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대입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우리 사회가 `경쟁사회`라고 하지만 수능시험만큼 경쟁적인 것이 또 있을까? 전국의 거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한날한시에 시험을 치르고, 한 문제 더 맞고 틀리고에 따라 갈 수 있는 대학들이 거침없이 바뀐다.
그러니 신종플루 탓에 여느 해보다 더 긴장된 시간을 보낸 수험생들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논쟁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인 시장 혹은 경쟁 메커니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법하다.
우리 사회의 한쪽에는 경쟁 메커니즘만이 생산성과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경쟁이 별로 없는 사회영역이 눈에 띄면 어디에나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론 스스로를 그런 경쟁 속에 집어넣으려는 생각은 없으니, 그런 의미에선 이들은 위선적이거나 악당이다.
다른 편에는 경쟁이 도입되는 경우에는 어디서나 신자유주의의 냄새를 맡으며 단연코 투쟁할 것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위선적이지 않고 도덕적일 경우도 많지만, 왜 경쟁 도입이 대중에게 설득력을 갖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둔하다.
경쟁과잉과 경쟁과소의 이중구조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성향과도 연계되어 있을 경쟁 애호나 경쟁 혐오 같은 성향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이 성향이 정보 수집을 왜곡함으로써 도처에서 경쟁의 과잉이나 과소만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 사회의 핵심문제는 경쟁의 과잉이나 과소가 아니라 과잉과 과소의 병존 또는 경쟁의 이중구조에 있다.
재벌기업은 과소경쟁 속에 있지만 중소기업은 과잉경쟁 속에 있고, 대학교수는 과소경쟁 속에서 살지만 시간강사는 과잉경쟁 속에 있다. 공무원이나 공사의 직원들은 과소경쟁 속에 살지만 공무원 임용고시 준비자는 과잉경쟁 속에 있으며, 자동차 회사의 정규직은 과소경쟁 속에 있지만 비정규직은 과잉경쟁 속에 있다.
교사는 과소경쟁 속에 있지만 기간제 교사나 교원임용고시생은 과잉경쟁 속에 있다. 이런 대조가 무척이나 길게 열거될 수 있음을 우리 사회 성원들은 잘 알고 있다.
더 고약한 것은 경쟁과소가 과잉보상과 과잉권력에 그리고 경쟁과잉이 과소보상과 과소권력에 연계되어 있으며, 전자의 과잉보상은 상당정도 과잉경쟁 영역에 대한 약탈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수능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을 비롯하여 각종 고시나 취업에서 경쟁이 극심한 것은 경쟁의 이중구조 또는 과잉경쟁-과소경쟁의 공존 사이의 약탈적 관계 때문이다. 과소경쟁 영역으로 진입하기 위한 2차적 경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2차적 경쟁은 가족의 미래를 건 투자이기에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
경쟁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담합
이런 경쟁의 이중구조 속에서 과잉경쟁 속에 있는 다수 대중은 어떤 생각을 할까? 당연히 과소경쟁 영역의 진입장벽이 낮아져야 하고 과소경쟁 영역 자체에 경쟁 메커니즘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 자신이 과소경쟁 영역의 지대 추구자들에 의해서 덜 착취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시장에서 더 값싸고 질 좋은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진입장벽의 완화와 경쟁 메커니즘의 도입이라는 대중의 요구에 대해 상류층 혹은 보수 세력들은 늘 자신을 제외한 그 아래 부분에 대해 경쟁 도입을 주장하는 동시에 자신의 영역은 자율과 자유의 이름으로 보호하고자 한다. 다른 한편 진보진영은 공공성이나 반신자유주의를 내걸고 경쟁 메커니즘의 도입을 한사코 반대한다. 하지만 대중은 그 둘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유착을 감지하고 있다.
사회적 연대감과 공정한 경쟁규칙을
지난 10여년에 걸친 비정규직화를 생각해보라.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의 비효율성을 말하며 경쟁과 시장 메커니즘 도입을 주장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에 대한 개혁의제를 비껴가는 동시에 도전집단을 개혁대상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공격에 대해 조직된 노동자들은 경쟁과 시장 메커니즘의 도입에 대한 반대를 반신자유주의라는 명분 속에 결집했고, 그 결과 조직된 노동자를 우회하는 비정규직화가 폭증했다.
이 패턴은 대기업과 대기업의 조직노동자들 사이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유사한 패턴으로 반복되었다. 이런 패턴을 거치며 과잉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보수와 진보 간의 유착에 다름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경쟁에 의한 효율성이나 반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전체 사회의 경쟁강도를 완화하는 동시에 경쟁의 이중구조를 혁파하는 공정한 경쟁규칙을 도입할 정치적 전망을 여는 것이다. 전자가 사회적 연대감에 기초한 것이라면, 후자는 공정과 정의에 연결된 것이다.
연대와 공정이 내적으로 연결된 정치적 전망에 의해서만 반신자유주의와 경쟁지상주의의 맹목적 대립이라는 협곡을 벗어날 수 있으며, 어디에 경쟁을 도입하고 어떤 경쟁을 완화해야 하는지를 가리는 지혜로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수능시험도 덜 고통스러워질 것이고 수능과는 전혀 다른 선발방식을 구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김종엽 / 1963년 경남 김해 출생. 현재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문화평론가. 계간『창작과비평』 편집위원.
저서로 『웃음의 해석학』(1994)와『연대와 열광』(창작과비평사 1998), 역서로『토템과 터부』(1995), 편서로 『87년체제론』(2009)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