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9월 1일 故노무현 대한민국 16대 전 대통령 태어난 날
본관은 광주(光州). 1946년 8월 6일(양력 9월 1일)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창초등학교와 진영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업 성적이 우수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진학을 포기하고 부산상업고등학교에 진학, 1966년 졸업하였다.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어망 제조업체에 잠시 다니다가 그만두고 막노동판에서 일하면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1968년 육군에 입대하였다. 1971년 만기제대한 뒤 다시 사법시험을 준비하였으며, 1973년 1월 동향인 권양숙(權良淑)과 결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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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네 번째 도전 끝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으며, 19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었으나 이듬해 5월 사직하고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이후 한동안 안정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다가 1981년 제5공화국 정권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釜林事件)의 변론을 맡은 것을 계기로 학생·노동자 등의 인권사건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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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생을 일관되게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청산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사회 전반에 만연한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데도 공헌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미(對美) 외교에서는 `대등한 관계`를 추구하였으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북한과 긴장관계를 해소하는 데 힘썼다. 대통령 임기 말인 2007년 10월 4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분단 후 처음으로 걸어서 판문점을 통과하여 평양을 방문,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 정상회담을 열고 `남북관계 발전 및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을 발표하였다.
2008년 2월 24일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고향인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의 봉하마을로 귀향하여 오리농사, 마을청소에 참여하는 등 평범한 전원생활을 하는 한편,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였고, 건전한 토론문화를 조성한다는 취지로 인터넷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을 개설하여 세상과 소통하였다.
그러나 퇴임할 때 대통령 재임 시의 기록물 복사본을 가지고 귀향한 것과 관련하여 `국가기록물 무단유출`에 대한 수사를 시작으로 검찰에 의하여 측근과 친형, 부인·아들·딸 등이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청렴했던 `도덕성`에 상처를 입게 되었다.
2009년 4월 30일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으로는 세 번째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기에 이르렀으며, 같은 해 5월 23일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는 내용의 유서를 컴퓨터에 남기고 사저 뒷산의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여 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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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자전적 일대기인 《여보, 나 좀 도와줘》(1994)를 비롯하여 《노무현이 만난 링컨》(2001),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2002) 등이 있다. 2004년 영국 왕실로부터 최고훈장인 바스 대십자훈장(Grand Cross of the Order of the Bath;GCB)을, 2007년 카타르 정부로부터 독립대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