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성군의회 최을석 의장
- 고성군 지방자치의 미래를 위한 고언(苦言)
돌이켜보면 참으로 아득하고도 가슴 벅찬 시간이었습니다. 젊은 날 농협의 일원으로 문턱이 닳도록 현장을 누비며 고성 구석구석의 삶을 배우고 채웠던 30년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군민 여러분의 과분한 선택을 받아 고성군의회 개원 이래 최초의 5선 의원이라는 명예를 안고, 고성의 내일을 위해 함께 숨 쉬어온 의정 20년의 세월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고성을 향해 온전히 바쳐온 이 50여 년의 세월은 제 인생의 전부이자, 가장 찬란했던 삶의 기록이었습니다.
첫 의회 등원길에 나섰던 날이 마치 엊그제 같은데, 그날의 설렘과 무거운 책임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부족함이 많았기에 오직 배운다는 낮은 자세로 군민의 뜻을 받들고자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군민의 고단한 삶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을까? 지새웠던 수많은 밤들,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군민 여러분과 함께 울고 웃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제 모든 걸음의 중심에는 늘 군민 여러분이 계셨고, 의원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매 순간이 제 생애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물론 그 여정이 늘 평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오직 군민을 위한 길이라 믿고 의욕적으로 앞만 보며 달렸지만, 때로는 제 부족함으로 인해 군민 여러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보람찼던 기억 뒤편으로 군민 여러분께 다하지 못한 송구함과 아쉬움이 더 크게 밀려오는 것은, 떠남을 앞둔 이의 어쩔 수 없는 솔직한 심정인가 봅니다. 미처 채우지 못한 모든 아쉬움과 책임 역시 온전히 제 몫이라 생각합니다. 부족한 저였지만, 지난 20년 동안 군민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이제 한 사람의 군민이자 ‘자연인’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그동안 온몸으로 부딪치며 다듬어온 우리 지방자치의 냉혹한 현실과 미래를 위한 몇 가지 간절한 고언(苦言)을 군민과 공직자 여러분 앞에 남기고자 합니다.
첫째, 명목상의 ‘인사권 독립’을 넘어 온전한 자치분권의 완성이 시급합니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어느덧 30년이 넘은 지금의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지방자치의 참된 의미를 체감하기 어려운 현실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지난 2022년 1월, 오랜 염원 끝에 지방의회 인사권이 독립되어 자체적인 인사계획 수립과 임용 절차를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은 마련되었으나, 실질적인 권한 행사에는 여전히 현실적인 제약이 따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정원 관리와 조직 운영 전반이 기존 집행부의 기준과 절차에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어, 의회의 자율성을 온전히 발휘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인사권 독립이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지 않고 지방의회가 온전한 자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사권과 더불어 조직 구성권과 예산 편성권까지 완전히 독립되는 진정한 의미의 ‘자치분권 2.0’이 반드시 완성되어야 합니다. 집행부는 더 이상 일방적인 행정 편의주의로 의회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행태를 지양하고, 진정한 자치 파트너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고성군의회를 바라보는 군민들의 구조적 인식 전환이 절실합니다.
오랜 세월 의정에 몸담으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여전히 많은 군민들께서 고성군의회를 군청(집행부)의 하부 기관이나 일종의 부속 단체 정도로 오해하고 계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거대한 예산과 방대한 조직을 움직이는 집행부의 행정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군민들께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데서 비롯된 구조적인 인식의 한계일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고성군의회는 군청의 지휘를 받는 기관이 결코 아닙니다. 군민 여러분께서 직접 선출한 의원들로 구성된 독립된 의사결정기관이며,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통해 지방권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축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견제와 균형에 있습니다. 의회와 집행부는 상하 관계나 종속적 관계가 아니라, 고성군이라는 마차를 끌고 나가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견제하고 균형을 잡아야 하는 동반자입니다.
한쪽 바퀴가 너무 비대해지거나 다른 한쪽 바퀴가 제 기능을 못 하면 마차는 제자리에서 겉돌거나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행정이 독주할 때 브레이크를 걸고, 군민의 목소리를 담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의회의 본령입니다.
