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민주화 운동의 대부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군사독재 시절 당한 혹독한 고문 후유증으로 얻은 병마와의 투병 끝에 오늘 오전 5시 30분경 예순 넷의 생을 마감했다.
김 상임고문은 수년째 파킨슨병을 앓아온 데 이어 지난달 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2차 합병증이 겹치면서 패혈증으로 한 달 만에 숨을 거뒀다.
재야에서 30년 가까운 세월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온 김 상임고문은 혹독한 고문 후유증으로 얻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까지 야권 통합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던 김 고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독재에 맞서 학생 운동에 뛰어들어 졸업 1년 전인 1971년,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과 1974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수배를 받아 피신 생활을 이어갔다.
특히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민청련 초대 의장으로 활동하다 구속돼 살인적인 고문을 받기도 했다.
30년 가까이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을 해온 김 고문은 1995년, 민주당에 입당해 정계에 진출해 서울 도봉갑 지역구에서 15대부터 3선을 지내고, 노무현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유력한 정치인으로 주목받으면서도 김대중 정권 시절 동교동계 해체를 가장 먼저 주장했고,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노 대통령에게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며 원칙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김 고문은 최근까지도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며 민주당 내 진보개혁모임의 고문을 맡아 야권 대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세상과의 소통을 계속해 왔다.
고뇌하고 회의하는 민주화 투사, 유난히 희망이란 단어를 자주 거론한 정치인, 평생을 민주화 운동을 위해 헌신한 김 고문은 결국 고문의 후유증으로 얻은 병마와 싸우다 예순 넷의 삶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