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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두바이의 몰락과 '성장친화형 진보'
사회통합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략
기사입력 :

두바이가 몰락했다. 세계 경제위기의 유탄을 맞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위험성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선진국에서 두바이식의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자는 주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그들은 사회통합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방법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이른바 유럽의 리스본 전략이나 미국의 해밀턴 프로젝트 등이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국내에서도 `사람에 투자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대규모 개발 사업에 가려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국내에는 성장을 위해 두바이식 개발과 규제완화가 필수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두바이식 개발은 경제이론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내의 성장담론은 세계적 추세와 괴리된 지 오래다.


필자는 답답한 심정에 오래전부터 `두바이 대 리스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왔다. 토목 기반의 개발이 단기간의 외형적 발전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장점이 있지만 환경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없음을 비판하고, 이에 견주어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인적 자원의 투자를 강조하는 것이 요지였다.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을 넘어


마침 미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성장친화형 진보》(The Pro-Growth Progressive)라는 책을 최근 번역하면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한 전략의 특징을 소개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내용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성장친화형 진보`는 바로 시대가 요구하는 의제에 새로운 대답을 제시한다.


성장친화형 진보의 특색은 진보가 오랫동안 추구해왔던 가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성장 대 분배·복지`라는 기존의 이분법적 틀로는 효율적인 분배와 복지를 통해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성장친화형 진보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고착된 이분법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시대에 대처하는 새로운 사고를 만날 수 있다.


기존의 진보적 정책도 성장을 촉진해왔다. 미국에서도 진보정부 집권기의 성장률이 보수정부의 그것을 앞선다고 일반적으로 관측된다.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은 사회통합에 필수적일 뿐 아니라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모험적 사업에 뛰어드는 동기를 유발한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노동자의 경우 정리해고를 수용할 여유가 더 많고, 복지제도가 발전하면 모험적 사업의 위험부담을 줄여 기업가정신과 혁신을 북돋운다. 그러나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에 갇힌 우리 사회의 다수에게 이러한 성장 촉진형 분배는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이기에 성장친화형 진보가 널리 이해되기는 쉽지 않다.


세계화시대, 새로운 진보적 전략


성장친화형 진보는 세계화와 지식정보혁명이라는 환경에서 진보적 성장대안을 제시한다. 세계화는 폭발적인 기술발전을 일으키고 있다. 한 국가 내에서 승자산업과 패자산업이 확연하게 갈리는 한편, 기술발전에 따라 숙련노동자와 비숙련노동자의 임금격차도 커지고 있다.


두바이식 개발에 몰두하는 한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는 것은 필연적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사회통합은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다.


성장친화형 진보는 이러한 도전에 응전하는 전략이다. 경제이론에 따르면 세계화시대 각국의 경쟁력은 인적자본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경제 전략가들은 새로운 자원배분을 통해 인적자본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효율적 정책을 추구해왔고, 그 일련의 작업이 성장친화형 진보로 귀속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실업보험 등 다양한 지원책이 입안·시행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수동적 지원에서 벗어나 노동자 숙련도를 높일 새로운 방식이 세계 각국에서 시도되고 있다. 특히 숙련도를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 직장 내 훈련임을 감안하면 기업을 지원하여 고용을 늘리는 정책이 곧 훌륭한 기술훈련임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이 세계화를 대처하는 방법이라는 정·재계의 주장은 중국이라는 대규모 개발도상국이 등장하면서 근거를 상실했다. 이제는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숙련도 향상이 각국의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등장하는 중이다.


맞춤형 선제적 지원정책으로 나아갈 때


성장친화형 진보는 선제적 지원정책이라는 특성이 두드러진다. 다양한 복지정책도 효율성 측면에서 우열을 가릴 수 있다. 과거에는 무조건적인 정부지원에 대한 거부감으로 주로 지원정책의 입안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제는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문과 계층을 위한 선제적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유무역협정으로 피해가 발생한 이후에 지원하는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정부가 사용가능한 통계와 정보를 사용하여 사전적으로 특정 부문이나 계층을 지원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효율적일 때가 많다.


복지의 수혜계층에 대해서도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빈곤층 자녀가 교육을 받지 못해 빈곤을 대물림하는 상황에서 정부지원이 필요하다면, 선제적으로 보육과 교육에 대한 지원비를 늘리는 것이 복지지출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취약계층의 일생주기에서 어떤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성장친화형 진보는 진보적 정책의 효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요구한다.


효율적 복지로 성장-통합의 양 날개를


한정된 복지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타당하지만, `복지병(病)`에 대한 우려를 털어버리고 보수진영의 저항을 줄이면서 정책을 입안할 수 있는 지혜로운 전략이기도 하다. 가령 근로빈곤층을 지원하려고 최저임금을 무조건 높인다면 기업에 부담을 주어 실업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세계화시대에 이 같은 정책은 기업의 해외이전을 불러올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를테면 근로장려세제는 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노동자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적절한 최저임금과 근로장려세제를 합리적으로 결합하면 기업과 노동자 양측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처럼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펴되 복지수혜자에게도 책임을 부과하고 특히 근로빈곤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여 근로의욕을 장려하는 것은 사회통합을 촉진하고 복지정책을 지속가능하게 만든다. 성장친화형 진보와 맥을 같이하는 제3의 길 논자들이 ‘기회와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다.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홍종학 / 경원대 교수, 경제학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음. 현재 경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 저서로 『IMF 사태, 원인을 알면 대책이 보인다』『한국은 망한다』 『한국경제 새판짜기』(공저), 역서로 『성장친화형 진보』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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