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진동지구 전승기념 추모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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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진동지구 전승기념 추모제 열려

경남도민/한대건 기자  | 입력 2010-08-15  | 수정 2010-08-15 오전 8:47:21  | 관련기사 건

민족최대의 수난인 6.25전쟁 시 북한의 최후의 목표인 부산을 공격할 목적으로 마산을 진격해 온 북한군을 막아낸 진동리지구 전승기념 및 추모제가 13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전첩비 앞 광장에서 거행됐다.

 

 

국가보훈처와 해병대사령부, 창원시(시장 박완수)가 후원하고 해병대 전우회 중앙회(총재 김인식)와 (사)해병대 경남 마산시 전우회(회장 백평원)가 주최 해병대 제1사단의 주관하에 치러진 이날 추모제에는 백평원 회장과 김성곤 베트남참전전우회 경남지부장, 해병1사단 백양현 부사단장(대령), 홍인표 창원보훈지청장,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장관, 김윤수 창원시 부시장, 김이수 통합창원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경남도의원, 창원시의원, 전투에 참전한 해병 예비역, 6.25참전전우회원, 장병 등 약 400여명이 참석했다.

 

 

올해로 12번째인 이날 전승기념 및 추모제는 귀신잡는 해병대의 신화를 창조하고 낙동강 방어선 확보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공적과 킨(KEAN)특수임무부대의 최초 반격작전을 기념하고 당시 참전했던 선배 해병들과 함께 조국수호의 영령으로 산화한 국군과 UN군 용사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매해 마다 열리고 있다.

 

 

이날 추모제에서 6.25전쟁 당시 진동리전투에 직접 참가했던 윤주성 참전전우 대표는 회고사를 통해 "60년전 6.25전쟁 당시 우리들은 김성은 부대에 배속돼 1950년 8월1일 밤 마산을 향해 고성으로 이동해 부대배치를 완료 후 그러던중 8월 3일 진주고성방면 최종목표인 부산점령을 위해 마지막으로 공격해오려던 북한군 6사단소속 수색대를 전멸시킴으로써 부산진격계획을 완전히 좌멸시켰다"며 "당시에 지급된 보급품은 형편없고 군화없이 운동화로 몃십리의 행군을 하며 밥은 주먹밥으로 때웠지만 우리는 어려움을 이겨내며 오로지 나라를 위해 건져내야 한다는 해병정신 일념으로 싸웠다"고 회고했다.

 

 

김인식 해병대 전우회 총재는 기념사를 통해 "우리들이 매년 행사를 치르면서 감개무량함을 금할 수 없는 것은 한국전쟁 당시 이곳 진동리 전투의 승리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라며 "당시 부산을 포위한 북괴군의 숨통을 조이기 위해 진주를 거쳐 마산을 점령코자 했을때 김성은 부대와 민기식 부대 등 당시 참전한 주역들이 진동리 전투에서 싸워 이겨냈기에 오늘날 이 전승탑을 우뚝 세울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낙준 해병대사령관(중장)을 대신해 참석한 해병 1사단 백양현 부사단장(대령)은 추모사에서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북한의 불법기습남침에 맞서 조국의 자유와 평화 수호를 위해 고귀한 생명과 젊음을 바치신 해병영웅들의 충혼과 넋을 추모하고 위대한 공훈을 되새기기 위해 이자리에 모였다"며 "전쟁 당시 진동리 전투는 김성은 부대가 북한군 6사단을 맞아 열악한 병력과 장비에도 불고하고 오로지 해병정신과 조국을 생각하는 신념으로 목숨걸고 싸운 전투였다"고 말했다.

 

 

이어 백양현 부사단장은 "진동지역은 해병대에서 신화탄생의 산실이자 많은 선배해병의 피흘린 유서깊은 곳"이라며 "비록 지금은 고지를 향해 돌격하던 함성소리도 승리의 군가소리도 들을수 없지만 고귀한 목숨과 희생정신만은 후배해병들은 우리해병대의 역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윤수 창원시 부시장은 추념사를 통해 "민족최대수난인 6.25전쟁 동란으로 낙동강 최후방어선을 구축한 국군과 유엔군이 사활을 건 대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을 때 김성은 부대가 이 지역에서 북괴군 6사단 정찰대대를 기습공격해 궤멸시킴으로써 창군이래 최대의 전공을 세워 전 장병이 1계급 특진의 영예를 획득했다"며 "해병의 용맹이 우리나라를 넘어 월남전에서도 청룡부대로 맹위를 떨쳤으며 세월이 흘러 세상이 바뀌어도 해병만이 창조한 무적해병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슬로건은 우리의 머리속에 영원히 살아 숨쉴 것"이라며 이러한 불굴의 의지가 우리나라의 발전에 초석이 되었듯이 이제는 풍요롭고 살기좋은 고장, 고품격 명품도시 창원시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헌화 및 분향

 

▲ 진동리 전첩비

 

해병대 진동리 전투일지

 

◆ 1950. 8. 02일 02:00

김성은부대 고사리 이동 - 고사리 지서에 지휘부 설치

제2중대 - 서북산(738고지) 남쪽 우현에 배치

제3중대 - 428고지 서쪽능선에 배치

제7중대 - 344고지에 배치

 

◆ 1950. 8. 03일

제7중대(중위 안창관) - 진지 정면으로 이동하는 적의 전차 및 차량부대 (북괴군 6사단 정찰대대) 기습공격

(적사살 87명, 포로 4명, 전차 2대, 각종 차량 6대, 중기 및 경기 6문, 각 종 소총 58정 노획)

 

◆ 1950. 8. 05일

김성은부대 전 장병 1계급 특진

 

◆ 1950. 8. 06일

제7중대 - 야반산(342고지) 탈환전

 

◆ 1950. 8. 07일

미 육군 제24사단 배속하에 진동리 출동

`킨(KEAN)특수임무부대`의 전투 임무(~8월 13일)수행

서북산 일대에 침투한 적을 소탕하여 함안 도로 확보

마산~진동리간 도로 확보를 위한 전투

 

◆ 1950. 8. 09일

254고지에 배치되어 우군부대의 550고지 공격지원 임무수행

 

◆ 1950. 8. 13일

미 육군 제24사단 배속 해제 후 진해로 이동 후 통영상륙작전에 전 장병 참가.

 

 

경남도민/한대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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