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7일(수) 오후 3시, 청운동사무소 앞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세월호 특별법 제정 결단과 유민 아버지 김영오 님의 간곡한 요청이기도 한 가족대책위 면담을 요구하며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지난 8/22(금) 저녁부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오늘(8/27) 오후 3시,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농성 6일차 심경과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의 부모님들도 참석해 호소문을 발표했다.
<생존 학생 학부모 호소문>
제대로 된 특별법,
살아남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결단해주십시오
참사가 일어난 지 134일째입니다. 아직도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10명의 실종자도 있습니다. 유가족들이 가슴에 묻은 자식으로 인해 잠 못 든 밤도 134일째입니다. 오늘 우리는 ‘생존학생’이라고 불리게 된 우리 자식들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번 아이들은 학교에서부터 국회까지 유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 걸었습니다. 또래 아이들처럼 웃고 떠드는 모습 보면서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괜찮아졌나봅니다?” 그때 저희는 참사 이후 처음이라고 답했습니다. 저렇게 밝게 웃는 것이 그날 이후 처음이라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평범한 아이들인데, 평범한 모습조차 드물게 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이들은 자신들이 죽은 친구들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웃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는 편지를 쓴 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요즘도 아이들은 예전 친구들과 공부하던 교실로 옵니다. 선생님과 부모님들 몰래 옵니다. 국화꽃이 놓인 텅 빈 교실, 친구들 없는 교실에 오는 것이 상처 될까봐 오지 말라고 해도 옵니다. 멍하니 앉아있기도 하고, 책걸상 줄을 맞춰 놓기도 합니다. 좋은 거 있으면 몇 개 더 삽니다. 그리고 친구들 책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학교 끝나면 걱정하는 부모님 몰래 버스타고 친구들이 있는 추모공원에 갑니다. 장미꽃 사다가 친구한테 갖다 놓고 이야기 나누다가 옵니다.
안타깝게도 병원치료와 약물처방 받는 아이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황께 편지 보낸 학생은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며, 희생된 친구와 선생님과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매일 참사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살아남은 시간은 여전히 악몽의 연속입니다.
모든 아이들은 증언했습니다. 자신들은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했다”고 말입니다. 눈앞에 버젓이 보면서도 자신들을 구하지 않던 해경과 ‘가만히 있으라’는 거듭된 방송만 들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했습니다. 진료 의사는 생존학생들에게 나타나는 트라우마 증상은 정의구현과 생존자 죄책감 등 두 가지 특징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의구현이란 자신이 당한 사고가 도저히 설명되지 않을 때 책임이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고 생존자 죄책감은 다른 사람을 구하지 못한 데 따라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을 구출하지 않은 사회가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으려 안간힘 쓰는 모습을 보면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살아남았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으로 살아가는 이 순간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살릴 수 없었다면, 이제 진실이 무엇인지라도 밝혀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무책임하고 무능하고 악의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합니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진상규명을 위해서 떳떳한 나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약속하는 단단한 사회라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어떤 심리치료가 지금 살아남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대통령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들에게 약속했던 특별법 만드는 일이 대통령 일이 아니십니까? 국회에만 떠넘기면 될 일입니까? 유가족이 요구하는 안전한 나라 만들자는 특별법을 만들자고 약속하면 안 되겠습니까? 살아남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약속해주면 안되겠습니까? 제발 제대로 된 특별법으로 철저한 진상규명, 성역 없는 처벌로 우리 아이들에게 이 사회와 나라에 대한 믿음을 다시 심어주십시오.