의회가 집행부의 거대한 권력 앞에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군민만을 바라보며 소신껏 고유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은 군민 여러분의 신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군민 여러분께서 의회를 단순한 민원 해결 창구나 군청의 하부 조직이 아닌, 군민을 대신해 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독립된 대의기관으로 확실히 인식해 주시고, 의회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올바른 성원을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의회의 역할과 가치를 인정해 주시고 비판과 동시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실 때, 우리 고성군의 지방자치는 진정한 군민 주권의 시대로 단단하게 꽃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일부 NGO와 언론의 일방적이고 무분별한 ‘의회 악마화’ 프레임은 반드시 멈춰야 합니다.
일부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외유성’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앞세워 일방적인 비판을 퍼붓는 ‘공무국외출장(연수)’에 대해 감히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국외 연수는 결코 비난받아야 할 잘못이나 사죄해야 할 사안이 아닙니다. 마치 의원들을 죄인 취급하며 무조건적인 사과만을 요구하는 식의 태도는 공무국외출장의 본질을 왜곡하는 처사이자,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 우리 고성군이 직면한 인구 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물 안 개구리식 행정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합니다. 다른 지자체의 성공 사례는 물론, 해외의 선진 행정과 우수한 정책을 직접 보고 배워 고성 실정에 맞게 접목하는 국외 연수는 의원들에게 필수적인 경험이자 역량 강화 과정입니다.
심사 과정을 강화하고 보고서 검증이나 제도적 보완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고 내실을 다지면 될 일을, 무조건적인 비난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으로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버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 군의 발전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것이며 지역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만큼은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의회의 정당한 권리와 역할을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행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의회의 정당한 견제 기능을 정치적으로 왜곡하는 행태입니다. 행정절차 미이행과 군민 여론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특정 사업이나 예산안에 대해, 의회가 법이 부여한 심의·의결권을 바탕으로 제동을 걸고 바로잡으려 하는 것은 의회 본연의 의무이자 역할입니다.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군민의 혈세 낭비를 막으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견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쟁화하여 의회를 마치 ‘발목잡기 집단’이나 ‘이권 개입자’인 양 몰아가는 행위는 의회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매우 무책임한 처사입니다.
의회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집행부의 거수기 노릇을 할 때는 감시를 소홀히 한다고 지적하고, 막상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으려 의회 본연의 견제와 감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면 발목을 잡는다고 비판하는 것은 우리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안타까운 단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방적인 비방과 프레임은 의원들의 소신 있는 의정 활동을 위축시키고, 결국 고성군정의 발전과 군민의 이익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뿐입니다. 이제는 소모적인 비난의 시대를 끝내고, 무엇이 진정 고성군과 군민을 위한 길인지 함께 고민하며 건전한 비판과 생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성숙한 민주시민 사회의 면모를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 곧 민선 9기 신임 군수가 취임하고, 제10대 고성군의회가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게 됩니다.
새롭게 출범하는 민선 9기 고성군정은 의회를 감시자가 아닌 동반자로 존중하며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의회를 패싱하는 행정은 결국 군민의 외면을 받을 것입니다. 모쪼록 신임 군수와 공직자 여러분께서 군민과 긴밀히 상생하며 더욱 발전하고, 군민 모두의 삶에 희망과 행복을 더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제10대 고성군의회에 입성할 후배 의원들께서는 신임 의장을 중심으로 동료 의원들과 긴밀히 연대하고 뜻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정당과 정파, 개인의 영달을 과감히 내려놓고 오직 군민의 이익과 민생만을 의정의 나침반으로 삼아, 군민의 신뢰에 보답하는 품격 있는 의회를 만들어 주시기를 기대하며, 새로운 고성군의회의 앞날을 늘 응원하겠습니다.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 집행부와 의회는 고성군이라는 마차를 끌고 거친 자갈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 공동 운명체입니다. 서로 철저히 견제하되, 고성 발전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는 과감히 상생하고 협치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위기의 고성을 구하고, 당당한 고성의 미래 100년을 여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지방자치 최전선에서 보낸 지난 20년 동안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머리 숙여 보내주신 군민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과 과분한 사랑을 가슴 깊이 소중히 간직하며 떠납니다.
이제 평범한 군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서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자랑스러운 고성군의 발전과 군민 여러분의 가정에 늘 행복이 가득하기를 언제나 응원하며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군민 여러분,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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