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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의료민영화, 국민건강을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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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6일, 민주당과 민주노총 등 79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이 참여하는 `의료민영화 저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가 출범했다. 의료민영화 저지운동이 본격화된 것이다.


그 반대편에서는 범정부적 차원에서 의료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의료민영화가 간단없이 추진되고 있다. 같은 해 12월에는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가족부가 공동으로 한국개발연구원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발주한 영리법인 병원 도입에 관한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기획재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한국개발연구원이 영리법인 병원의 도입 추진을 주장한 반면, 복지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그로 인한 부작용을 강조함으로써 사실상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이렇듯 부처간 이견이 드러나자 대통령이 나서서 여론수렴과 속도조절을 지시했다. 하지만 영리병원 추진 중단이 아니라 단지 속도조절을 하겠다는 것으로, 이 문제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청와대와 관련 정부부처들을 망라하여 현 정부는 `의료산업화` 또는 `의료선진화`를 한목소리로 주창하면서도 이것이 `의료민영화`는 아니라고 강변한다.


부실한 공공의료 잠식할 영리병원 도입


이 지점에서 의료민영화란 무엇인지 분명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의료민영화는 곧 국가의료제도의 민영화를 의미하는데, 국가의료제도는 크게 의료공급체계와 의료재정체계로 구성된다.


유럽 선진국들에 견주어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사정을 살펴보면 현 정부의 민영화 정책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의료공급 면에서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들에서는 공공병원의 수가 민간병원의 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아 60~95%에 이른다.


우리나라 공공병원의 비율 7%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의료재정 면에서도 그들은 의료보장제도의 보장성 수준(실제로 발생한 총 의료비 중에서 국가나 건강보험제도가 보장해주는 비율)이 85%를 넘어 우리나라의 62%보다 20%포인트 이상 높다.


물론 유럽 선진국들에서도 영리의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국가의료제도는 공급과 재정 모두에서 공공부문의 압도적 우위를 지킴으로써 의료이용의 형평성을 충분히 달성한 가운데, 미시적 효율성의 제고를 위해 일부 영리의료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리부분은 국가의료제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할뿐더러 의료제도의 공공성에 미치는 악영향도 거의 없다. 이처럼 공공의료가 견고한 바탕에서 부분적으로 영리적 요소를 들여오는 것은 국가의료제도의 민영화와 거리가 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공공병원이 7%에 불과한 조건에서 영리법인 병원이 허용되면 대규모 자본이 투자된 주식회사 병원을 정점으로 하는 병원의 서열화가 일어날 것이다. 또한 이들 최고급 영리병원의 값비싼 의료비와 함께 기존의 비영리병원들도 돈벌이 중심의 非급여진료를 확대함으로써 국민의료비의 폭등을 불러올 것이다. 결국 의료이용의 계층화와 양극화의 심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국민 건강을 민간보험사의 손에?


여기에 경제부처와 보험업계가 집요하게 노력하고 소망해온 `실손(實損)형`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가 제도적으로 연계된다면 먼저 영리법인 병원부터 민간보험회사와 직접적인 계약관계를 맺게 되고 단계적으로 비영리병원으로까지 확대될 것이다. 그에 따라 의료재정체계의 중심에는 민간의료보험이 놓이고, 국민건강보험은 변두리로 밀려나서 재정적으로 더욱 위축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의료서비스의 질과 내용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했는지 또한 얼마나 값비싼 보험에 들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심각한 양극화가 나타날 것이다.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서민들은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과 질 낮은 의료서비스에 피눈물을 흘리고,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의 이중부담에 허리가 휘게 될 중산층의 불만과 불안은 높아질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유형의 의료제도를 지금 미국에서 보고 있다. 지난 연말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해 무보험자들에게도 보험혜택을 받을 기회가 열렸지만 그 제도의 본질은 그대로다. 영리법인 병원의 추진과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는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민영화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즉 MB정부의 의료정책은 `의료민영화`가 틀림없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의료민영화 관련 법률로는 비영리법인 병원의 의료채권 발행을 허용하는 의료채권법, 비영리법인 병원의 합병 허용과 부대사업으로 병원경영지원회사(MSO)의 설립 허용을 담고 있는 의료법 개정안, 제주도에 영리법인 병원의 설립을 허용하는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 등이 있다. 각각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


병원의 이윤추구 부추기는 민영화 법안들


첫째, `의료채권 발행에 관한 법률안`은 비영리법인 병원의 의료채권 발행을 허용함으로써 투자자금의 확보를 도와 비영리병원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정부가 2008년 10월 21일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하지만 채권도 양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식과 성격이 비슷하므로 결국 자본을 의료부문에 끌어들이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둘째, 의료법 개정안은 정부가 2009년 7월 29일 의료법인의 부대사업에 병원경영지원사업을 추가하고 의료법인의 해산사유에 합병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포함하여 입법예고한 것이다.


관련 시민단체들과 야 4당은 비영리병원의 부대사업인 병원경영지원회사에 외부투자자들이 투자를 하고 이윤을 회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 이 법안의 핵심이므로 사실상 영리병원 허용과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비영리법인 병원의 인수합병이 허용되면 독점의 강화와 함께 영리추구 행태가 더욱 심해진다는 주장이다.


셋째,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은 제주도에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의 설립을 허용하는 것이다. 지난 연말 총리실의 허용 결정이 났으므로 새해 임시국회에서 해당 법안이 심의될 것인 데, 그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제주도에 영리법인 병원이 허용되면 전국의 경제자유구역들에도 마찬가지로 허용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전국적인 의료민영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대 사회공공성의 한판 승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민영화의 본질은 의료를 둘러싸고 금융자본과 시민사회가 벌이는 거대한 승부다. 의료는 대표적인 사회써비스로서 모든 국민이 일상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공공적 영역이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선진국들이 그렇게 해오고 있다. 그런데 금융자본은 의료를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삼으려 들고 경제부처와 민간보험사들이 앞장서고 있다. 제주도가 뚫리면 다음은 전국 각지의 경제자유구역들 차례다.


정부는 더 서둘러 아예 전국적으로 영리병원을 허용하려는 기세다. 지난 연말 한국개발연구원이 그 논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 논리는 실패로 드러난 지난 부시 행정부 8년의 시장주의 의료정책을 추종하는 것으로 고려의 가치가 없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 거대한 승부, `자본-시장 대 사회공공성`의 싸움에서 우리는 이길 수 있을까? 그 여부는 오로지 국민의 손에 달렸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는 일을 끝까지 밀어붙일 정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이상이 /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의학박사, 예방의학 전문의.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의료관리학교수로 재직하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겸 운영위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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