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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빈의 삶 실천한 '영혼의 스승' 법정 스님의 다비식
  • 고성인터넷뉴스2010-03-15 오전 10:44:41

`무소유`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한 법정스님이 순천 송광사 전통다비장에서 거센 불길 속에 마지막 길을 자연으로 돌아갔다.

 


오전 10시 송광사 문수전을 출발한 법정스님의 법구는 1시간여에 걸쳐 송광사 입구 가파른 조계산 산비탈에 자리 잡은 전통다비장에 도착했다.

 

형형색색 만장도, 꽃상여도 없는 행렬이었다. `비구 법정`이라고만 쓴 위패와 영정에 이어 학인 스님들이 법정스님의 법구를 한 발씩 다비장을 향해 옮겨갔다.  

 

 


법정스님을 배웅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추모객들은 험한 비탈길에서 연방 미끄러지고 나뭇가지에 긁히면서도 염불과 독경을 하면서 법구를 따랐다. 노스님들도 젊은 스님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험한 산길을 올랐다.


법구가 참나무와 장작더미로 이뤄진 인화대에 오르고, 그 위로 참나무 장작이 계속 더해지자 지켜보던 추모객들은 오열하며 눈을 감았다. 이어 기다란 대나무로 만든 거화(炬火)봉을 든 스님 9명이 인화대 주변에 둘러섰다.

 


굵직한 참나무 장작 위로 조계종의 어른스님들과 상주격인 법정스님의 상좌들이 일제히 거화봉으로 점화하는 순간, 장작 위에서는 시뻘건 불길과 함께 연기가 치솟았고 거화봉은 불길에 `탁, 탁`하는 큰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이 모습을 지켜보던 불자들은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반야심경, 신묘장구대다라니경 등을 염송하며 눈물을 흘렸다.

 


인화대 주변에서 무념무상의 표정을 유지하던 스님들도 그 순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무소유`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한 법정스님이 거센 불길 속에 마지막 길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11시41분 마침내 거화가 이뤄진 이후 곧바로 세찬 불길과 함께 연기가 치솟았고, 추모객의 염불 소리는 더욱 커졌다. 바람이 거세지면서 연기는 소나무 숲 사이로 하늘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치솟았다.

 


거화 의식을 마친 후 길상사 주지 덕현스님은 대중을 향해 "스님을 잘못 모시고 이렇게 보내드려서 죄송하다. 스님은 지금 불길 속에 계시지만 스님의 가르침은 연꽃처럼 불길 속에서 다시 피어날 것이다"라고 말하며, 추모객들에게 `화중생연(火中生蓮)`을 같이 외치자고 말했다.


`화중생연`을 외친 후에도 추모객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스님의 법구는 14일 오전 10시까지 약 24시간 동안 불길 속에 몸을 맡기게 된다.

 


다비준비위원회는 불길이 꺼진 후에는 곧바로 습골해 법정스님의 상좌들에게 넘긴다. 법정스님의 유지에 따라 사리도 수습하지 않고 타다 남은 유골만 수습하는 의식이다.

 


 ‘무소유’의 지혜를 일러 주고, 청빈의 도와 맑고 향기로운 삶을 몸소 실천하던 法頂 스님은 1932년 10월 8일 전남 해남군에서 출생, 근대 고승 중 한 분 인 효봉스님을 은사로 1954년 출가,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고, 해인사에서 대교과를 수료했다.


法頂스님께서는 입적하시기 전날 밤에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내 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하여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라는 말씀을 남겼다.


法頂스님께서는 그 동안 「무소유」, 「일기일회」등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길을 제시하는 많은 저서를 남겼고, 그 동안 풀어 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고 하여 스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주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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