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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 기자 | 입력 2008-11-02 | 수정 2008-11-02 오후 1:56:04 | 관련기사 건
1908년 11월 열여덟 살 청년 최남선이 잡지 <소년>의 권두에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했다. 정형시의 틀을 무너뜨린, 한국 현대시의 들목이 된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한 세기, 2008년은 한국현대시가 100년을 맞는 해이다. 그리고 11월 1일은 「시(詩)의 날」이다. 현대시인 100명이 추천하는 현대시 100편 중에서 상위에 추천된 10편을 정리하였다.
풍요로운 이 가을에 오늘 하루 우리 모두 시인이 되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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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金洙暎,1921~1968) : 서울 출생. 연희 전문 영문과 중퇴.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박인환 등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고, 해방 후 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했다.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 출발했으나, 4.19의거 이후에는 현실성. 산문성을 중시하여 강렬한 현실 의식과 저항 정신에 기반 한 참여시로 나아갔다. 시집 <달나라의 장난>(1945), <거대한 뿌리>(1974)가 있고, 산문집으로는 <시여 침을 뱉어라>(1975)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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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沈默)>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韓龍雲, 1879~1944) :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 충남 홍성출생. 속명(俗名)은 유천(裕天), 자는 진옥(眞玉), 법호(法號)는 만해(萬海), 용운은 법명(法名)이다.
백용성 스님과 함께 3.1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민족 대표로 서명, `독립선언서`에 공약3장을 추가하고, 거사 당일 선언서를 낭독한 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한국 근대사가 내포하고 있던 모순과 문제점을 첨예하게 파악하고 실천적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한 민족의 선구자인 동시에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성취함으로써 문학사의 한 획을 그어준 시인이다.남긴 작품으로는 1925년 펴낸 시집<님의 침묵>과 시 107편, 시조 35수, 한시 164수, 소설 5편, 수필 20편, 논문 16편, 잡문 15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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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 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 이하 생략)
◆ 백석(白石. 1912∼1995) : 본명 기행(夔行). 평안 정주(定州)에서 출생하였다.
오산(五山)중학과 일본 도쿄[東京 아오야마[靑山학원을 졸업하였다. 1934년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근무하였으며,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1942년 만주 안동에서 세관업무에 종사한 그는,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시들을 발표하였다. 1945년 해방 후 북한에서 문필활동을 하다가 1963년경에 협동농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최근에 1995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통영(統營)>,<고향>,<북방(北方)에서>,<적막강산> 등 대표작은 토속적이고 향토색이 짙은 서정시들이다. 지방적·민속적인 것에 집착하며 특이한 경지를 개척하는 데 성공한 시인으로, 8·15광복 후에는 고향에 머물렀다. 1963년을 전후하여 협동농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연구자에 의해 사망연도가 1995년임이 밝혀졌다.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김소월(金素月, 1902~1934) :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평북출생.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오산학교와 배재고보를 나왔으며, 동경 상과대학을 중퇴했다.
오산학교 때의 스승인 김억의 영향과 지도로 시를 썼으며, 시 <낭인의 봄>, <야(夜)의 우적>, <그리워>등 5편을 동인지 <창조>제 5호(1920.3)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서른세 살 짧은 나이에 아편을 먹고 자살하기까지 그는 전통적인 민중 정감과 한(恨)의 가락을 서정시로 형상화하는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어 1920년대 시단의 가장 뛰어난 서정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시집으로 <진달래꽃>(1925), <소월시초>(1939), <결정판 소월시집>(1966), <완본 소월시집>(1973) 등이 있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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