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정리위원회 고성서 설명회 갖고 홍보활동 펼쳐

> 뉴스 > 고성뉴스

과거사정리위원회 고성서 설명회 갖고 홍보활동 펼쳐

한창식 기자  | 입력 2021-07-30 오전 11:22:35  | 수정 2021-07-30  | 관련기사 건

 

▲ 전수일 팀장의 설명을 경청하는 개천면 이장단

 

진실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전수일 대외협력팀장은 오늘 오전 개천면 이장회의가 끝나고 난 뒤 이장들을 상대로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과 관련한 협조요청과 홍보활동을 위해 간단한 설명회를 열고, 오후에는 고성 시장통 일대에서 정리위원회에서 만든 팜플렛을 시민들에게 나누어주며 거리 선전전에 나섰다.

 

▲ 심각하게 듣고있는 이장단

전수일 과거사정리위 대외협력팀장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100년 동안 이 땅에 국가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에 대한 진실 규명과 그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유가족들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 해 5월 30일 국회에서 국법으로 만든 기구임을 강조했다.


또 과거사정리위는 과거역사를 바로잡고 후손들에게는 제대로 된 역사를 물려줘야 하는 것으로 이 작업은 진실이 규명되는 날까지 계속되며, 정권에 의해 왔다갔다하는 기구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 설명하는 진실화해위원회 전수일 대외협력 팀장

전 팀장은, 경남 고성까지 과거사정리위 직원들이 내려온 이유를 설명하면서 지금부터 56년 前, 이곳 고성이 통영에서처럼 많은 민간인이 보도연맹 사건으로 경찰과 군인에 의해 희생당하고, 좌익 활동가와 인민군 퇴각 시기에 당한 사람들이 이 지역에서 900여명이 희생된 걸로 문헌에 나와 있음을 그 이유로 들었다.


따라서 유족이나 친지 또는 본인한테서 그 당시 피해와 관련한 사항을 접수받고 있으며, 법으로 1년 동안 접수 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오는 11월 30일이 접수마감일이나 이런 경로를 몰라서 신청을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면면촌촌을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 전수일 팀장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억울하게 당했거나, 후손들이 빨갱이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에 고향을 떠난 이들도 있고, 가슴속에 묻어 두고 사는 사람도 있어서 이런 여러 가지 사실들을 이장들은 혹시 알고 있을 수 있어서, 시군 구청에 이에 대한 접수창구가 있으니 특별한 증빙서류도 필요치 않고, 그저 있었던 이야기들만 제대로 전해주면 관련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국가와 경찰에서 보도 된 자료를 바탕으로 규명토록 되어있다 했다.


전 팀장은 진실규명 신청자가 많아야 사회 합의를 할 수 있고, 국회에서 통과시켜서 합법 보상 받게 된다며, 가슴에 아픔을 묻어두지 말고 드러내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하고 올바른 보상을 받도록 해야 한다 강조했다.

 

가해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피해자만 당하고, 이를 숨기고 또 숨어 산다면 국가 질서도 문란해지므로 잘못된 과거는 이 시대에서 청산해야하기에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려는 것이 그 근본 취지인 것이라 했다.

 

▲ 시장통에서 홍보활동을 벌이는 전수일 팀장

고성 시장통에서 홍보활동을 펼치다가 만난 성내리에 거주하는 김숙희(80세) 할머니는 전 팀장 일행에게 “우리 오빠가 당시 순경이었는데 끌려가서 죽었다.” 고 말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진실을 밝혀주기를 바랐다.

 

▲ 순경이었던 오빠가 그 당시 죽었다는 김숙희 할머니, 어떻게 해서든지 진실을 밝혀 억울한 죽음을 달래야 한다고 말한다.

▲ 김숙희 할머니, 고성엔 그런사람이 부지기 수라 말한다.

 

시장에서 만난 무학리 거주 이문옥(80세) 할머니는 지금 살아있으면 82세가 되는 남편을 보도연맹 사건으로 잃었다며 눈가를 붉히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 6.25때 보도연맹 사건으로 남편을 잃었다는 이문옥 할머니

▲ 당시를 회상하며 갑자기 초점잃은 시각에 넋을 놓는 표정이 었다.

 

 

참고로 진실화해위원회에는 민족독립규명위원회와 집단희생규명위원회, 인권침해규명위원회 세 가지가 있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민주당, 대법원장, 대통령이 각각 추천한 사람으로 위원장을 포함한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청와대를 제외한 정부 各부처 직원들과 학문상으로 뒷받침을 하는 학자와 교수, 문헌연구가 200명이 활동하는 것으로 특정 정권의 중점사업이 아니다.

 

▲ 이때만 해도 김 할머니는 손에 아무것도 쥐고있지 않았다. 그만큼 그당시 고성에서의 민간인 희생자가 많았으며 숨기고 가슴아파하는 사람도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뒤에 보이는 김숙희 할머니는 그저 장터에 나와 있다가 이문옥 할머니와 전수일 팀장이 이야기하는 것과 어깨띠에 두른 글귀를 보고 자청해서 홍보 팜플렛을 받고, 그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다음은 과거사정리위원회 전수일 팀장이 건네준 자료로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나온 실태보고서이다.