생존학생들이 대통령에게 그러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면담요청을 했습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살아나갈 사회가 상식과 합리, 선의와 정의가 넘치는 사회이길 바랍니다. 치유의 첫 발은 철저한 진상규명이란 것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생존학생 부모인 우리들은 40일 넘는 동안 단식으로 진실을 요구하는 유민 아빠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다시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유민 아빠 살리고 4.16특별법을 제정하는데, 국민여러분도 함께 해주십시오. 살아남은 아이들이 죄책감이 아니라, 4월 16일 그날 이후 우리 사회가 안전한 나라로 바뀌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8월 27일
생존 학생 학부모 일동
<세월호 가족대책위 청운동사무소 앞 농성 6일차 기자회견문>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지 6일째를 맞고 있습니다. 여기 있으니 많은 분들이 식사, 음료수, 간식 등을 전해주고 가시기도 합니다. 저희가 다 소화할 수 없는 지원이 들어와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특별한 사람인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들과 함께 해주시는 많은 국민들이 우리를 특별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개학날 전이면 아이들과 한 학기의 약속을 나누기도 하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기도 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라고 응원하기도 하던, 부모들이었습니다. 그런 아이를 다시 볼 수 없는 부모들이 되었을 뿐입니다. 온갖 유언비어와 음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우리를 찾아오시고 더 멀리서도 함께 하시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은 우리의 평범한 마음들에 깊은 공감을 하고 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구나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갑작스럽게 특별한 사건을 맞부닥뜨리게 되면, 길에서 자는 일도 일상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님은 이 평범한 마음들을 아무래도 헤아리지 못하는 듯합니다. 유민 아빠가 무슨 마음으로 아직 입에 음식을 들이지 못하고 있는지 짐작도 못하는 듯합니다. 우리 가족들이 무슨 마음으로 낮에는 뙤약볕, 새벽에는 찬이슬이 내리는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잠을 청하는지 짐작도 못하는 듯합니다. 아니 짐작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듯합니다. 몇 달째 집에서 변변한 반찬 하나 만들어보지 못하다가 아이의 생일날이 돌아와서 미역국 한번 겨우 끓여본 가족들의 마음을 듣고 싶지 않은 듯합니다. 아이들이 현관문을 열고 수학여행 잘 다녀왔다고 인사하는 꿈을 아직 버리지 못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듯합니다.
왜 안개 속에 유독 세월호를 출항시켰습니까? 왜 세월호가 침몰할 때 선장과 선원들만 구조했습니까? 왜 침몰한 소식을 듣고 구조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거짓말만 해댔습니까? 아이들에게 이 진실을 밝히는 떳떳한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과욕입니까?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야 이전의 수많은 참사들을 모르고 지나왔던 죄송함까지 밀려들어, 이번에는 꼭 모두가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 잘못입니까?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왜 이리 어렵습니까.
우리는 정치가 뭔지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살던 사람들입니다. 정치는 국회의원들이나 정부 각료들이 알아서 잘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의 요구를 말하다 보니 국회의원이나 정부 각료들이 국민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지 않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가족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듯 하더니 가족의 요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새누리당은 가족의 목소리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더니 이제야 가족들과 만나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특별법이 어떤 것인지 말하기 위해 만나자는 요청이 오면 나가보기도 하지만 우리의 진심은 왜곡되고 언론은 뭔가 물밑에서 다른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곤 합니다. 지금까지 정치가 그런 식으로 굴러왔나 봅니다.
세월호 참사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거나, 세월호 가족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거나 하는 말들을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도대체 그 ‘정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국회의원들이 장외다, 원내다 하는 걸 두고 다투는 소리도 들립니다.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인지 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목소리가 어디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지 입니다. 교황님은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고마운지 살펴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정치’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진심을 읽는 능력만은 자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누가 자신을 이해해주는지, 누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지, 누가 뒤에서 딴소리를 하는지 다 압니다. 오히려 정치인들은 이해하는 척 의도를 숨기고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들이 다른 데에 익숙해져있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말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다시 규제완화를 논의했다고 합니다. 안전 점검이나 안전 교육에 민간 업체를 참여시키고, 재난․재해 보험상품 개발을 촉진하는 등 검토하라고 했답니다. 정부가 책임지는 해경이 제대로 구조하지 못한 게 문제이지, 언딘 같은 민간구조업체가 적은 게 문제였습니까? 우리 가족들이 참사 당일 보험금 운운하는 언론 때문에 얼마나 속이 터졌는지 모르시고 보험 상품을 개발하라고 합니까? 사고가 나든 말든 구조를 하든 말든 보험 상품만 많아지면 됩니까?
최종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는지 대통령님이 하루빨리 깨닫기를 바랍니다. 말이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전해질 때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깊은 공감으로부터 출발한다면, 특별법을 제정하고 진실을 밝히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6일째를 맞는 오늘도, 우리는 여기에서 청와대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2014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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