4참고서’로 바뀌었다. 기업의 인적성검사와 한국어능력시험 등의 유형이 수능문제와 닮아 취업 준비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대학가에는 수능 대비 참고서를 구입해서 공부하거나 교육방송을 챙겨보는 대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작년 하반기에는 ‘캠퍼스 모라토리엄족’이 더욱 증가했다. 이들은 ‘NG족’(No Graduation)으로 불리기도 했다. 취업이 될 때까지 졸업을 늦추는 학생들 때문에 대학가에는 ‘대5생’과 ‘대6생’은 물론 ‘대7생’, ‘대8생’ 등도 생겨났다.


‘3대 입시 클러스터’란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고교 때는 대치동 입시학원가, 대학시절에는 신림동 고시촌, 졸업 뒤엔 노량진 공무원 학원가라는 ‘3대 입시 클러스터’가 요즘의 현실 속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직장 내에는 샐러던트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점심시간족’(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 문화생활, 공부 등 자기개발을 하는 직장인)과 ‘새벽닭족’(남들이 아직 깨지 않은 이른 새벽에 활동하는 무리)이 많이 늘었다. 당장 눈앞의 이직보다는 자신의 전문성을 높이고 경력을 꼼꼼히 관리해서 몇 년 후 이직하겠다는 ‘직테크족’들도 증가했다.


취업난 속에서도 직장인들 사이에는 ‘일하기싫어병’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특히 직장인의 애환을 노래한 ‘회사가기싫어송’은 작년 하반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감자도리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만든 동영상에는 출퇴근 전쟁에 시달리며 직장상사의 눈치를 보고 점심메뉴를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코믹하게 담겨 있다. 투덜거리는 코믹한 노래 가사가 직장인의 공감을 샀다.


이외에도 쌍춘년이었던 지난 해 경조사가 잦아짐에 따라 ‘월급고개’(지난달 월급은 거의 떨어지고 다음 달 월급은 아직 나올 때가 되지 않아 경제 사정이 어려운 때를 ‘보릿고개’에 빗대어 이르는 말)를 걱정하는 직장인이 여느 때보다 많아졌다.


또 작년 하반기 사회문화적 트렌드를 가장 잘 반영한 신조어 중 하나는 바로 ‘골드미스’(Gold Miss)다. 30대 초반 싱글 여성들 가운데 학력이 뛰어나고 재력도 있는, 능력있는 여성을 새롭게 지칭하는 용어다. 골드미스가 유행하면서 이에 버금가는 ‘실버미스’라는 유행어도 함께 생겨났다.


20대 직장 여성들 사이에는 칙릿 열풍이 강하게 불었다. ‘칙릿’은 젊은 여성을 뜻하는 영어 속어인 칙(Chick)과 문학(literature)을 뜻하는 단어를 합성한 신조어로, 20대 여성의 일과 사랑을 다룬 영미권 소설을 일컫는다.


‘블랙칼라 워커’(Black Collar Worker)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블랙칼라 워커는 기존의 화이트나 블루칼라로 분류하던 것에서 나아가 보다 지적이고 창의적인 전문직 종사자를 칭하는 말이다.


자녀들을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들은 경제사정에 따라 ‘펭귄아빠’와 ‘독수리아빠’로 구분돼 불려졌다. 형편이 좋아서 언제든 외국으로 가족을 보러 갈 수 있는 사람은 ‘독수리 아빠’, 사정에 따라 가끔은 가족을 보러 갈 수 있는 중산층 아빠는 ‘기러기 아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외로워도 국내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아빠는 ‘펭귄아빠’에 속한다.


취업포탈사이트 커리어 김기태 대표는 “취업난이 장기화되면서 작년 하반기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암울한 취업신조어가 등장, 유행했다”며 “특히 취업준비생들 뿐만 아니라 직장인들 사이에서 고용의 안정성이 최대 화두가 되면서 관련 현상을 반영한 신조어가 많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이용암 기자(phh1977@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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