 

사건명

  고성 보도연맹 학살

사건유형

  6.25 이전 학살    보도연맹 예비검속 학살    재소자 학살   부역혐의학살

  제2전선 학살      미군에 의한 학살    인민군․좌익에 의한 학살     기타

발생시기

  1950년 4월 무렵, 7월 25일, 30일, 8월 4일, 5일, 14일, 10월 31일등

사건지역

  고성군 하일면 오방리, 타래재, 마암면 좌연리 TK리재, 고성읍 율대리, 상리면 등

가   해

  CIC (특무대), G-2, 해상방위대, 경찰

피   해

  최소 247명

사건배경

  고성군의 보도연맹 지부 결성식은 1949년 12월 14일 대동극장에서 개최됐고 당시 김 

○○  고성군 경찰서장과 노○○ 고성군수 등이 지도위원 등을 맡았다. 고성군도 고성경찰서 사찰주임을 중심으로 자수 주간을 두고 마을마다 순회하면서 보도연맹원을 가입시켰다. 1950년 8월 2일 인민군이 입성하기 직전에 후퇴하던 군경이 예비검속한 보도연맹원을 학살했다.

사건내용

  고성군 보도연맹원이 학살된 시기는 1950년 7월-8월이고 가해자는 군대와 CIC, G2, 해상방위대, 경찰 등으로 추정된다. 학살 지역은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원동마을과 하이면 지역으로 150여명이 학살됐다.

 

  1950년 7월 25일 고성읍 송학동 정○○ 외 49명이 하일면 오방리 타래재에서, 1950년 7월 30일 고성읍 서외동 오○○ 외 59명이 마암면 좌연리 싸리재에서, 1950년 8월 5일 고성읍 성내동 ○○ 외 29명이 역시 마암면 좌연리 싸리재에서, 1950년 8월 14일 경찰서 유치장에서 4명, 1950년 8월 4일 고성읍 율대리에서 6명 등 150여 명이 학살됐다.

 

  정○○ 의 아들 정○○은 “일제 때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가 해방 후 고성에서 청년운동을 한 것이 빌미가 돼 보도연맹에 가입하게 됐는데 6․25가 터지자 고성읍 동해리에 있던 고모집으로 피신해 있다가 고성경찰서로 연행됐고 이틀 뒤 타래재로 끌려가 학살됐다.”고 말한다. 정○○ 와 함께 고모집 장롱 속에 숨어 있다 함께 연행된 의사 권 ○○ 도 이때 목숨을 잃었다. 학살 당시 고성경찰서 보급대 차량 조수로 일했던 정○○ 은 학살이 있은 다음날 타래재에서 아버지의시신을 직접 수습했다. 정○○ 은“아버지를 연행해간 사람은 고성 CIC 파견대장 최○○ 이며 그가 학살도 지휘한 책임자”라고 지목했다. 최○○ 는 진주 출신으로 고성경찰서에 있던 사찰 형사들을 데리고 직접 맹원들을 잡으러 다녔다고 한다.

 

  이 외에도 1950년 4월경 고성군 기월리 정○○ 외 6명이 상리면에서 학살당하고 1950년 10월 31일 고성읍 성내동 김○○ 외 64명이 마암면 좌연리에서 학살됐다.

 

  고성군 전체의 희생자 수는 현재까지 247명이 확인됐다.

사건이후

  고성유족회가 결성돼 진상규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주요증언

■ 김진모(유족)

“고성읍내와 각 면의 보도연맹원들을 모아서 개천면 북평리 원동마을 산골짜기에서집단 총살했다.”“그 당시 G-2와 CIC 등이 직접 학살에 관계를 했다.”

“6․25 때 고성군에서 김○○ 부대(해병대)가 고성 사람들을 끌고 통영군 원문고개 아래 마을인 죽림 앞바다에 100여 명을 수장시켰는데 고성 향토방위군들도 함께끼여 있었다.”

 

■ 허택도(유족)

“나의 어머니가 보도연맹으로 끌려가 학살되었다. 그때 고성읍내 보도연맹원 10여명과 함께 죽었다.”

“고성 경찰서와 민보단, 대동청년단장 (마암면 청년단장 김○○, 조○○)등이 나섰다.”

■ 김갑성(당시 소방대장)

  “마암면에서 최상곤, 이상구 등이 잡혀가 죽었다.”

규명과제

  희생자의 수와 신원, 그 책임 등

참고문헌

  김기진, 『국민보도연맹』, 역사비평사(2002)

  전갑생, 「경남지역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

 


 

 

 

<이 기사는 고성인터넷에서 100년 간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 고성인터넷뉴스 www.gsi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창식 기자

ⓒ 고성인터넷뉴스 www.gsinew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네티즌 의견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작성자 :
  • 비밀번호 :

칼럼&사설전체목록

[기고] 지역사회의 중심, 학교를 살리자

최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